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한 스토리·철저한 현지화의 힘…뮤지컬 본고장이 열광했다
by장병호 기자
2024.07.16 05:42:29
[세계로 뻗는 K뮤지컬]①
새로운 한류 콘텐츠로 도약
美 브로드웨이 진출한 ''위대한 개츠비''
두 달 반만에 총매출 1641만 달러
英서 공연 ''마리 퀴리'' 열기도 후끈
세계 공연계 관심·기대 갈수록 커져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와 ‘마리 퀴리’가 ‘K뮤지컬’의 신기원을 열었다. 두 작품은 뮤지컬 본고장으로 불리는 미국과 영국에서 정식 공연으로 당당히 현지 관객과 만나고 있다. 해외에서 수입해온 라이선스 뮤지컬을 중심으로 2000년대부터 시장을 키워온 한국 뮤지컬이 이제는 해외에 뮤지컬을 수출하며 세계가 주목하는 시장으로 당당하게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 미국 브로드웨이 시어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의 한 장면. (사진=오디컴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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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제작사 오디컴퍼니의 신춘수 대표가 단독 리드 프로듀서로 제작 전반을 총괄한 ‘위대한 개츠비’는 지난 4월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시어터(Broadway Theatre)에서 막을 올린 뒤 연일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15일 브로드웨이 공연 정보를 제공하는 플레이빌에 따르면 ‘위대한 개츠비’는 총매출 1641만 9736달러(한화 약 226억 997만원, 7월 7일 기준), 객석 점유율 94.55%를 기록하고 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흥행 기준으로 여겨지는 ‘원 밀리언 클럽’(주당 매출액 100만 달러)도 개막 이후 계속 유지하고 있다.
현지 반응도 긍정적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관객이 선정하는 제21회 시어터 팬스 초이스 어워즈에서는 최우수작품상 등 9개 부문을 휩쓸었고, 제77회 토니상 뮤지컬부문 의상상, 제68회 드라마 데스크 어워즈 무대디자인상 등도 수상했다.
신 대표는 2014년 래퍼 투팍의 이야기를 그린 ‘할러 이프 야 히어 미’, 2015년 러시아 대하소설 원작의 ‘닥터 지바고’로 브로드웨이 진출을 시도했지만 흥행 실패로 조기 폐막이라는 뼈저린 아픔을 겪었다. 두 번의 실패를 바탕으로 신 대표는 자신이 공연 제작 전반을 총괄하는 ‘단독 리드 프로듀서’로 ‘위대한 개츠비’를 기획, 개발했다.
‘위대한 개츠비’는 최근 브로드웨이 작품 경향과 다르게 화려한 무대와 의상, 19인조 라이브 오케스트라 등을 갖춘 작품. 신 대표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제작 방식 중 하나인 ‘트라이아웃 공연’(시범공연)으로 ‘위대한 개츠비’의 브로드웨이 진출을 시도했다. 유서 깊은 트라이아웃 전문 공연장 뉴저지 플레이밀하우스에서 먼저 공연을 선보였고, 현지 관계자들의 반응을 통해 작품을 수정·보완하며 브로드웨이 공연을 추진했다. 현지 언론의 평가는 다소 엇갈렸지만, 뮤지컬 특유의 볼거리를 고루 갖춰 현지 관객은 열광하고 있다.
|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 채링 크로스 시어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마리 퀴리’의 한 장면. (사진=라이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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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웨스트엔드에서도 K뮤지컬이 공연하고 있다. 공연제작사 라이브의 창작뮤지컬 ‘마리 퀴리’가 지난달 8일(현지시간)부터 영국 런던 채링 크로스 시어터에서 공연 중이다. 265석 규모의 소극장에 오른 ‘마리 퀴리’는 K뮤지컬의 웨스트엔드 진출이 불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줬다. 현지 언론의 관심도 높다. 개막 전날 진행한 ‘프레스 나이트’ 행사에는 67개 매체가 참여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마리 퀴리’는 2022년 하이라이트 쇼케이스, 2023년 전막 쇼케이스를 통해 현지 공연화 가능성을 차근차근 타진하며 웨스트엔드 개막을 성사시켰다.
이 작품들 외에도 ‘어쩌면 해피엔딩’, ‘유앤잇’, ‘인사이드 윌리엄’ 등의 뮤지컬이 현재 미국과 영국 진출을 준비 중이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서울, 제주 등이 등장하는 원작 그대로 오는 10월 미국 브로드웨이 벨라스코 극장에서 개막한다. ‘위대한 개츠비’가 기획 단계부터 브로드웨이를 겨냥한 작품이라면, ‘어쩌면 해피엔딩’은 한국 창작진(박천휴 작가)이 만든 작품을 브로드웨이에서 정식으로 소개하는 첫 사례로 의미가 크다.
EG뮤지컬컴퍼니가 제작한 ‘유앤잇’의 해외 진출 사례도 눈길을 끈다. EG뮤지컬컴퍼니는 2023년부터 5년간 4단계 로드맵(현지화-공연 브랜딩 및 지역 투어-웨스트엔드 진입-오프런 공연 진행)을 세우고 영국 진출을 추진 중이다. 2년간 영어 버전으로 현지화를 마친 ‘유앤잇’은 영국의 CDM 프로덕션과의 협업을 통해 오는 8월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며 지역 투어를 모색한다. 이응규 EG뮤지컬컴퍼니 대표는 “에든버러에서 작품을 검증받고 본격적으로 영국 시장에 진입해 한국 뮤지컬의 영미권 진출의 좋은 사례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 미국·영국 진출 나선 K뮤지컬 주요 성과. (디자인=김정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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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영국의 장벽을 넘어선 K뮤지컬은 이제 세계 공연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달 대학로에서 열린 ‘K뮤지컬국제마켓’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최·주관한 이번 행사에는 미국, 영국 등 해외 8개국 총 45명의 해외 인사가 참가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처음 공식 초청한 해외 인사는 25명이었으나, 행사 진행 과정에서 참가자가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정은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유통팀장은 “그동안 마켓에 참여했던 해외 인사들이 주변 관계자들에게 한국을 주목하라고 추천하고 있다”며 “K뮤지컬에 대한 세계 공연계의 기대가 높아졌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K뮤지컬국제마켓’은 국내 및 해외 뮤지컬 전문가, 투자자 등이 모이는 뮤지컬 장르 전문 마켓이다. 올해 4회째를 맞아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고 있다. ‘마리 퀴리’의 경우 2021년 마켓 피칭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이후 예술경영지원센터의 후속 지원을 받으며 웨스트엔드 쇼케이스 등을 개최할 수 있었다. 2023년 마켓 착용에 참여한 작품 ‘서천담화’는 영국 현지 워크숍을 위해 영국 디아더팰리스 극장, 플레상스 극장 등과 업무협약(MOU) 체결을 준비 중이다. 올해도 30편의 K뮤지컬이 쇼케이스 및 피칭으로 해외 관계자들과 만났고, 국내외 42개사 285회의 비즈니스 미팅도 이뤄졌다.
| ‘2024 K뮤지컬국제마켓’ 비즈니스 미팅 현장. (사진=예술경영지원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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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K뮤지컬이 세계 무대로 더 뻗어 나갈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줄 때다. 세계 공연계가 언제든 K뮤지컬에 대해 접근할 플랫폼이 필요하다. 지혜원 경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한국은 아직 우리 작품을 해외에 소개하는 해외 라이선싱 에이전시가 없다”며 “마켓이 열리지 않을 때도 온라인을 통해 K뮤지컬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플랫폼, 그리고 K뮤지컬에 대한 체계적인 아카이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현지 시장을 잘 알고 있는 해외 프로듀서, 창작진과 파트너십도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정민 동국대 영문학부 교수는 “한국 창작뮤지컬의 경쟁력은 스펙터클보다는 정교한 스토리 구성이나 섬세한 감정 전달에 있는 만큼 대사와 가사를 현지 관객의 눈높이와 정서에 가급적 가깝게 옮기는 작업이 중요하다”며 “공연제작사의 노력뿐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뮤지컬 번역에 대한 제도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