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1등기업]①애주가가 본 엎치락뒤치락 맥주시장
by김도년 기자
2012.06.08 08:22:13
낙동강 페놀 사태로 하이트 1위 등극
카스 내세운 오비, 15년만에 재역전
[이데일리 김도년 김상윤 기자] 최근 15년간 맥주시장 점유율 1위를 달려온 하이트진로(000080)가 오비맥주에 뒤처진 것은 결국 급변하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읽지 못한 결과입니다. 오너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의 자질과 최고경영자들의 능력 부족, 시장을 읽어내는 통찰력 부재도 한몫했을 겁니다.
지난 20여 년 간 맥주시장을 되돌아 보면 참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애주가이신 아버지 술상엔 항상 OB맥주가 올라왔습니다. OB맥주는 당시 한국사람이면 10명 중 7명이 마실 정도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몇 해가 지났을까요. 두산전자의 낙동강 페놀수지 유출사건이 터진 91년, 두산 계열사인 동양맥주까지 불똥이 튀면서 OB맥주는 최대 위기를 맞게 됩니다. 시장 점유율 하락은 물론 소비자와 거래처의 신뢰도까지 모두 떨어지게 됐죠. 93년 출시된 하이트(Hite)맥주가 OB맥주 대신 아버지 술상에 오른 배경입니다.
`지하 100% 천연암반수로 만든 맥주`란 콘셉트를 강조한 하이트맥주는 점점 세를 넓혔고 급기야 점유율 1위의 영예도 거머쥐었습니다. 아버지께서 하이트 영업사원에게 받아온 비누는 온 가족이 1년을 쓰고도 남을 정도로 판촉 열기도 대단했습니다. 하이트맥주의 전신인 조선맥주는 98년에 와서 사명을 아예 하이트맥주로 바꿉니다.
하이트맥주의 그늘에서 동양맥주는 94년 OB아이스(OB ICE)를 선보였지만 아버지는 눈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같은 해 진로는 카스(Cass)를 출시했고 동양맥주는 카스의 대항마로 넥스(Nex)를 출시했지만 이 역시도 까다로운 아버지의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막 대학생이 된 저도 가끔 동아리 행사장에서 협찬받은 넥스를 공짜로만 마실 정도였습니다.
이후에도 동양맥주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무리하게 신제품들을 내놓았지만 그때마다 고배를 마셔야 했습니다. 95년 사명을 오비맥주로 바꾼 동양맥주는 `OB라거(OB Lager)`를 선보이며 하이트의 `깨끗한 물`에 대항해 `숙성`이란 메시지를 전하려 애씁니다. 그러나 이미 꺾인 점유율을 뒤집기는 어려웠고 결국 98년 벨기에 맥주회사 인베브에 인수됐습니다. 당시 법정관리에 들어간 진로는 카스 사업부문을 매각했고 오비맥주는 이를 인수, OB와 카스란 브랜드를 갖게 됩니다.
오비맥주는 이후 `젊음과 톡 쏘는 맛`을 강조한 카스를 앞세워 96년 이후 15년 만에 다시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재탈환했습니다. 하이트맥주가 진로를 인수한 이후 나타난 재무, 마케팅 등 제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반사효과도 영향을 줬습니다. 오비맥주가 잘한 것도 있지만 결국 하이트맥주의 `전략부재`가 재탈환의 빌미를 준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