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전망)그린스펀과 수급, 누가 더 센가

by강종구 기자
2004.03.03 08:27:44

[edaily 강종구기자]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준리(FRB) 의장은 2일 채권시장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뉴욕 경제인클럽에서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시장친화적인 통화정책은 장기 안정성과 부합하지 않는다"거나 "현재의 저금리는 특별한 상황"이라는 다소 의외의 단어들로 채워졌다. 그의 이같은 발언은 기준금리 인상이 먼 미래의 일이 아님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됐고 국채 수익률을 비교적 큰 폭으로 끌어올렸다. 10년물 미국 국채 수익률은 4%대로 복귀했다. 그린스펀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중앙은행은 통상 자국통화의 가치를 방어하는데 핵심적인 정책방향을 두고 있다" 그동안의 기조적인 달러약세를 더 이상 바람직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강한 달러가 필요하고 그를 위해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로 이날 미국 경제대통령의 연설을 요약할 수 있다. 이는 향후 미국 통화정책 및 외환정책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보인다. 누구나 알다시피 미국은 달러 약세를 추구해 왔다. 막대한 규모의 경상적자와 재정적자라는 경제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미국이 원하는 대로 아시아 주요국들은 달러약세를 막기 위해, 또는 속도조절을 위해 미국 채권을 공격적으로 사들였다. 이에 힘입어 금리는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미국에 모자란 자본을 아시아가 기준금리 1%에 불과한 초저금리로 대 준 셈이다. 그린스펀의 눈에는 미국이 달러약세정책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거나 아니면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두가지 중 하나의 판단을 했을 수 있다. 경제가 분명한 회복 신호를 보내고 고용시장도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목적을 달성한 셈이고 재정적자와 경상적자를 줄이지 못했다는 면에서는 효과를 보지 못한 셈이다. 외국계은행의 한 딜러는 "미국은 저금리를 통한 달러약세 정책으로 쌍둥이 적자를 해결하지 못했다"며 "이를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금리 인상으로 국내 저축률을 높여야 할 것이고 그러면 달러 약세도 사실상 끝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로와 엔화에 대해서 달러가치는 바닥을 친 것으로 본다"며 "유럽이 금리인하를 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미국에 금리를 올리라는 요구와 다를 바 없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강한 달러를 수용할 경우 국내 채권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일단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커다란 악재다. 환율방어의 필요가 없어져 외환시장 안정용 국채의 발행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위안거리도 있지만 아무래도 악재의 무게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외국인의 공격적인 매수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2일의 경우 외국인은 국채선물을 지속적으로 6000계약 가량 매수했다. 헤지의 흔적은 없었다는 것이 시장참여자들의 관측이다. 외국인들은 또한 주식시장에서도 강력한 순매수행진을 이어갔다. 올들어 유로화나 엔화가 달러에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것과 달리 원화는 강세를 보이고 있고 주가와 채권가격도 오름세다. 모두 외국인의 매수에 힘입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이를 "원화 강세에 대한 중기적인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다른 시장참여자는 "최근에는 펀더멘털을 보지 않는다. 답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며 "철저하게 수급으로 접근한다"고 말했다. 2월초까지만 해도 고점매도 전략이었으나 최근에는 저점매수로 관점을 수정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2일 4조7700억원에 달하는 입찰물량에도 불구하고 금리가 하락하자 대부분 의외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놀라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은행들은 포지션이 상당히 비어 있어 물량을 채워넣어야 하는 사정이었고 투신사 MMF에는 자금이 넘치고 있었다. 국내 은행의 한 딜러는 "당분간은 저점매수가 답이라고 본다"며 "4.65~4.70%의 두터운 벽이 관건이다"고 말했다. 결국 국내 채권시장은 미국의 금리인상 및 강한 달러로의 정책변화 가능성과 국내 수급사이에서 줄다리기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열쇠는 어느쪽이 더 가깝게 느껴지느냐가 될 것이다. 미국 금리인상이 아직 멀다면 수급이 우위를 점할 것이다. 반대로 금리인상 시기가 빨라질 것이란 예상이 많아지고 이로 인해 외국인의 이탈이 발생하면 수급도 훼손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