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카페 안 가요… 코로나19로 늘어난 ‘홈루덴스족’

by김무연 기자
2020.04.21 05:30:00

전문가와 함께 쓰는 스페셜 리포트③
영화관 가는 대신 집에서 VOD, OTT로 영상 감상
음향 기기, 대형 TV 등 홈 씨어터 상품 매출 급증
카페, 식당도 안 가…커피, 밥도 집에서 해결
전문가 “코로나 이후에도 홈콕족 활동은 강화”

[이데일리 김무연 기자] 영화 감상이 취미인 김범준(가명·33·남) 씨는 지난달 빔 프로젝터와 고급 음향 기기를 구입했다. 평소에 홈시어터를 꾸며보고 싶단 계획은 있었지만 가격 부담 때문에 망설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과감히 투자했다.

김씨는 “영화 뿐 아니라 넷플릭스, 유튜브 등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즐기고 있다”면서 “한 번 영상 관련 기기를 설치하니 굳이 영화관을 가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외려 관객들의 잡담 등으로 영화 감상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단 점에서 홈시어터에 만족한하고 있다고 김씨는 덧붙였다.

인천 연수구에 사는 하성민(31·남)씨는 최근 네스프레소 커피 머신을 구입했다. 어린 조카와 함께 살고 있어 대면 접촉이 많은 카페에 드나드는 일이 꺼려진다는 이유에서다. 하씨는 “커피 머신을 이용하다 보니 생각보다 캡슐 커피 종류가 다양하고 맛도 좋아 만족한다”며 “최근에는 조카들과 달고나 커피 등 새로운 메뉴를 만들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객들이 롯데백화점 본점에 개설된 프랑스 음향기기 회사 ‘드비알레’ 팝업 스토어에서 음향기기들을 구경하고 있다.(사진=롯데쇼핑)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면서 집에서 놀이를 즐기는 ‘홈루덴스(Homeludens)’ 족이 급증하고 있다. 홈루데스족은 집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에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이를 나만의 공간에서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시간으로 바꿔 활용하고 있다.

영화관 대신 OTT나 유튜브, VOD를 집에서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월 1684만명에 달했던 영화관 관객 수는 지난달 183만명으로 10분의 1 가까이 줄었다. 반면 올해 2월 IPTV 영화 유료 결제액은 전년 동기 대비 약 81% 증가했다.

이에 따라 유통업체에서는 ‘홈시어터’ 관련 제품이 효자 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롯데백화점 본점의 ‘프리미엄 음향’ 카테고리 매출은 지난 2월 10일부터 3월 12일까지 약 19.2% 증가했다. 11번가에서도 지난 2월 17일부터 3월 1일 사이 ‘음향 가전’ 카테고리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47% 늘어났다.



영상을 큰 화면으로 보기 위해 대형 TV를 찾는 소비자들의 발걸음도 이어지고 있다. 이마트에 따르면 올 1분기 TV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6.8% 성장했다. 이중 65인치 이상 대형TV의 매출 비중은 59%로 전년 51%에 비해 8%포인트 늘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과거와는 달리 공간적, 시간적 제약 없이 영화나 음악 감상이 가능해졌다”면서 “코로나19로 재택 근무, 외부 활동 제약 등으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프리미엄 음향 장비와 홈시어터 등을 활용해 개인 공간을 ‘전문 문화 감상 공간’으로 탈바꿈하고자 하는 고객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텐바이텐의 달고나 커피 기획전 이미지(사진=텐바이텐)
집에서 커피나 디저트를 직접 만드는 ‘홈 카페족’들로 관련 매출도 증가하고 있다. 디자인 상품 전문 쇼핑몰 텐바이텐에 따르면 지난달 4일부터 18일까지 2주간 홈카페 관련 가전 제품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급증했다. 커피머신은 318%, 와플과 샌드위치 등을 만드는 쿠커·메이커 제품들은 264% 늘어났다. 특히 달고나 커피가 화제가 되면서 거품·반죽기 카테고리 상품 판매도 267% 증가했다. 달고나커피는 인스턴트 원두커피와 설탕, 뜨거운 물을 1:1:1의 비율로 넣어 만드는 커피로, 옛날 간식인 달고나와 맛과 모양이 비슷한 것이 특징이다. 수백 번 휘져어야 해서 손이 많이 가지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홈 카페족에겐 심심함을 달래려는 목적으로 인기가 높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최근의 홈 카페 열풍은 단순히 집에서 커피와 디저트를 즐기는 것을 넘어서 달고나 커피와 같이 시간이 들더라도 자신이 직접 만들어 먹는 하나의 놀이로 정착됐다”면서 “편의점 업계도 집에서 간단히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디저트 키트를 출시하며 홈 카페족을 공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다시 집밥을 찾는 가정도 늘고 있다. CJ제일제당이 전국의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코로나19에 따른 식소비 변화 조사’를 진행한 결과에 따르면 집밥을 직접 조리해서 먹는 빈도가 늘었다고 응답한 사람이 84.2%를 차지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가정간편식(HMR)이나 밀키트를 찾던 소비자들이 직접 요리를 해먹는 단계로 접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롯데백화점에서 밥솥 브랜드 ‘쿠쿠전자’의 3월 매출액은 전월 대비 13.9%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에도 사람들과의 대면 접촉 대신 집에서 자신만의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은히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1인 가구를 중심으로 홈트레이닝 등 집에서 다양한 활동을 즐기는 것이 유행이었다”면서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영화 감상 등 사회적 관계가 필요치 않은 활동들은 집에서 혼자 즐기는 행태가 지속적으로 강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