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감출 수 없는, 이재용의 바이오 사랑

by안승찬 기자
2018.08.08 06:00:00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안승찬 기자] “특히 바이오는 제2의 반도체가 될 수 있도록 과감한 투자와 혁신을 지속해 나가겠습니다.”

지난 6일 삼성전자 평택공장을 찾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삼성 측이 했다는 말이다. 이 말 한마디로 삼성의 바이오 회사인 삼성바이로직스의 주가는 이틀간 8% 이상 급등했다.

엄밀히 말해 “바이오를 제2의 반도체로 키우겠다”는 말은 삼성의 오너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함께 자리에 있던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대표이사가 했던 말도 아니다. 삼성전자의 대표이사중 한명이 삼성을 대표해 발언하는 과정에서 언급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비공개 간담회에서 이 부회장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이 부회장이 직접 바이오를 언급하기엔 어려운 사정이 있다. 일단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소속이다.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마당에 이 부회장이 그룹 전체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얘기하기엔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

더구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아직도 분식회계 논란을 빚고 있다. 김 부총리를 만나는 자리에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 대신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 대표이사가 참석한 것도 이런 점을 고려했다. 어찌 보면 삼성이 바이오 사업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웠던 시점이다.

그럼에도 삼성은 바이오 사업에 대해 강조했다. 바이오가 앞으로 삼성의 핵심 미래 먹거리 사업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전달했다. 예민한 시점에 불구하고 삼성이 “바이오를 제2의 반도체로 키우겠다”는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건, 역설적으로 바이오 사업에 대한 이 부회장의 의지가 강하게 읽히는 대목이다.

삼성이 김 부총리에게 건의한 내용에도 바이오 사업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돼 있다. 바이오시밀러(바이오 복제약)의 약가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건의다. 바이오시밀러가 출시될 경우 오리지널 신약의 약가가 30% 강제 인하되는 점도 바이오시밀러 시장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부총리는 “일부는 전향적으로 해결하고 일부는 좀 더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삼성의 바이오 사업은 이 부회장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이 부회장은 2010년 삼성이 신수종 사업으로 바이오에 처음 투자를 시작했을 때부터 깊숙이 관여했다. 로슈, BMS, 썬파마, 존슨앤존슨 등 글로벌 제약회사의 바이오 의약품을 위탁생산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이 부회장은 해당 기업 최고경영자를 직접 만나 계약을 성사시키며 의욕을 보였다. 지난 2015년 아시아판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보아오포럼 개막연설에서 이 부회장은 “IT, 의학, 바이오의 융합을 통한 혁신에 큰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바이오 사업에 대한 의지를 전 세계에 알렸다.

바이오 사업은 묘하게 반도체와 닮았다. 첨단 연구개발 역량뿐 아니라 정교한 생산기술이 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바이오는 살아 있는 세포를 다룬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생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초미세 공정을 다루는 반도체처럼 세밀한 관리 노하우 없이는 바이오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다. ‘관리의 삼성’이 반도체에 이어 바이오에 뛰어든 이유다.

게다가 바이오 의약품은 아직 초기 시장이다. 전 세계 시장에서 바이오 의약품의 비중은 24% 수준에 불과하다. 세계 바이오 의약품은 2020년까지 연평균 6%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에는 바이오 의약품 시장 규모가 1조달러(약 1124조원)를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미 삼성바오로직스는 세계 최대 규모의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다. 막대한 자금을 초기부터 투자했다. 초기 바이오 의약품 시장을 장악한 상태다. 바이오 의약품 시장이 커질 수록 삼성의 수혜도 커질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 사업을 통해 삼성을 글로벌 회사로 키웠다. 이 부회장은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바이오 사업을 통해 ‘이재용의 새로운 삼성’을 만들고 싶어 한다. 바이오 사업은 반도체에 이은 삼성의 미래이자 이 부회장의 미래다.

삼성 한 관계자는 “삼성의 바이오 사업이 분식회계 논란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삼성의 핵심적인 미래 사업이라는 점에는 회사 내에 이견이 없다”면서 “전자와 함께 바이오 사업에 대한 이 부회장의 의지가 확고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