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도 집값도 떨어져요"…강남맘 등쌀에 내몰린 혁신학교

by신중섭 기자
2019.06.04 06:21:00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7일까지 혁신학교 공모
강남 학교들 학부모 반대에 혁신학교 신청 철회
"기초학력 떨어지고 집값까지 하락할 것" 우려 커
`혁신학교 213→250개` 조희연 교육감 계획 차질
"객관적 연구결과·학부모 소통 통해 우려 불식 필요"

지난해 12월 서울 가락1동 학부모 모임과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옛 가락 시영) 입주자협의회 관계자 등이 해누리초중을 혁신학교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며 집회를 갖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신중섭 기자] 최근 강남 등 일부 지역에서 혁신학교를 신청하려는 학교와 이를 반대하는 학부모 사이에 갈등이 일며 혁신학교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지난해 12월 학부모 반발로 신설학교에 대한 혁신학교 지정이 취소됐던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사태가 일어난 지 불과 5개월여 만이다.

학부모들은 입시 위주 교육 풍토에서 토론·체험 수업 위주의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혁신학교가 학력 저하를 유발한다고 우려하는 반면 교육당국과 혁신학교는 이런 우려가 과장됐다고 맞선다. 갈등이 계속될 경우 서울시교육청의 혁신학교가 반쪽짜리 정책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교육계는 혁신학교 효과에 대한 객관적 연구결과 마련과 학부모와의 소통 강화 등을 통해 반복되는 혁신학교 갈등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달 29일 시작된 서울형 혁신학교 공모를 앞두고 서울 강남구 대곡초·개일초와 광진구 양진초 등 일부 지역 학부모들은 학교 측의 혁신학교 신청 움직임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표면적으로는 신청과정에서의 학부모 동의가 미흡하다는 게 주된 이유지만 혁신학교가 학생 학력 저하를 불러올 뿐 아니라 입시·사교육 등을 중시하는 지역 특성과 맞지 않다는 게 반대의 진짜 속내다.

혁신학교는 자율적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경쟁보다는 학생들의 창의력과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등을 기른다는 목적에서 도입된 학교형태다. 김상곤 전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지난 2009년 경기도교육감 시절 도입한 것이 시초다. 대부분 학급당 인원이 25~30명 수준이며 다양한 체험과 토론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지난 2011년부터 운영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교육특구로 불리는 강남 등 입시 관심도가 높은 지역의 반발이 특히 심하다. 강남 대치동의 대곡초는 혁신학교 신청에 대한 학부모 설명회를 개최하려 하자 학부모 100여 명이 교문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혁신학교를 반대하는 모임을 결성, 1000여 명 넘게 반대 서명을 하기도 했다.

학부모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기초학력 저하다. 실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교육부가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학업성취도 평가자료에 따르면 기초학력 미달 평가를 받은 혁신고교 학생비율은 11.9%로 전체 고교 평균인 4.5%보다 2배는 높게 나타나 학력 저하 논쟁이 벌어졌다.

혁신학교 반대 시위에 참여한 대곡초 3학년 학부모는 “이곳 학부모들은 사교육과 입시에 중점을 두고 있는 만큼 혁신학교의 특성과 거리가 멀다”며 “혁신학교로 인해 기초학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걱정에 사교육에 더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학부모도 “입시제도 개혁이 선행되지 않는 혁신학교는 반대한다”며 “경쟁교육을 배우지 못한 학생은 현 입시체제에서 낙오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입시·사교육으로 특화된 지역에 정반대의 교육목적을 가진 학교가 들어오면 인근 집값이 내려간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입시업계 관계자는 “교육 특구라는 장점으로 높은 집값이 형성된 지역에서는 혁신학교 지정으로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현재 213개인 혁신학교를 2020년까지 250개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하지만 혁신학교 반대가 계속될 경우 늘어날 혁신학교 중 강남 학교는 극소수에 불과할 확률이 높다. 올해부터는 신설 학교에 대한 임의지정 없이 학교의 공모신청을 통해서만 혁신학교를 지정하기 때문이다. 현재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구 혁신학교는 총 16곳으로 이 중 6곳은 교육감이 임의로 지정(최초지정 기준)한 학교다.

혁신학교를 운영 중인 학교들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학력 저하 우려가 과장됐다고 지적한다. 올해로 혁신학교 4년차인 서울 상천초등학교 한미라 교장은 “오히려 자기주도적 학습을 통해 장기적인 학업성취도를 높일 기초 체력을 기를 수 있으며 학부모 만족도도 매우 높다”며 “졸업생 인터뷰를 해봐도 중·고교에서 무리없이 적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혁신학교 학생의 학업성취도가 일반학교 학생에 비해 뒤처지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도 존재한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혁신학교 성과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혁신학교 학생은 6학년 때 국어·수학·영어 3과목 성취도가 모두 일반학교 학생보다 낮았다. 하지만 중·고교를 거치며 학업성취도 향상을 보인 집단에서 혁신학교를 경험한 학생 비율이 일반학교 학생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계는 혁신학교 효과에 대한 객관적 연구결과 마련과 학부모들과의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학부모가 교육당국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 못했거나 교육당국이 학부모가 느끼는 불안요소를 해소하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기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연구가 아닌 객관적인 연구결과 발표와 함께 학부모 소통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교육특구와 달리 교육에 대한 학부모 관심이 떨어지는 지역의 경우 그저 학교 의지에 따라 혁신학교 전환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며 “이 경우 오히려 계층 간 기초학력 격차를 심화시킬 가능성도 있으므로 혁신학교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하늘교육 대표도 “강남 등 교육특구에서도 혁신학교를 확대하려면 기존 혁신학교들의 뚜렷한 성과 발표와 이를 통한 학부모 공감대 형성이 전제돼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