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의 역설]상장전 효자 RCPS…IPO땐 천덕꾸러기 신세

by이명철 기자
2018.02.27 06:00:00

벤처기업 투자유치시 전환상환우선주 활용 증가
상장 후 부채 인식…상장과정서 보통주 전환
투자자 협조 필수적‥상환권 보유가 관건

[이데일리 이명철 고준혁 기자] 국내 벤처기업들이 모험 자본 투자를 이끌어내는 수단의 하나로 전환상환우선주(RCPS)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당장 마땅한 담보가 없는 벤처 특성상 나중에 돈으로 갚거나 사업성이 있다면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장점을 앞세워 투자금을 모을 수 있어서다. 하지만 벤처기업이 막상 증시에 입성하려 기업공개(IPO)를 준비할 때는 지금까지 투자받은 RCPS가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

21일 한국벤처캐피털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창투사들이 벤처기업에 신규 투자한 금액은 2조3800억원 규모다. 이중 우선주(RCPS 포함)가 절반가량인 1조500억원에 수준이다. 5년 전 2013년(5000억원)보다 두 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벤처기업이 자본을 조달하려 RCPS를 적극 발행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창업투자사 임원은 “RCPS은 주식으로 전환하기 전까지 채권처럼 이자 받을 수 있고 보통주로 전환해 매도하면 차익을 남길 수 있어 벤처기업 투자 시 선호하는 유형”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상장 전에는 벤처기업의 든든한 자금줄 역할을 하던 RCPS가 증시에 입성할 시점이 되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상장 전후에 따라 기업에 적용하는 회계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통상 한국회계기준(K-GAAP)를 사용하는 비상장 기업이 상장사가 되면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IFRS)을 적용해야 하는데 리픽싱 조항이 있는 경우 부채로 인식한다. 상장 전 자본으로 인정받았던 자금이 상장 때 부채로 인식될 수 있다는 뜻이다. 부채가 많으면 IPO 과정에서 기업가치도 낮게 평가받는다. 특히 실적 없이 기술 특례로 상장하는 바이오기업은 부채규모가 조금만 늘어도 재무제표가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상장 전 RSCP를 보통주로 전환하는 사례가 많다.

실제 이달 13일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동구바이오제약(006620)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약 21억원 가량의 전환상환우선주가 있었는데 IPO 직전 보통주로 전환했다. 지난해 5억6000만원어치 전환상환우선주가 남았던 링크제니시스(219420)도 이달 5일 상장 이전에 보통주 전환을 마쳤다.



3년 전 상장한 바이오기업 재무 담당자는 “상장 이전에 RCPS 형태로 투자받은 물량이 꽤 됐지만 IFRS를 적용하면 가뜩이나 자본이 빈약한 상태에서 부채만 늘어나기 때문에 IPO 전에 모두 보통주로 전환해야 했다”고 전했다.

상장과정을 심사하는 한국거래소도 RCPS의 보통주 전환을 유도하고 있다는 게 VC업계 전언이다. 거래소 상장심사팀 관계자는 “회계상 부채로 잡히는 RCPS를 자본으로 인정해야 재무 안정성 측면에서 유리하다”며 “상장 과정에서 보통주 전환이 더 바람직한 편이라고 협의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RCPS를 보통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투자자인 VC측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전환권리가 투자자에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다. VC입장에서 투자한 회사가 증시에 상장하는 게 더 이익이라 대부분은 동의한데는 게 업계관계자의 전언이다.

한 VC업체 부사장은 “90% 이상의 VC들은 상장 직전에 RCPS를 보통주로 전환해 부채비율을 낮춰준다”며 “RCPS를 더 가지고 있다가 상장 뒤 전환하면 더 큰 이익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 차이가 크지 않고 투자한 회사가 잘 상장하는 것이 더 큰 목표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투자자와 기업 간 사이가 틀어졌을 경우 파열음이 나오기도 한다. VC업계 관계자는 “대주주와 관계가 좋지 않은 투자자는 종종 (보통주 전환을) 하지 않을 때도 있다”며 “상장 이후 회사 상황이 악화해 주가가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봐 배당 여력이 큰 RCPS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런 상황에서 IPO를 진행하면 기업가치가 떨어질 수도 있다. 기업 성장을 위해 유치한 투자금액이 상장 걸림돌로도 작용할 수 있는 셈이다.

◇용어설명:RCPS는 보통주에 상환권과 전환권, 우선권을 부여한 복합금융상품이다. 나중에 계약 조건에 따라 현금으로 상환하거나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보통주로 전환할 때는 전환가격을 조정(리픽싱)할 수 있어 기업가치를 정확히 산출하기 어려운 벤처기업 투자 용도로 쓰임새가 많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