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재호 기자
2016.01.12 06:00:00
[이데일리 이재호 기자] 국내 정유사들은 지난 2년 간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지난 2014년 유가 폭락으로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지만 지난해는 저유가 기조 속에서 석유제품 수요가 살아나면서 일제히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새해 벽두부터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외교적 마찰을 빚는 등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유가 향방은 또 다시 미궁으로 빠졌다. 이제 기름 장사로는 안정적인 이익 확보와 지속 성장을 담보하기가 어려워졌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정유사들은 석유화학 사업 확대 등 수익구조 다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자원개발과 배터리·소재 분야로 사업 범위를 넓히는 작업도 추진 중이다.
석유화학 자회사를 거느린 SK이노베이션(096770) 외에도 GS칼텍스와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사들은 석유화학 사업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최근 가장 공격적인 투자에 나선 곳은 에쓰오일이다. 에쓰오일은 지난해 9월 4조7890억원 규모의 잔사유 고도화 컴플렉스 및 올레핀 다운스트림 컴플렉스 건설 계획을 최종 확정하고 투자를 시작했다. 2018년 완공이 목표다.
값싼 잔사유를 원료로 폴리프로필렌(PP)과 프로필렌옥사이드(PO) 등 고부가가치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다.
GS칼텍스도 석유화학 분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GS칼텍스 관계자는 “올해 저유가 기조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가동률이 높아지면서 제품 정제마진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며 “경영환경 변화에 선제 대응하고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석유화학 등의 사업에서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유사들의 사업 영토 확장에 대해 기존 석유화학 기업들은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에쓰오일의 경우 프로필렌옥사이드 생산라인을 건설하면서 국내에서 유일하게 프로필렌옥사이드를 생산해 왔던 SKC와 직접 경쟁을 펼치게 됐다.
이 때문에 석유화학 기업과 합작 형태로 사업을 추진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롯데케미칼과 콘덴세이트 정제 및 혼합자일렌(MX) 제조공장을 공동으로 건설 중이다. 올해 하반기 상업가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글로벌 파트너십 구축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는 시도도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SK이노베이션 자회사들의 행보가 두드러진다.
SK에너지는 최고경영자(CEO) 직속으로 ‘글로벌 사업개발실’을 신설하고 해외 정유사들과의 제휴에 주력하고 있다. 장기 계약을 이끌어내 고정적인 수익원을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SK종합화학은 CEO의 주요 근무지를 아예 중국으로 옮겼다. 최대 수요처에서 고객 발굴에 매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SK루브리컨츠도 스페인 렙솔과 윤활기유 합작법인을 설립한 데 이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유럽지역 헤드쿼터를 새로 설립하는 등 현지 시장 공략에 주력할 방침이다.
자원개발도 새로운 사업모델로 각광을 받고 있다. GS에너지는 지난해 7월 아랍에미리트(UAE) 육상 광구에서 확보한 원유를 GS칼텍스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 광구는 지난해 5월 GS에너지가 지분 3%를 취득했다.
이에 앞서 SK이노베이션은 미국에 설립한 자회사 SK E&P 아메리카를 통해 현지 석유개발기업 플리머스와 KA 헨리가 보유한 광구 2곳을 인수한 바 있다. 셰일가스와 셰일오일 개발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이밖에도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 진출에 중국 베이징자동차를 고객으로 확보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으며, GS에너지는 배터리 소재 사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체 매출에서 석유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크지만 수익성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추세”라며 “새로운 도전에 나서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환경이 됐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