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급증, 노인은 운전대 놔야... "차 없으면 밥줄 끊겨"

by손의연 기자
2024.07.04 05:30:00

■불붙은 고령자 운전 논란
슈퍼까지 7km 경북 예천 독양리..버스 하루 4대, 차 없으면 고립
"운전대 놓으면 생계 막막"..6070 택시·화물기사 호소
"운전 능력 따른 '조건부 면허' 필요..지역·주행시간 제한 등 고려해야"

[이데일리 손의연 김형환 김한영 수습기자] “100세 시대잖아요. 80살까지는 충분히 운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지 않겠습니까.”

고령화 사회가 도래하면서 노인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실제 시청역 사고로 9명의 목숨을 앗아간 가해자는 68세의 운전 기사로 밝혀졌으며 앞서 지난 2월에는 서울 은평구 연신내 연서시장 인근 도로에서 80대 남성이 브레이크 대신 가속페달을 밟아 1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쳤다. 지난 3월에는 서울 강남구 구룡터널 교차로 인근에서 80대 남성이 운전 부주의로 7중 연쇄 추돌사고를 냈다. 지난해 3월에는 전북 순창 농협 조합장 투표 중 70대가 몰던 1톤(t) 트럭이 유권자들에게 돌진해 4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친 사고가 났다. 이번 시청역 사고를 비롯해 고령자에 의한 교통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자 ‘노인은 운전대를 놔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하지만 자가용 외 다른 운송수단이 마땅치 않은 농어촌 지역의 노인들이나 택시나 화물차 등 운전을 생업으로 삼아왔던 이들로선 운전대를 놓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노인 운전 관련 폭넓은 안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경북 예천. 한 노인이 보행기에 의지해 걷고 있다. (사진=손의연 기자)
지난 1일 찾은 경북 예천 독양리. 이곳은 60~70대 노인이 사는 가구가 대부분으로 농사를 짓는 집이 많아 승용차와 화물차를 모두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인근에 4개 마을이 모여 있지만 버스 정류장은 3개뿐이다. 하루에 버스는 오전부터 오후까지 네 번 지나간다. 가장 가까운 슈퍼마켓은 차로 7㎞ 정도 이동해야 한다. 한때는 슈퍼에서 마을을 오가는 셔틀 차량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인구 감소로 사라졌다.

결국 두부 한 모를 사려 해도 운전을 하지 않으면 당장 움직일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 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60대 김모씨는 “대부분 60~70대가 많고 그 이상 나이가 있으신 할머니들은 장보러 갈 때 버스를 타는 경우도 많은데 시간을 맞추지 못하기도 한다”며 “차가 있어야 시내에서 묘종을 사와 농사도 짓고 하니 운전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부인 B씨도 “시내에 있는 교회를 갈 땐 내가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에 할머니들을 태우고 간다”며 “버스 수가 적고 대체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없으니 할머니들이 평소에 움직이기 힘들어 하신다”고 전했다.

(그래픽=김정훈 기자)
이러한 상황 탓에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는 노인을 대상으로 10만~30만원 정도를 지원하는 내용의 캠페인은 이 어르신들에겐 먼 나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실제 사고를 줄이기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2018년 고령 운전자 면허 반납 제도를 도입했지만 면허 반납자 수는 매년 2%가량에 불과한 실정이다. 현행 도로교통법 제87조에 따르면 직전 운전면허증 갱신일에 65세 이상 75세 미만일 경우 5년, 75세 이상일 경우 3년 안에 운전면허를 갱신해야 하지만 갱신 절차 없이 면허증을 소지하고 있는 노인이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근 마을에 사는 배모(70)씨는 “75세부터 (인지능력)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데 여든까지 운전이 가능할 것 같지만 아무래도 신체 기능이 좀 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은 있다”며 “하지만 10만원 지원받으려고 면허증을 반납하는 사람들이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권모(65)씨도 “택시를 부르면 군에서 택시비를 지원해주는 사업도 있고 가끔 이용하는데 사람을 몇 명 모아야 하고 한 번에 병원이나 시장 등 한 곳만 갈 수 있어 불편함이 있다”며 “병원 같이 좀 멀리 편하게 가려면 자식한테 기대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지난달 서울 동작구 서울시교통문화교육원에서 열린 개인택시 신규자 교육 현장. 참가자들이 심폐소생술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김형환 기자)
운전이 생업인 노인들은 더 절박하다. 운전대를 놓게 되면 당장 밥줄이 끊기는 탓이다. 서울 종각역 앞에서 만난 택시기사 윤모(62)씨는 “승객 입장에서 나이 많은 기사가 있으면 불안하긴 할 것 같다”면서도 “6070 택시기사 대부분은 대계 유지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아들도 있고 노모도 모시고 있는데 면허를 반납하라고 하면 너무 당황스러울 것”이라고 털어놨다.

스무살 때부터 법인택시를 몰았다는 서모(72)씨는 “운전이 밥벌이인데 그걸 못하게 하면 어떻게 하나”며 “술, 담배도 안하고 건강관리를 해왔다. 개인별 능력치를 파악해 운전을 계속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화물트럭을 운전하는 김모(68)씨도 “큰 기술도 배움도 없어 화물차 하나로 가정을 꾸려왔는데 힘 닿는 날까지 일하고 싶다”며 “이걸 못 하게 하면 뭘 할진 모르겠다. 운전대를 놓게 되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딜레마 해결을 위해 정부는 고령자의 운전능력에 따라 야간운전이나 고속도로 운전을 금지하는 등 내용을 담은 ‘조건부 면허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 역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정책이라는 의견이다. 최재원 도로교통공단 부산지부 교수는 “고령자 면허 반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현 상황에서 조건부 면허가 해답이 될 수 있다”며 “다만 초기에는 자동말소 같은 조치보단 주행시간 제한이나 지역 제한 등 낮은 수준의 단계부터 진행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