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어주니 변하더라" 살 떨리는 구치소에서 만난 교화 베테랑
by송승현 기자
2024.07.18 05:30:00
■극한 넘는 공무원⑥박정호 수원구치소 기동순찰팀장
"사랑받지 못한 이들 많아…품어 주니 변화"
"엄벌주의 공감하나 재범 막으려면 교화 필요"
"교정 공무원, 가장 필요한 능력은 감정조절"
슈퍼맨은 아닙니다만 우리 일상을 지켜주는… . 정부 부처나 지자체 공무원 또는 준공무원들 중엔 겉으로 잘 드러나진 않지만 고강도의 고된 업무를 하는 공무원들이 많다. 본지는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공공복리를 위해 묵묵히 애쓰는 공무원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 박정호 수원구치소 기동순찰팀장. (사진=법무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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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이데일리 송승현 기자] 구치소라는 단어를 들으면 인상이 나쁘고 흉악한 범죄자들이 모인 곳으로 인식된다. 그만큼 이들을 수용·관리하는 교정직 공무원들의 애환은 두말하면 입이 아프지만, 우리나라 ‘4대 제복 공무원’이라는 자부심도 그 못지않게 크다. 수원구치소 기동순찰팀장 박정호 교감도 교정 공무원에 대한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이다. 기동순찰팀(CRPT)은 환자가 생기거나 수용자 간 다툼 등 긴급 시 투입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지난 2006년 교정 공무원으로 첫발을 내딘 그는 18년간 수용자들 관리·교화에 힘쓰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12개 구치소, 40개 교도소(민영 포함), 지소 3개 기관 등 총 55개의 교정기관이 있다. 이 중 수원구치소에는 2380여명이 수용돼 있다. 애초 1650명으로 설계됐으나 수용자가 꾸준히 늘며 현재 포화상태다. 그만큼 업무가 힘든데, 이 곳에서 박 교감은 베테랑 중 베테랑이다.
교정 공무원들이 가장 힘들다고 공통적으로 입을 모으는 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수용자를 상대하는 일이다. 실제 교정시설 내 정신질환자 비중은 빠르게 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교정시설 내 정신질환자는 지난 2014년 2560명에서 2023년 6094명으로 약 2.5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박 교감도 정신질환 수용자가 자신에게 변을 투척했던 일을 가장 어려웠던 순간으로 꼽았다. 그는 “분노가 치밀지만 그때도 감정조절을 해야 하는 것의 저희의 숙명”이라고 했다.
| 기동순찰팀이 교정기관에서 긴급 상황이 발생하자 출동하고 있다. (사진=법무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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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수용자들이 꼭 힘들기만 한 존재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오히려 사랑을 받지 못해 애정을 바라고 있다며 박 교감은 한 일화를 소개했다. 박 교감은 “직원폭행·난동 등 징벌 전력이 많은 수용자였으나 지속적으로 ‘잘할 수 있어’, ‘괜찮아’ 등의 말을 하며 얼굴과 머리를 쓰다듬어줬다”며 “다른 곳으로 이송가기 전 대기실에서 저의 손을 잡고 ‘고맙다’며 한참을 울다 갔을 정도로 변화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 내면에는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흔적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박 교감은 범죄자에 대한 국민의 엄벌주의 목소리에 공감하면서도, 여전히 교화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일례로 그는 성범죄자들을 대상으로 영화치료를 수행한 적이 있다. 성범죄를 저지른 수감자들에게 조두순의 범죄를 영화화한 ‘소원’을 틀어줬는데, 거울치료가 됐는지 이 영화를 본 이들이 울면서 자발적으로 피해자들에게 사과편지를 쓰는 등 진심으로 반성한 적이 있다고 한다.
박 교감은 “교정기관은 범죄자를 가두어 관리하고 때가 되면 내보내는 역할만 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며 “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사회에 복귀하기 때문에 실효적인 교정·교화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것은 수형자의 안정적인 사회복귀를 통한 재범방지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 수용자들의 교화를 위해 마약재활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법무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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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법무부는 수형자들의 교화 및 건전한 사회복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마약사범재활 전담교정시설(부산교도소, 화성직업훈련교도소) 설치 및 체계적인 치료·재활 프로그램 실시 △ 남부교도소에 교화에 특화된 소년전담 교정시설인 ‘만델라 소년학교’ 설치 및 대학진학준비반 등 교육과정 운영 △ 교화의 전문성을 더하기 위한 상담, 사회복지, 외국어 등 전문분야 교도관 채용·양성 등이 대표적이다.
수용자 교화에 방점이 찍혀 있는 만큼 박 교감은 교정 공무원에게 가장 요구되는 능력으로 감정조절을 꼽았다. 박 교감은 “수용자들을 공감해주면 지금까지 살면서 자기를 인정해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 경험이 없기 때문에 감동하게 되고 자연스레 내 편이 생겨 수용동을 장악해 나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동기부여를 위해 교정 공무원 5급 이상 정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현재 법무부 교정직의 5급 이상 비율은 3.1%로 국가공무원 일반직이 17.3%인 것을 고려하면 낮은 수준이다. 같은 법무부 내에서도 보호직(12.1%), 출입국관리직(6.9%)과 비교하면 교정 공무원의 5급 승진은 사실상 ‘하늘의 별 따기’다. 박 교감은 “사람의 영혼을 치료하고 내가 아닌 누군가의 길을 비춰주는 등대와 같은 고귀한 역할을 하는 공무원이 교도관”이라면서도 “압정구조의 직급체계를 개선해 많은 직원들에게 직급 상향을 통한 승진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