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1단지 '쩐의전쟁']②표심잡기 경쟁에 "매일 전화·방문 스트레스 시달려"

by성문재 기자
2017.09.25 05:32:01

[르포]반포주공1단지 현장 가보니
정치권 선거전 방불케 하는 수주 경쟁 과열
같은 설명 반복에 홍보포스터 무단 훼손 등
박빙 속 이사비 무상지원 논란 최대 변수로

서울 서초구 반포동 주공1단지 안에 재건축 시공사 선정 총회 일정을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사진=원다연 기자
[이데일리 성문재 원다연 기자] “빨리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시공사 홍보요원들이 매일 전화하고 찾아와서 이미 다 아는 이야기를 자꾸 설명하니까 짜증도 나더라고요.”(40대 조합원 박모씨)

“지난주 토요일(16일) 아침에 출근해보니까 우리 사무실 유리문에 붙어있던 시공사 포스터를 누가 죄다 떼놨어요. 선팅지까지 같이 벗겨지는 바람에 결국 30만원 들여서 선팅을 다시 했습니다.”(반포본동 A부동산 대표)

서울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 수주를 위한 현대건설(000720)과 GS건설(006360)의 조합원 표심잡기 경쟁이 과열로 치달으면서 아파트 입주민들과 지역 공인중개사들의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했다.

지난 22일 오후 찾은 서초구 반포동 주공1단지 일대는 여느 때처럼 초·중학교 학생들의 하굣길 수다로 시끌벅적했다. 불과 하루만 해도 인근 엘루체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시공사 선정 합동설명회로 경쟁사간 팽팽한 기싸움이 펼쳐진 곳이다. 시공사 선정 총회도 아닌 설명회에 시공사 수주전에 뛰어든 현대건설과 GS건설 최고경영자(CEO)가 이례적으로 나란히 참석했다.

1973년 지은 반포주공 1단지는 지상 5~6층 99개동 전용면적 72~204㎡ 3590가구가 이뤄졌다. 재건축 사업을 통해 지하 4층~지상 35층 5388가구(전용 59~212㎡)로 탈바꿈한다. 현재 반포주공1단지의 시세는 전용 72㎥가 17억~18억원, 전용 105㎡가 25억~26억원 수준으로 서울 강남권에서도 초고가를 형성하고 있다.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조합은 오는 27일 송파구 잠실체육관에서 총회를 열고 시공사를 선정한다.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 사업은 공사비만 2조6000억원에 달한다. 사업비와 이주비, 중도금대출 등까지 더하면 총 10조원이 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건국 이래 최대 재건축 사업 규모인 셈이다. 3년 전부터 수주 전담팀을 조직해 조합원들의 니즈를 파악해온 GS건설과 올 들어 본격적으로 수주전에 뛰어든 현대건설이 지난 4일 제안서를 제출했다.

최근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인적이 드문 새벽시간에 인근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돌며 GS건설 측 홍보포스터를 떼놓는 일이 며칠 간격으로 연이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유리벽에 시공한 선팅지가 훼손돼 일부 사무실에서는 수십만원을 들여 선팅 시공을 새로 해야 했다. 경쟁사 직원의 소행일 가능성보다는 경쟁사를 지지하는 극성 조합원의 극단적인 행동일 것으로 추정되지만 CCTV로도 용의자를 특정하진 못했다.

반포주공아파트에 20년 넘게 거주했다는 60대 주부 이모씨는 “우편함에 홍보전단을 넣어놓거나 상가 앞에 양복을 빼 입고 늘어서서 인사를 하는 게 일상다반사”라며 “주변에서도 특별히 어떤 쪽이 될지 모를 정도로 의견이 갈리고 있는데 한강변인 만큼 오래가고 튼튼하게 지을 수 있는 시공사를 선택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C공인 관계자는 “경쟁 초기에는 후발주자로 들어온 현대건설이 GS건설을 많이 비방하고 공격하다가 나중에는 수세에 몰린 GS가 반격에 나서는 등 두 건설사 모두 비방전이 심각한 상황”이라며 “지역 공인중개사로서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했는데 결국은 양쪽 지지세력으로부터 다 욕을 먹고 있다. 정치에서 중도세력이 보수와 진보 양쪽의 비난을 받는 것을 이번에 실감했다”고 말했다.



9월 22일 서울 반포동 신반포로에 자리한 공인중개사 사무실 창밖에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시공사 선정 관련 홍보포스터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사진= 성문재 기자
내년부터 시행되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는 것이 최대 목표인 반포주공1단지 조합원들은 무엇보다 사업 일정에 차질이 없기를 바라고 있다. 현장 공인중개사들도 언론의 지나친 관심과 취재 경쟁을 부담스러워 하며 시공사 선정 이슈가 빨리 마무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주민들의 여론 파악에 능한 현장 공인중개사들조차 한쪽의 우위를 장담하지 못했다.

D공인 대표는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며 “최근 국토교통부가 현대건설의 이사비 7000만원 무상 지원에 대해 위법 소지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변수가 더 커졌다”고 말했다.

정수현(왼쪽) 현대건설 사장과 임병용 GS건설 사장
현대건설은 지난 4일 제출한 재건축 사업제안서를 통해 무상으로 조합원 가구당 7000만원의 이사비를 제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적법성 논란이 일자 법률 위반 검토에 착수한 국토부는 지난 21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위배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시정을 지시했다.

같은 날 열린 설명회에서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은 “논란이 된 이사비는 지자체와 조합의 협의를 거쳐 조합원들 모두의 이익으로 돌려줄 것을 약속드린다”며 “추후 이행보증증권을 제출하겠다”고 설명했다. 임병용 GS건설 사장은 “(현대건설이) 각종 특화 공사 금액이 이사비 포함 5026억원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공사가 무슨 공사인지는 공개하지 않는 것은 물건값을 잔뜩 올려놓고 물건은 보여주지도 않으면서 할인해 주는 척하는 블러핑과 같다”고 꼬집었다.

이번 이사비 이슈는 상당수의 표심을 자극했고 선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애초에 GS건설의 브랜드 이미지와 수주 노력에 점수를 주고 있다가 7000만원 무상 지원 조건에 혹해 현대건설 쪽으로 마음을 바꿨던 일부 조합원들은 최근 시정 지시가 나오면서 다시 원래대로 마음을 돌린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괜한 위법 논란으로 시공사 선정 이후 소송전 등에 휘말릴 경우 연내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하지 못해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적용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반면 GS건설이 이사비를 전혀 제시하지 않은 상황에서 현대건설이 위법 소지가 없는 쪽으로 수정해 지원하겠다고 한 만큼 현대 지지를 선언한 부류도 적지 않다는 주장도 많다. ‘7000만원 무상 지원’ 대신 선택 가능한 ‘5억원 무이자 대출 지원’은 당장 은행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현금흐름을 개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50대 후반의 조합원 김모씨는 “주민 입장에서는 어떤 쪽을 선택해도 괜찮을 정도로 조건이 좋아져 좋지만 걱정되는 건 사업이 늦어지는 것”이라며 “현대건설은 선정되지 않아도 소송을 하지 않는다고 선언을 했는데 GS건설은 하지 않는 것을 보니 선정 총회 이후 소송전이 벌어지면서 사업이 늦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