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구칼럼] 데블스 애드버킷을 허(許)하라

by김민구 기자
2015.02.27 06:05:01

오래전에 본 영화 가운데 ‘데블스 애드버킷’(The Devil’s Advocate)이 있다. 우리말로 하면 ‘악마의 변호사’ 혹은 ‘악마의 대변자’ 다. 이 영화는 뉴욕의 거대 법률회사 회장(악마)에 스카우트된 시골출신 변호사가 출세를 위해 사건을 무차별적으로 수임하다 결국 파멸하는 꿈을 꾼 뒤 진정한 법조인으로 거듭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악마의 변호사는 사악하지 않다. 그는 상대방 의견에 모순이 있는 지를 알아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반대 의견을 제시한다. ‘선의의 악역’이나 진배없다. 이런 특성 때문에 카톨릭교회는 새로운 성인 후보를 천거하면 그의 성품과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악마의 변호사를 임명하는 전통을 400여년 이상 지켜왔다.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악마의 변호사는 사실 우리의 오랜 역사의 한 단면이다. 세종대왕은 어전회의 때마다 예조판서 허조(許稠)를 참석시켰다. 허조는 회의때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품을 지녀 대신(大臣)들이 기피한 인물이었다. 세종이 자신에게 반기를 들 수 있는 허조를 회의에 참석시킨 것은 그를 통해 대신들이 빠질 수 있는 집단사고(groupthink)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집단사고는 의사 결정 때 만장일치를 이끌어 내려는 속성 때문에 자칫 비합리적 결론을 내는 단점을 안고 있다. 특히 결속력이 강한 집단일수록 의견일치에 대한 의지가 강해 다른 이의 의견을 무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럴 경우 자기 신념과 일치하는 의견은 수용하고 다른 의견은 무시하는 ‘확증편향’에 빠질 수 있다. 사고의 오류를 이끄는 확증편향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의 신념이나 철학과 다른 이들의 주장을 적극 수용해 논리의 모순을 점검하는 개방적 자세가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취임 2주년을 맞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2년간의 공과(功過)를 평가하고 남은 3년을 성공으로 이끌어야 하는 책무를 떠안고 있다. 이를 위해 박 대통령은 ‘인(人)의 장막’에서 벗어나 민심 풍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눈과 귀를 틔워줘야 한다.

대통령이 예스맨이나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들에 둘러싸여 국민의 어려움을 제대로 알지 못할 때 쓴소리와 때로는 반대 의견을 가감없이 개진하는 참모진이 있어야 한다. 최근 임명된 이완구 국무총리와 차기 청와대 비서실장이 악마의 변호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총리가 취임의 변(辯)에서 대통령에게 쓴소리 못하는 총리는 존재 의미가 없다며 자신이 악역을 맡을 의향이 있음을 내비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박대통령이 마음을 열고 남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한다면 지금까지의 ‘소통부재’ 논란은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 사실 박대통령도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때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청와대에서 독단적인 국정운영에 제동을 거는 야당 역할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지 않았는가. 부모로부터 ‘통섭의 DNA’를 물려받은 박대통령은 백척간두에 서있는 한국경제를 구하기 위해서도 포용과 타협, 그리고 자신감을 갖고 국정운영을 펼쳐야 한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는 “경영자는 칭찬만 받으면 좋은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의사결정의 첫 번째 원칙은 반대 의견 없이 최종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이는 기업은 물론 국가 운영에도 도움을 주는 금과옥조가 아닐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