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증시]"연내 인하 없다"…국채금리 상승에 투심 약화
by김정남 기자
2023.03.29 06:11:38
블랙록 "연내 금리 인하 없다"
국채금리 상승에 기술주 부진
규제 강화 시사에 은행주 약세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미국 뉴욕 증시가 일제히 하락했다. 이번 은행권 위기 이후 규제를 더 강화할 수 있다는 당국 기조가 확인되면서 투자 심리는 약화했다. 게다가 장중 국채금리마저 상승하면서 약세 압력을 받았다. 은행권 불안이 어떤 식으로 끝날지 불확실한 만큼 시장 변동성은 당분간 커질 것으로 보인다.
28일(현지시간)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이날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블루칩을 모아놓은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0.12% 하락한 3만2394.25에 마감했다. 대형주 중심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0.16% 내린 3971.27을 기록했다. 기술주 위주의 나스닥 지수는 0.45% 떨어진 1만1716.08에 거래를 마쳤다. 나스닥 지수는 2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이외에 중소형주 위주의 러셀 2000 지수는 0.06% 떨어졌다.
3대 지수는 장 초반부터 하락 압력을 받았다. 은행권 불안이 사태 초반보다는 다소 진정했다는 인식에 국채금리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뉴욕채권시장에서 연방준비제도(Fed) 통화정책에 민감한 미국 2년물 국채금리는 장중 4.078%까지 올랐다. 전거래일과 비교해 10bp(1bp=0.01%포인트) 이상 뛴 수치다. 글로벌 장기시장금리 벤치마크인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3.577%까지 상승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올해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는 없을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면서 위험 회피 심리에 영향을 미쳤다. 웨이 리 수석투자전략가를 비롯한 블랙록 투자연구소(BII) 전략가들은 “투자자들은 올해 연준이 금리를 내릴 것이라고 너무 확신하고 있는데, 나중에 대가를 치를 수 있다”며 “연준은 끈적끈적한 인플레이션과 싸우기 위해 경기 침체를 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현재 시장은 연준이 오는 7월, 늦어도 9월부터는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공개석상에서 “연내 인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음에도 시장은 곧이곧대로 믿지 않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이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리 전략가는 최근 은행권 위기에 대해서는 “연준은 우리 예상보다 더 심한 신용 경색이 발생하고 훨씬 더 깊은 경기 침체가 발생할 때에만 금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인플레이션 둔화에 우선순위를 둘 것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그는 그러면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주식에 대해서는 비중 축소를 조언했다.
장중 낙폭을 더 키운 것은 연준의 규제 강화 신호였다. 마이클 바 연준 금융감독 담당 부의장은 이날 상원 은행위원회 청문회에서 “자산 규모가 1000억달러 이상인 은행에 대해 더 엄격한 규제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규제 강화에 대해서는 “연준은 규정을 바꿀 수 있는 상당한 재량이 있다”며 “더 엄격한 자본·유동성 규정에 대한 부분 역시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날 이미 배포한 발언문과 같이 현재 은행권 상황에 대해서는 “건전하고 탄력적”이라고 재차 평가했지만, 추후 금융권 규제에 대해서는 그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이다.
바 부의장은 SVB 뱅크런이 당초 알려진 것보다 더 심각했다는 점도 거론했다. 알려진 사실은 SVB 유동성 위기설이 처음 불거진 9일 하루 SVB 고객들이 인출한 예금이 420억달러 규모라는 것이다. 하지만 바 부의장은 “그 다음날인 10일 아침 SVB는 고객들 요청에 따른 예금 인출 규모가 훨씬 더 클 것이라고 우리에게 알렸다”며 “그 규모는 총 1000억달러였다”고 전했다. SVB가 파산하지 않았다면 이틀 만에 1420억달러가 은행 밖으로 나갔을 것이라는 의미다. 이는 지난해 말 기준 SVB 총예금 1750억달러의 81%에 달하는 수치다. 미국 16위 은행의 예금이 불과 이틀 만에 빠져나갔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에 은행주 전반은 낙폭을 키웠다. 유동성 위기설이 도는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주가는 2.32% 가까이 하락했다. 팩웨스트 뱅코프의 경우 5.01% 떨어졌다. S&P 지역은행 상장지수펀드(ETF)도 0.09% 하락했다.
시장금리가 오르면서 애플(-0.40%), 마이크로소프트(-0.42%), 아마존(-0.82%) 등 주요 빅테크주 역시 줄줄이 떨어졌고, 상대적으로 나스닥 지수는 더 하락했다. 인베스코의 브라이언 레빗 시장전략가는 “2거래일 연속 금리가 상승하고 있다”며 “기술주는 뒤처진 종목 중 하나”라고 했다. 특히 애플은 이날 후불 결제 서비스인 ‘애플 페이 레이터’를 출시하기로 발표했음에도 주가 하락을 피하지 못했다.
미국 전역의 집값은 7개월 연속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S&P 다우존스 지수(S&P Dow Jones Indices) 등에 따르면 올해 1월 S&P 코어로직 케이스-실러 주택가격지수는 전월 대비 0.5% 내렸다. 전월인 지난해 12월 당시 0.8% 하락보다 그 폭은 줄었지만, 지난해 6월 정점 이후 7개월 연속 내림세를 이어갔다. 10개 주요 도시의 지수와 20개 주요 도시의 지수는 각각 0.5%, 0.6% 떨어졌다. 주택가격 하락은 인플레이션 둔화에 있어 긍정적인 신호다.
전년 동월과 비교한 집값은 3.8% 올랐다. 팬데믹 직전인 2019년 12월(3.7%) 이후 가장 낮은 상승 폭이다. 지난 3월 20.8%를 정점으로 10개월 연속 상승 폭이 줄고 있다.
소비심리는 다소 반등했다. 컨퍼런스보드가 발표한 이번달 소비자신뢰지수는 104.2를 기록했다. 전월(103.4) 대비 상승했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100.7)마저 웃돌았다. 다만 지난해 평균인 104.5에는 미치지 못했다.
유럽 주요국 증시는 소폭 강세를 보였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의 DAX 30 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0.09% 상승했고, 프랑스 파리 증시의 CAC 40 지수는 0.14% 뛰었다. 영국 런던 증시의 FTSE 지수는 0.17% 올랐다.
국제유가는 또 상승했다. 쿠르드 자치정부의 원유 수출 중단에 공급 부족 우려가 나왔기 때문이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0.54% 오른 배럴당 73.2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