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빗나간 경기부양

by송길호 기자
2015.07.16 06:00:00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경기부양은 정책의 앙상블이다. 재정과 통화, 거시정책들의 정교한 조합으로 이뤄진다.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그러나 정책의 전달체계를 정비해야 하는 법. 경제의 혈맥 금융시스템이 오작동하면 확장적 재정정책도, 완화적인 통화정책도, 탄력적인 환율정책도, 그 어떤 부양책도 통(通)할 수 없다.

정부가 올해도 경기부양 패키지를 선보였다. 46조원+α의 규모에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추경, 정책금융…. 단골메뉴들이 예외없이 등장했다. 한국은행도 역대 최저치의 저금리기조를 유지하며 화답한다.재정과 통화를 아우르는 정책조합, 예년처럼 경기부양의 필요조건은 마련됐다. 하지만 지도에도 없는 길로 포장된 1년전의 부양책처럼 정책효과는 미지수다. 부양책의 약발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이유는 자명하다. 정책이 구현되기까지의 적지 않은 시차, 예기치 못한 돌발변수의 발생,정치권의 무능과 비협조. 한결같이 정책당국이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들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정책의 전달체계에 있다. 통화정책의 파이프라인 금융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부양책의 효과가 잠식되고 있다. 1990년대초 일본이 그랬다.

자산버블이 붕괴되고 금융시장이 디플레이션에 빠진 상태에서 일본 정책당국은 대대적인 부양책을 펼쳤다.제로 금리상태를 유지하며 금융부문에 유동성을 투입하고 재정지출을 통해 자금을 공급했다. 하지만 경색된 금융시장에 찔끔찔끔 풀린 돈은 소비와 투자로 연결되지 않았다. 대신 가계와 기업의 금고로 흘러들어가 경기진작의 마중물이 될 수 없었다. 신용경색을 제거하기 위한 근본적인 구조개혁 없이 단기 부양책만 골몰한 결과, 실탄만 낭비한 채 20년 장기불황의 터널에 빠지게 된 거다.



국내 금융시장도 일본 금융시장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돈맥경화에 걸린 듯 돈이 돌지 않고 있다. 이미 유동성의 함정에 빠졌는지도 모른다. 실제 확장적 재정지출, 완화적인 통화정책으로 시중에 돈은 많이 풀렸지만 통화유통속도(회전율)가 떨어지며 통화승수(본원통화 한 단위가 몇 배의 통화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 는 계속 하락하고 있다. 은행의 자금중개기능· 신용창조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신용경색이 심화되고 있다.

금융시장에 돈이 돌지 않는 건 은행권의 보신주의 탓도 있다.위험회피성향이 높아진 은행들은 중소기업대출보다는 대기업대출, 신용대출보다는 주택담보대출을 선호하고 있다. 일시적 자금난에 빠진 기업들에 대한 신용보강이 적절히 이뤄질리 없다. 더욱 큰 문제는 제도적 제약이다. 지난 2009년 은행의 건전성 규제를 위해 금융당국이 예대율(대출액에 대한 예금액의 비율)을 100%이내로 제한한 이후 은행들의 대출여력은 크게 약화됐다. 은행들이 돈을 풀 수 있는 연결망을 타이트하게 봉쇄한 채 신용경색에 빠진 금융시장에 돈만 살포하니 정책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신용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의 부양책은 밑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공산이 크다. 마치 모르핀를 맞아 연명하는 환자와도 같다. 모르핀을 계속 투여하지 않으면 언제 쓰러질지 모르듯 펀더멘탈이 약해진 나라경제는 부양책을 계속 반복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지는 법이다.

결국 금융시스템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야 한다. 확장적인 거시정책과 금융개혁을 연결할 일이다. 여신규제를 탄력적으로 완화하고 금융기관의 리스크 회피 현상을 줄이는 유인체계를 통해 신용경색을 풀어야 할 필요가 있다. 금융시스템에 돈이 제대로 돌도록 유도하고 실물경제를 튼튼히 뒷받침하도록 금융부문을 재설계하는 일, 금융개혁의 화살은 이 같은 신뢰의 제고를 정조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