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st SRE][Cover]③코로나가 당긴 ESG투자…"물꼬 터줄 키맨은 연기금"

by박정수 기자
2020.11.18 00:12:00

한국 ESG 채권 발행 46.6조…전년 대비 81%↑
글로벌 시장 3300억 달러…한국은 아직 초입 단계
상품경쟁력 불확실성 등 ESG 채권 투자 한계
“연기금 가점 등 투자 요인이 있어야”

[이데일리 박정수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환경·사회·지배구조(ESG)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마이너스 유가 충격 속에서 전 세계적으로 전기, 수소, 풍력과 같은 그린 뉴딜 바람이 불면서 국내에서도 ESG 채권 상품화에 대한 자산운용사들의 움직임이 빨라지는 모양새다.

ESG채권은 발행자금이 친환경(E), 사회적 가치(S), 지배 구조 개선 및 지속 가능한 성장(G)에 관련된 투자에 사용되는 채권이다. 여기에는 신재생 에너지 등 친환경 프로젝트나 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되는 그린 본드(녹색채권)와 사회가치 창출 사업에 투자할 자금 조달을 위한 사회적 채권, 환경 친화적이며 사회가치를 창출하는 사업에 투자할 자금을 마련하는 지속가능 채권으로 분류한다.

ESG 채권 펀드의 시작은 2007년 유럽투자은행(EIB)이 신재생 에너지 개발, 에너지 효율성 향상을 위해 ‘Climate Awareness Bond’를 발행하면서부터다. 이후 2015년 파리 기후협정 이후 ‘그린본드’를 중심으로 급성장했다. 국내 ESG 시장은 아직은 시작 단계로 2013년 수출입은행 이후 2019년부터 은행, 금융사, 일반기업과 지주사가 발행 시작하면서 성장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이후 소셜본드(중소기업 및 취약계층지원), 뉴딜(친환경, 전기차, 바이오, 헬스케어)관련 이슈로 ESG 투자 확대가 지속되고 있다.

실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국내 ESG 채권 발행금액은 총 46조6000억원으로 2018년 1조3000억원, 2019년 25조7000억원에 비해 급증했다. 기존에 정부 기관 및 금융 기관에서 집행하던 기존 사업들이 ESG 사회적 채권으로 분류된 데 따른 재분류 착시 효과가 있으나 2020년 ESG 성격의 채권 발행이 크게 늘어난 것은 분명하다는 평가다.

글로벌 시장과 비교하면 한국시장은 초입 단계다. 2020년 6월 기준 글로벌 ESG 자산은 40조5000달러(4경4955조원)을 돌파한 상황이며 절대적인 규모는 유럽이 14조1000억달러(1경5651조원·34.8%)로 크다. 이어 미국이 12조달러(1경3320조원·29.6%), 일본이 2조1000억달러(2331조원·5.19%), 캐나다 1조7000억달러(1887조원·4.2%) 순이다.

전세계 ESG 채권 올해 총 발행액은 지난해 대비 10~15% 증가한 3100억(344조원)~3300억달러(366조원) 수준이 예상된다. 국가별 ESG 채권 발행 규모를 보면 지난 9월 기준 프랑스가 373억달러(41조4000억원) 수준으로 가장 크다. 이어 미국(353억달러·39조2000억원), 독일(350억달러·38조8000억원), 네덜란드(206억달러·22조9000억원) 등으로 유럽과 미국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는 지속가능 금융에 대한 유럽연합(EU) 역내 통일된 규제의 필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유럽위원회가 ESG 공시, 분류체계 등에 대한 규제를 내년부터 도입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규제는 대부분 유럽 지역 금융회사뿐만 아니라 유럽에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비EU 금융회사에도 적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유럽을 비롯한 해외 금융사에서는 ESG 평가 기준 벗어나는 투자처에 대해 대출 한도를 축소하는 등의 불이익을 주고 있다.

유럽이 규제를 통한 ESG 시장 발전을 꾀하고 있다면, 미국은 블랙록 등 업계에서 ESG 채권 발행을 주도하고 있다. 세계 1위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총매출의 4분의 1 이상이 화석연료와 관련 됐을 경우 해당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SRE자문위원은 “EU에서 탄소배출과 환경오염과 관련된 채권에 대해서는 적격매입채권에서 제외하겠다고 하고 있다”며 “특히 환경과 관련된 채권에서는 ESG 기준에 미달할 경우 시장에서 퇴출시키겠다고도 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유럽은 이미 ESG 투자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이를 따라 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다만 아직은 국내 시장 참여자들은 ESG 채권 투자를 고려하고 있는 정도다. 31회 신용평가전문가설문(SRE:Survey of credit Rating by Edaily)에서 ESG 채권투자를 고려하고 있느냐에 대한 질문에 총 206명 가운데 91명이 ‘약간 그렇다’에 답해 44.2%를 차지했다. ‘매우 그렇다’는 응답은 15.0%(31명)로 ESG 채권 투자를 고려하는 비중이 약 60%에 달한다. ‘보통이다’는 50명(24.3%) 수준이며 ‘약간 그렇지 않다’는 23명(11.2%), ‘매우 그렇지 않다’는 11명(5.3%)을 기록했다. 이에 5점 척도(매우 그렇다 5점~ 매우 그렇지 않다 1점)에서 평균 3.52점을 기록했다.



채권 투자에 있어 ESG 요소를 고려하느냐에 대한 질문에서는 70명이 ‘보통이다’에 응답해 약 34%로 가장 높았다. 이어 ‘약간 그렇다’가 61명이 답해 29.6%로 뒤를 이었고, ‘매우 그렇다’는 19명으로 9.2%에 머물렀다. ‘약간 그렇지 않다’는 39명이 응답해 18.9%의 비중을 보였고 ‘매우 그렇지 않다’는 8.3%를 기록했다. 이에 5점 척도(매우 그렇다 5점~ 매우 그렇지 않다 1점)에서 평균 3.13점을 기록했다.

ESG 채권투자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는 총 206명 가운데 79명(38.3%)이 ‘투자측면 수익률 등 상품경쟁력 불확실성’을 꼽았다.

SRE자문위원은 “현재 ESG 채권발행의 주된 이유는 조달비용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투자자 관점에선 시장원리에 맞춰 일반 채권 투자를 통해 수익률 좇을거냐 억지 명분을 쌓아서 ESG 투자에 나설 것이냐는 근본적인 질문부터 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또 “ESG 채권 펀드를 투자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ESG 요소를 고려해야 해 제약이 있다”며 “A부터 Z까지 투자할 수 있음에도 자신을 제약하면서까지 뛰어들 필요가 있을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두 번째 장애요인으로는 ‘ESG채권에 대한 인프라 미흡’이 꼽혔다. 총 63명(30.6%)이 응답했다. SRE자문위원은 “무늬만 ESG 채권이지 제대로 된 인증 절차를 거쳤다고 보기도 힘들다”며 “지금까지 발행된 ESG 채권들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ESG 요소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곳도 있다”고 지적했다.

ESG등급의 신뢰성이 충분하지 않다는 문제점도 있다. 권성철 NICE신용평가 연구원은 “국내 ESG 전문평가사간, 국내와 해외 ESG 전문평가사간 평가 기준이 상이하고, 특정기업에 대한 평가등급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며 “등급체계가 상이한 상태에서 개별 ESG 등급 논거에 대한 공시가 충분하지 않아 그 신뢰성이 충분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특히나 전통적인 굴뚝업종 가운데 상당수는 산업구조 특성상 화석연료사용 비중이 높다는 점 때문에, 반 ESG업종(담배, 알콜음료, 카지노, 방산 등)은 그 자체로 ESG등급을 낮게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 이유로 ESG원화채권 발행에 있어 기본적 불리함도 안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내에서 ESG 투자에 물꼬를 터줄 키맨은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이라고 지적한다.

31회 SRE에서도 ESG 투자를 고려하는 이유에 대해서 ‘연기금 등 글로벌 자금유입 전망’에 75명(36.4%)이 응답해 ‘코로나 이후 공중보건 글로벌 이슈 관심 확대’(58명, 28.2%)보다 높게 나왔다. 이외에는 ‘저금리 기조 새로운 투자대상’(31명, 15.0%), ‘투자자로서 이미지 제고’(30명, 14.6%) 등이 뒤를 이었다.

한국은 기존에 ESG 투자의 직전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확대, 사회 책임 투자(SRI)가 꾸준히 확대돼 왔다. 여기에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2021년부터는 연기금이 ESG 투자에 대한 벤치마크 지수를 개발하고 본격적으로 위탁 투자를 확대할 계획에 있다.

SRE 자문위원은 “기관들의 자금을 받을 때 연기금에서 ESG 요소를 고려한다면 맞춰서 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거나 연기금에서 ESG 투자 가점 등의 요소가 있지 않는 이상 국내 ESG 투자는 더딘 성장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