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황병서 기자
2023.12.15 06:00:00
14일 경기 고양 서울시립승화원 ‘그리다’ 빈소
서울시, 비영리단체 등과 공간 마련·운영
자원봉사자, 상주 역할·조문 읽기도
“늘어가는 무연고 장례…지자체 대응 서둘러야”
[고양(경기)=이데일리 황병서 기자]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린 14일 오전 10시 경기 고양시 덕양구의 서울시립승화원. 2평 남짓한 공간의 ‘그리다 빈소’에는 밥과 국, 과일과 함께 이름이 적힌 두 위패가 놓여 있었다. 이곳은 연고 없이 세상을 떠난 무연고 사망자와 저소득층 장례를 위해 서울시가 마련한 공간이다. 이날 무연고 사망자 2명의 합동 공영장례식이 열렸다. 빈소에는 무연고 장례 지원 비영리단체 ‘나눔과나눔’, 서울시 의전 위탁업체 ‘해피엔딩’, 자원봉사자 등이 모여 고인의 가족을 대신해 외로운 길을 함께했다.
이날 장례는 고인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두 고인의 생년월일과 마지막에 있었던 주소지, 화장 후 봉안·산골 계획 등이 소개됐다. 묵념과 함께 고인을 위한 예식이 이어졌다. 향을 피운 뒤 밥그릇을 열고 수저를 모아 올려두는 의식이 진행됐다. 상주 역할을 맡은 자원 봉사자 2명이 무릎을 꿇고 술 한 잔씩을 올린 뒤 큰절을 했다. 나눔과나눔 관계자가 “외롭고 힘들었을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영원히 가시는 길이 아쉬워 술 한 잔 올려 드렸습니다”고 추도문을 읽었다.
잠시후 빈소에 있던 모두가 큰절을 올렸다. 이어 밥그릇을 덮으며 고인의 식사를 물리는 절차가 이어졌다. 한 자원 봉사자는 “이 세상 미련 다 접어두시고 잘 가시라. 살아오면서 서운했던 모든일을 함께 내려놓으시고 이제 편히 안녕히 가십시오. 고이 잠드소서”라고 조문을 읽었다.
무연고 장례식장에서 10년째 봉사활동을 해왔다는 70대 강모씨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데 너무 안타깝게 가신 분들도 있고 해서 복잡한 마음이 매번 생긴다”며 “서울시만 하는데 다른 지자체로도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자원봉사자는 “50대면 아직 혈기왕성할 나이인데 안타깝다”며 “우리가 빈소를 지켜서 쓸쓸한 연말이 아니었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장례가 끝난 뒤 시신이 안치된 관이 도착했다는 안내가 나왔다. 장례 관계자들은 1층 정문에 와 있는 관을 들어 화장터로 옮겼다. 수골실 앞에선 봉사자들은 연신 “나무아비타불”을 외쳤다. 화장을 마친 무연고 사망자들의 유골은 승화원 내 유택동산에 산골되거나 경기 파주의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집’으로 옮긴다. 연고자가 시신을 위임하겠다고 밝힌 경우에 화장 직후 산골한다. 연고자와 끝내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나, 연고자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면 추모의집에 5년간 봉안된다. 나중에라도 연고자가 나타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시는 2018년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공영장례 서비스를 시작하며 무연고 사망자 전용 빈소를 마련했다. 무연고자가 숨질 경우 장례 의식 없이 입관과 동시에 화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시설공단 관계자는 “가족과 지인 없거나 재정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장례의식 없이 안치실에서 화장장으로 바로 가는 직장방식을 택해왔다”면서도 “고인의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지 않도록 공공이 배려해 사회적 애도가 가능하도록 최소한의 장례의식 공간과 시간을 보장하고자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의 무연고자 등을 대상으로 한 공영장례 지원 건수는 매년 늘고 있다. 서울시 시설공단에 따르면 2019년 무연고(일반 무연고·저소득층) 지원 건수는 434건이었으나, 2020년 667건, 2021년 864건으로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1112건을 기록했으며 올해는 11월 기준으로 1093건에 달한다.
무연고 장례 지원 비영리단체 나눔과나눔의 김민석 팀장은 “죽음 이후 장례라는 영역에서 생기는 차별과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마련됐다”며 “형제도 없고 비혼주의자도 많아지는 미래에는 무연고 연고자들이 많아질 가능성이 큰 만큼 공공의 장례 지원 제도 등을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며 대응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