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미경 기자
2016.02.16 06:06:00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윤대성(77), 오태석(76), 이강백(69) 등 연극계 어르신의 작품들이 정부(한국문화예술위원회)지원 사업에서 줄줄이 떨어졌다. 극단 목화는 지난해 창단 30주년을 맞았지만 한국공연예술센터의 대관조차 받지 못했다. 1970년대 전위연극을 이끈 76극단의 기국서(64)는 생계를 위해 비천한 노동을 하고 있다. 이게 제대로 된 사회인가. 이렇게 야만적일 수 있는가.”
한국 대표 연출가 이윤택(64)이 최근 자신이 예술감독으로 있는 연희단거리패 3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작정을 하고 말을 꺼냈다. 한시대를 풍미했던 연극인이 노동자가 됐고 환자가 됐다며 한국연극이 정치적으로 예속되고 오랜 시간 한우물을 파온 예술가를 홀대하는 풍토에 분노를 쏟아냈다. 이윤택은 ‘시민K’ ‘오구’ ‘바보각시’ 등 한국적 연극원형을 찾으면서도 한 인간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작품으로 호평을 받아왔다. 스승인 오태석은 50여년간 60여편을 쓰고 연출해온 연극계 산증인으로 통한다.
이날 이윤택의 분노는 한국연극사의 자양분이 돼온 이들이 홀대를 받고 있는 현실을 향한 것이다. 이윤택조차도 특정 예술가에게 문예기금이 집중돼서는 안 된다는 이유(문체부 측의 주장이지만 예술계는 정치검열로 보고 있다)로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창작기금 희곡심사에서 100점을 받고도 탈락했다. 기장군의 지원약속을 받고 추진했던 부산 안데르센 어린이극장은 ‘또 이윤택’이란 이유로 운영예산 전액을 삭감 당해 개장 한달 만에 문을 닫았다. 1980~90년대 대학로의 연극을 지켰으나 이제는 현장서 소외된 40~60대 중견연극인들이 창작집단을 꾸려 돌파구를 모색하는 모습도 씁쓸한 단면이다.
정부와 공연계는 젊은 연극인에게 기회를 더 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의 자양분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먼저 길을 닦은 선배의 공로는 존중해야 마땅하다. 한국연극을 풍성하게 하고 능력 있는 젊은 연극인을 키운 건 선배다. 그런 선배를 보며 후배가 자극을 받고 성장해나갈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줘야 한다. 일본 연극계의 거장 니나가와 유키오(81)는 일본의 정서와 문화를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마지막 세대라며 추앙을 받는다고 한다. 스승을 홀대하는 건 시대를 홀대하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