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러운 월세족.. 전입신고·전세대출·소득공제 '그림의 떡'

by김동욱 기자
2014.02.10 07:38:32

집주인들 세혜택 축소 우려..대부분 임대주택 등록 안해
전입신고·소득공제 불가능..전세대출 받기도 힘들어

[이데일리 김동욱 기자] 서울에 사는 직장인 김윤호(31)씨는 정부가 지난해 잇달아 내놓은 전·월세 대책 효과에 대해 전혀 체감하지 못한다. 정부는 전·월세 세입자를 위해 세제 혜택을 확대해줬지만 정작 김씨에게 크게 와 닿는 건 없다.

집을 사려면 정부의 대출 지원 상품 외에도 추가로 신용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이 역시 김씨에겐 큰 부담이다. 어쩔 수 없어 전·월세 임차시장에 남아야 한다. 게다가 현실은 지금 살고 있는 오피스텔 월세에서 전세 원룸으로 갈아타기조차 쉽지 않다.

김씨는 올해 월세 소득공제도 신청하지 못했다. 집주인의 반대로 입주 때 전입신고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정부의 전세대출을 받아 원룸 전세로 집을 옮기려 했지만 정작 불법으로 용도 변경한 건축물이 많아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며 “정부가 내놓은 전·월세 대책이 현장에서는 겉돈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최근 준공된 서울 상암동 H오피스텔. 전체 입주 물량 899실 중 690실 가량이 월세로 나왔다. 주변 중개업소에 문의하면 대부분 전입신고가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인근 S공인 관계자는 “임대주택으로 등록한 집주인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 등록을 하지 않아 전입신고와 월세 소득공제를 할 수 없다”며 “대신 집주인과 잘 얘기하면 월세를 조금 깎을 여지는 있다”고 말했다.

김씨와 같은 주거용 오피스텔 세입자는 임차시장에서도 ‘을 중의 을’이다. 무엇보다 전입신고를 하지 못해 확정일자를 받지 못한다. 확정일자를 받지 못하면 만에 하나 집이 경매에 넘어가더라도 세입자는 보증금을 지킬 수 없게 된다. 주민등록상 주소지(전입신고)를 옮기지 못했으니 월세 소득공제는 딴 나라 얘기다.

오피스텔에 산다고 해서 전입신고를 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애초 집주인이 오피스텔을 임대주택으로 등록했다면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대부분 집주인은 주거용으로 사용하면서도 굳이 임대주택 신청을 하지 않는다. 오피스텔은 서류상 주거용과 업무용으로 구분되는데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게 세제 혜택이 더 크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업무용으로 사용하더라도 법적으로 세입자가 전입신고를 해도 되지만 통상 집주인이 계약서에 특약 형태로 전입신고를 막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래 전부터 지적됐던 문제이지만 정부가 전·월세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단 한 번도 고려되지 않았다.

오피스텔과 달리 일반 주거용 건물은 어떨까? 오피스텔은 전입신고가 막혀 월세 소득공제를 받는 것 자체가 불가하다는 점에서 일반주택이 더 유리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쉬운 건 아니다. 집주인이라는 산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원종훈 국민은행 세무사는 “소득공제 신청은 세입자의 엄연한 권리이지만 현실에선 쉽지 않다”며 “가령 집주인이 임대주택 등록을 하지 않았다면 집주인으로서는 세입자의 소득공제 신청이 마치 자신을 고발하는 것으로 느낄 정도로 부담스러워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세입자가 소득공제 신청을 하는 순간 집주인의 임대소득이 노출되다 보니, 집주인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세입자가 소득공제 신청하는 것을 막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2년 연말정산에서 월세 소득공제를 받은 세입자는 9만3470명 수준. 전체 월세가구(355만 가구)의 2.6%만 혜택을 본 것이다. 정부가 지난해 8·28 부동산대책을 통해 월세 소득공제 한도를 3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상향했지만, 정작 세입자가 정책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정부 역시 이런 문제에 대해 인식은 하고 있지만, 기존에 마련된 제도만으로도 제도 운영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사실 일부 극단적인 사례가 있긴 하지만, 현 제도상으로는 집주인의 동의가 없더라도 세입자가 소득공제를 받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다만 추후에 개선할 사안이 있으면 적극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1·2인 가구를 위해 2009년부터 소형원룸 공급을 도심 중심으로 늘렸다. 주택 공급이 늘어난 것은 일견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고시원이나 근린생활시설을 원룸으로 불법 용도 변경한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주택으로 쓰이지만, 서류상으로는 주택이 아니다. 주택이 아니다보니 세입자는 당연히 은행에서 전세자금대출을 받지 못한다. 아파트 전셋값이 부담돼 다가구 전세를 구하려던 세입자에겐 ‘다가구 전세’가 그림의 떡인 셈이다.

이런 불법 건축물은 대부분 원룸이며, 도심지에 집중돼 있다. 건축주로서는 고시원으로 지은 뒤 주택으로 불법 용도 변경하는 게 이익이다. 주차장 규제 등 각종 건축 규제는 피하면서 원룸 수는 늘릴 수 있어서다. 포털사이트에서 ‘마포구 원룸 전세’를 검색하면 총 279건이 뜬다. 중개업소에 전화하면 대부분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최근 신축한 건물은 대부분 근린생활시설로 보면 된다”며 “주택이 깔끔하면서 전세자금대출이 가능한 원룸을 찾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귀띔했다.

마포구 건축과 관계자는 “정기적으로 전수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불법 용도 변경한 건축주를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며 “실제 적발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