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택배전쟁' 뒷짐진 국토부

by김성훈 기자
2018.04.13 06:00:00

''차없는 단지'' 트렌드로 자리 잡았지만
지하주차장 법규는 29년째 ''제자리''
주거환경·소비풍토 변화에 관심 기울어야
''폐기물 대란'' 뒷북 대처 환경부 반면교사 삼아야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 신도시 소재 한 아파트 단지에서 택배기사들이 놓고 간 택배 물품이 쌓여있다. (사진=독자제공)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다산 신도시에서 발생한 택배 갈등을 보도한 이후 많은 곳에서 이메일을 받았다. ‘내가 일하는 지역도 취재해 달라’는 택배 기사들의 하소연부터 ‘입주민들의 정당한 주장을 왜 갑질로 폄훼하냐’는 항의도 있었다.

다산 신도시 입주민들은 아파트 단지 내부에 일반·방문 차량이 다니는 도로가 없다 보니 교통사고가 발생해도 책임 소재를 가리기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다산 신도시 입주민 김모(42)씨는 “(택배 갈등 보도 이후) 얘기가 많았지만 입주인 입장에서는 안전에 대한 문제다 보니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반면 택배 기사들은 지상 이동로는 사용이 금지돼 있고 지하 주차장은 택배차량이 진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구별 배송은 힘들다고 말한다.

택배기사 김모(52)씨는 “주민들 마음은 이해하지만 택배기사들이 겪는 고충도 이해해 줬으면 한다”고 했다. 현재 양측은 무인 택배함 추가 설치와 실버택배 활용, 단지 내 택배 차량 저속 운행 등의 해결방안을 두고 협의를 진행 중이다.

물류업계에 따르면 몇 년 전만 해도 택배차량 차고가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 TV와 온라인 홈쇼핑 이용자가 급증하기 시작한 2004년 이후 현재(2.5~3m) 높이의 택배 차량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온라인 배송 물량이 늘자 택배 기사들이 배송 물량 확보와 업무 환경 개선을 위해 택배 차량 높이를 올렸다는 것이다.



주택 시장에서도 ‘차 없는 단지’는 수요자들을 사로잡는 키워드로 등장한 지 오래다. 실제로 아파트 분양 활황기였던 2014년부터 아동 안전과 친환경 생활여건을 내건 ‘차 없는 아파트’의 등장은 부동산업계의 큰 관심을 샀다. 이미 입주한 단지를 제하더라도 앞으로 입주를 앞둔 ‘차 없는 단지’는 수만 가구에 이른다는 게 건설업계의 설명이다.

주택시장과 물류업계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지만 지하주차장 법규는 수십년째 제자리다. 현행 주차장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공동주택의 지하주차장 높이는 바닥면으로부터 2.3m 이상이어야 한다. 이는 1990년 주차장법 시행규칙 개정 이후 한 차례도 변경되지 않았다. 올해로 29년째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법규 변경에 소극적이다. 지하 주차장 층고를 높이라고 하면 공사비가 증가할 수밖에 없어 건설업계가 반발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국토부는 “지상에 차 없는 아파트 시공을 위해 지하주차장 높이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시행자가 이를 반영해 설계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다산 신도시 택배전쟁은 단순히 택배기사와 주민간의 갈등이 아닌 변화한 주거환경과 소비풍토가 만들어낸 새로운 사회구조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국토부가 뒷짐 쥐고 “업체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구경만 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특히 건설사도 택배업계도 모두 국토부 소관이다. 건설이 1차관, 교통은 2차관이 담당한다. 환경부가 재활용 폐기물 문제를 수수방관했다가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총리에게 호된 질책을 당했던 일을 국토부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