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지현 기자
2011.07.17 12:35:00
9개 사업장 10개 노조 설립..에버랜드 사원노조도 신청서 제출
노사협의회 노조로의 전환 가능성?..전문가 "쉽지 않은 일"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국내 대표적 기업집단인 삼성에 노조 바람이 불 것인가? 이달부터 복수노조가 허용된 가운데 재계와 노동계의 시선이 삼성으로 향하고 있다. 삼성 에버랜드 직원 등 4명으로 구성된 노조가 당국에 설립신고서를 제출하면서 삼성내 노조설립 문제가 급부상했다.
명칭은 `삼성노동조합`으로 기업별 노조가 아닌 `초기업 노조`를 표방하고 있다. 삼성은 이미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있다. 복수노조 허용전인 지난달 에버랜드 직원 4명이 노조를 설립했는데, 당시에는 사측이 복수노조에 대비해 `알박기`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선대 회장(故 이병철 회장)때부터 무노조 경영을 고수해 온 삼성에 노조 깃발을 꽂는다는 건 노동계 숙원사업중 하나. 양대 노총이 삼성내 노조설립을 위한 지원사격에도 나서기도 했다.
재계도 삼성에 관심이 많다. 국내 최대의 글로벌 기업에서 무노조 신화가 깨질 지에 대한 궁금증, 재계에서 차지하는 존재감과 선도적 행보 등이 삼성의 변화를 주목하는 이유다.
삼성은 외형상으로 노조가 없는 기업은 아니다. 그룹내 78개 계열사 중 9개 사업장에 10개 노조가 설립된 `유(有)노조` 기업이다. 삼성생명보험과 삼성정밀화학, 삼성메디슨, 삼성화재는 인수합병 과정에서 기존 노조가 유지된 경우다. 삼성 내 최대 규모인 삼성생명 노조는 동방생명 노조가 모태로 1962년 설립됐고 조합원만 2463명(2009년 고용부 통계)에 달한다. 현재 민주노총 사무금융노련에 속해있다.
삼성정밀화학 노조도 1971년 설립된 한국비료공업노조가 명맥을 유지했다. 전 직원의 44%가 노조원이고, 한국노총 화학노련 울산지부내에서 운영이 잘되는 노조로 꼽힌다. 삼성증권은 2번의 인수합병 과정을 거치며 1사2노조로 이미 복수노조 형태를 꾸려왔다. 첫번째는 국제증권을 인수하면서, 두번째는 동양투자신탁증권을 합병하면서 2개의 노조가 공존해 온 것이다.
이외에도 삼성중공업과 호텔신라, 에스원, 삼성에버랜드에도 노조가 있다. 실질적인 측면에서 노조 본연의 역할을 하느냐에 이르면 얘기는 조금 달라진다. 일단 조합원 수가 적다. 앞서 언급한 4개사 노조의 조합원은 적게는 2명, 많아도 37명이다. 유령노조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노조가 설립된 9개 사업장의 총 근로자 수(3월말 기준)는 3만9513명, 이중 조합에 가입한 사람은 8.7%(3457명)에 불과하다. 삼성 그룹 전 계열사에 근무중인 근로자가 20만명이라고 할 때 노동조합에서 활동중인 사람은 1.7%에 그친다.
노조 규모가 작거나 노조가 없는 삼성 사업장에는 노조를 대신한 `노사협의회`가 운영되고 있다. 한마음 협의회, 한가족협의회 등 명칭은 다양하다. 이를 통해 충분히 노사가 협력하고 소통하고 있기 때문에 노조가 필요치 않다는 것이 삼성측의 주장.
노동계는 삼성내 노조활동 인원을 현재 1.7%에서 10%까지 확장하겠다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삼성 내부에서 활동중인 노사협의회가 노조로 전환될 가능성도 주목되는 부분. 민주노총 한 관계자는 "그동안 삼성은 노사협의회가 노조 역할을 대신해 왔다"며 "몇몇 사업장에서는 노사협의회가 노조로 간판을 바꾸는 것을 고민하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 주력사업인 조선부문의 노사협의회는 겉으론 노동자 협의회지만, 실제적인 역할과 활동영역에서는 노조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노동자협의회의 위원장이 경영자측과 유일 교섭단체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고 이곳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도 과반수를 넘는 등 조합으로 전환이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부는 다른 의견을 보이고 있다. 이성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 당장 노사협의회가 노조로 전환할 가능성은 낮다"며 "이를 방어용으로 사용해 협상 우위를 선점하려고 할 수는 있지만 노조로의 전환에 먼저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관리의 삼성`에서 노조 설립 움직임이 `찻잔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없지 않다. 최근 삼성이 내수경기 활성화라는 명목하에 전 임직원에게 휴가비와 추석 제수비용 등으로 총 1000억원을 풀기로 했는데, 이를 두고 직원들 분위기 달래기용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노동계 관계자는 "에버랜드의 알박기 노조는 시대가 바뀌고, 노조 설립을 원천적으로 막는 게 불가능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며 "직원들에 대한 관리 강화, 단일교섭권 선점 등과 같은 방법을 동원해 노조설립을 차단하려는 시도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