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돌아온 안철수 앞에 놓인 세 갈래 길
by최은영 기자
2020.01.21 05:00:00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귀국했다. 그의 귀국에 정치권의 시선이 쏠리는 이유는, 지금 야권이 지리멸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안 전 대표는 야당 진영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까. 이제 그 답을 찾아보자.
안 전 대표가 정치적 진로를 제대로 선택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첫째, 자신이 주장하던 ‘새 정치’의 유통기한이 끝나지 않았는가. 둘째, 국민의당이 선전할 수 있었던 것은 호남지역의 반문 정서로 인해 안 전 대표를 대안으로 선택했기 때문인데 그런 호남의 상황은 변하지 않았는가. 셋째, 지금이 중도의 이미지로 정치적 영역을 구축할 수 있는 환경인가. 이에 대해 안 전 대표는 객관적으로 대답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대답을 찾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선택가능한 행보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그가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 정치행보는 세 가지다.
첫째는 대안신당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본인이 아직도 당적을 보유하고 있는 바른미래당과 다시 함께하는 것이다. 이 경우는 앞서 언급한 두 번째 질문, 즉 호남이 아직도 안 전 대표에 대해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고 있는가 하는 부분과 관련 깊다. 만일 호남 유권자들이 현 정권 지지로 갈아탔다면, 그런 상황에서 대안신당이나 바른미래당에 들어가는 것은 이들 정당이 ‘호남 자민련’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게 만들어준다는 정도의 의미 부여만이 가능할 것이다.
두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행보는 독자 신당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는 두 가지 문제가 도출된다. 하나는 총선 전까지 창당하고 공천을 완수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앞서 던진 세 번째 질문, 즉 중도의 입지 구축이 가능한가 하는 부분이다. 현 정권 들어서 우리 사회는 이념적 양극화가 뚜렷해 졌는데, 이는 중도가 들어설 입지가 그만큼 줄어들었음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역시 쉽지는 않아 보인다.
세 번째는 보수통합에 함께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안 전 대표가 가지는 중도적 이미지가 훼손될 뿐 아니라, 과거 자신이 한나라당을 향해서 했던 말들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도 쉬운 선택은 아니다. 물론 보수 통합이 아닌 반문 연대라면 안 전 대표도 별 문제없이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보수 통합이 반문 연대로 변할 수 있을지는, 지금 통합 논의에 임하는 정당들이 현 상황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느냐와 관련 깊다. 그런데 이들 정당들은 아직까지 지금이 심각한 위기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수 있다. 그 이유는 이렇다. 20대 총선이 있었던 지난 2016년 1월에 발표된 동아일보와 리서치 앤 리서치의 여론조사 결과(표본오차 95%에 신뢰수준 ±3.1%포인트)를 보면 새누리 38.2%, 安 신당 18.9%, 더민주 16.3%의 순이었다. 이 여론조사를 보면 당시 야당이었던 안 전 대표의 신당과 더민주 지지율의 합이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의 지지율보다도 떨어졌다.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이 있었던 지난 2012년도 마찬가지다. 2012년 신년 여론조사(경향신문과 현대리서치)를 보면,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은 30.8%, 야당인 민주통합당은 25.2%을 기록했다. 이명박 정권 집권 초기이자 18대 총선이 있었던 2008년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이 여당이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우위였다. 결과는 제각각이었지만, 최소한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여당이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됐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주 목도되는 현상임은 확실하다.
이런 역사를 모를 리 없는 한국당과 새보수당은, 지금 자신들이 처한 상황은 오히려 과거 민주당의 입지보다는 나은 상황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통합 논의가 오히려 쉽지 않을 수 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반문 연대라는 이름으로 훨씬 폭 넓은 정파들이 함께하기란 더욱 쉽지 않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안 전 대표의 향후 정치 행보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정치는 생물이기 때문에 안 전 대표의 입지가 언제 다시 살아날지는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