내년 상반기 7000가구 이주…강남發 전세대란 수도권 덮치나

by박태진 기자
2015.12.22 06:00:00

강남 4구 재건축 이주 ‘러시’
입주물량은 2518가구에 그쳐
하남·용인 등 수도권 내몰려
전셋값 상승 부추길 우려 커져

[이데일리 박태진 기자] “지금 살고 있는 전셋집 보증금으로는 주변에 다른 집 구하기 어려워요. 비싼 월세를 얻거나 경기도로 빠져 나가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네요. 내년 5월까진 어떻게든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22일 재건축사업으로 이주가 시작된 서울 강동구 고덕동 주공3단지 아파트를 찾았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를 들렀다 만난 입주민 최모(48·남)씨는 아직도 이사할 집을 못구했다며 엄동설한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최근 전셋값 상승세가 다소 가라앉는 분위기이지만 서울 강남권은 예외다. 재건축 사업으로 철거 및 이주 대상 아파트가 급증하면서 전세난이 심화되고 있어서다. 더 큰 문제는 내년이다. 내년 상반기 재건축 때문에 집을 비워야 하는 아파트가 올해보다 더 많지만, 입주 물량은 더 줄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내년 강남발 전셋값 상승세 확산을 우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재건축으로 내년 5월까지 이주 완료하는 서울 강동구 고덕주공3단지 입구에는 이주개시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 단지를 포함해 내년 상반기까지 이주를 끝내야 하는 강남권 재건축 물량은 7094가구이지만 입주 물량은 2518가구에 불과해 전세 대란이 우려된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인포에 따르면 내년 1~6월 서울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에서 이주를 끝내야 하는 아파트는 7094가구다. 이는 올해 상반기 이주 물량(5575가구)보다 1519가구 많은 규모다.

강동구에선 고덕주공3단지(2580가구)가 내년 5월까지, 고덕주공7단지(890가구)는 관리처분인가 후 상반기 이주를 끝낸다는 계획이다. 강남구에선 개포시영아파트(1970가구)가 내년 5월까지 이주 계획이 잡혀 있다. 서초구에서도 한신 18차(308가구)와 한신 24차 아파트(132가구)가 2월 이주를 마쳐야 한다. 서초 삼호가든 3차(428가구)와 서초우성 1차 아파트(786가구)도 내년 상반기 관리처분 인가 후 이주를 끝낼 예정이다.

강남권에서 7000가구가 넘는 주택이 사라지지만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는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부동산114 자료를 보면 내년 상반기 강남권에서 입주하는 아파트는 2518가구가 전부다. 전문가들은 공급 부족으로 전셋집을 구하지 못하는 수요가 늘면서 전셋값이 더 가파르게 오를 수밖에 없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 들어 서울 강남권의 전셋값 변동률은 상반기보다 둔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강세다. 강남·서초·송파구 아파트 전세가격 변동률은 지난 9월 0.75%에서 10월 1.04%로 상승폭이 커졌다. 지난달엔 0.47%로 줄었으나 이달 18일 기준 0.51%로 변동폭이 다시 확대됐다.



내년 상반기는 이주 물량 증가와 전셋값 상승, 공급 부족 등의 악재로 전세대란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김은진 부동산114 리서치팀장은 “강남권 전셋값은 여전히 강세를 유지하고 있는 데다 물건도 많지 않은 상태”라며 “이주 물량은 점점 늘고 있지만 입주 물량은 내년 하반기에나 늘어날 전망이어서 내년 상반기가 도시정비사업으로 인한 수급 불균형의 절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세난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재건축아파트 세입자들이다. 재건축아파트는 낡고 좁아 대체로 보증금이 싸지만, 주변엔 비슷한 전셋집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지난 7일부터 이주를 시작한 고덕주공3단지 입주민 김모(62·여) 씨는 “다음달 (고덕주공) 5단지로 이사한다”며 “급한대로 가격대가 맞는 집을 구하다보니, 또 (재건축으로)이주 예정인 단지로 갈 수밖에 없게 됐다”고 푸념했다.

이마저도 전셋집을 구하지 못한 세입자들은 인근 지역인 경기도 하남시 등으로 옮겨 앉고 있다. 이로 인해 서울과 경기지역 전셋값 동반 상승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고덕주공3단지 전용면적 49㎡짜리 전셋값은 8000만~1억원, 전용 55㎡형은 1억~1억 2000만원이다. 인근 하남지역의 비슷한 평형대 아파트 전세가격은 이 보다 3000만~5000만원 더 비싸다. 올해 이주를 완료한 고덕주공2단지와 4단지 수요층이 몰리면서 작년 말부터 하남시 집값이 올랐다는 게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강남구 개포동 일대 상황도 마찬가지다. 연말 이주 완료를 앞두고 있는 개포주공3단지(1160가구) 주민들은 인근 1단지와 4단지, 시영아파트로 옮겨가고 있다. 이 중 내년 초 관리처분계획인가를 앞두고 있는 개포시영아파트(1970가구)로 이사한 사람들은 내년 상반기 또 다른 집을 구해야 한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 전문위원은 “재건축아파트와 인근에 입주 몇년 안된 아파트는 가격 차이가 커 재건축 단지에 살던 세입자들은 경기도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며 “내년에는 서초구 반포동과 강남구 대치동에서도 재건축 이주가 계획돼 있어 강남발 전세난이 수도권 전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