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허영섭 기자
2018.06.08 06:00:00
지방선거의 계절을 맞아 길거리 건널목마다 또 다시 플래카드가 요란하게 나붙었다. 지역 일꾼을 자기 손으로 직접 뽑는다고 하면서도 분위기는 별로다. 약속을 믿고 선뜻 한 표를 던졌는데도 당선되면 슬며시 고개를 돌리는 모습에 번번이 불신과 실망을 겪었던 쓰라린 기억들 때문일 것이다. 시·도 지사나 기초지역 단체장, 지역의원의 경우가 다를 바가 없다. 주민들을 가까이 섬기겠다는 당초 약속을 저버린 탓이다.
선거가 끝나고 당선이 확정될 때뿐이었다. “민의(民意)의 승리”라며 유권자를 추켜세우면서 주민들의 의사를 거스르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런 다짐이 대체로는 의례적인 공치사로 끝나기 마련이었다. ‘혹시나’가 ‘역시나’로 바뀌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결과적으로 유권자가 이긴 선거는 거의 없었던 셈이다. 주민들은 늘 들러리였고, 패배자였다. 그렇다고 꼭 지방선거에서만의 얘기도 아니다. 선거철이 다가올 때마다 자포자기의 무관심만 늘어가는 이유다.
이번 선거에서도 투표일이 불과 닷새 앞으로 다가오면서 유세 차량의 확성기에서는 지지를 호소하는 하소연이 쏟아지고 있다. 후보들의 기호와 이름을 앞세워 온갖 공약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거들떠보는 사람은 신호를 기다리는 보행자들 정도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후보 명함을 나눠주는 운동원 대부분도 어차피 10만원 안팎의 일당 때문에 나선 사람들일 것이다.
오늘부터 이틀간 사전투표가 진행되는 것도 자꾸 이탈하는 투표율을 끌어올리자는 취지다. 그러나 지방선거에서 사전투표가 처음 도입된 2014년 선거 때도 56.8% 투표율에 그쳤다. 저조한 투표율에서부터 선거 불신이 드러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런 분위기라면 지방자치가 실시되고 첫 선거가 치러진 1995년의 68.4% 기록은 좀처럼 깨지지 않을 것이다. ‘풀뿌리 선거혁명’이란 구호가 공허하기 마련이다.
여론조사에 따라 후보·정당별 지지율이 발표됐지만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전화가 오면 짜증을 내면서 끊어버리는 여론조사에 신뢰성을 부여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출마자들의 득표율을 모두 합쳐 50%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적잖이 나타날 것이라는 점이다. 기껏 20%의 득표율로 당선자가 결정되는 상황이라면, 이런 선거에 무려 1조 770억원의 비용을 쏟아부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선거에 무관심한 유권자를 꾸짖을 수는 있다. 민주주의란 모든 구성원들의 참여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투표가 가장 직접적인 권리 행사다. 하지만 그동안 가슴에 상처를 입은 유권자들에게 이번만큼은 제대로 투표해서 유능한 일꾼을 뽑아야 한다고 설득할 자신은 없다. 당선자들이 약속을 저버린 데 대해 유권자들 스스로 영악해진 것이다. 더 이상 속지 않겠다는 것뿐이다.
이 후보나 저 후보나 결국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도 유권자들의 무관심을 재촉한다. 뽑아놓으면 소속 정당에 관계없이 갑질하기 마련이라는 것이 그중 첫 번째다. 그나마 투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지역발전을 위한 일꾼보다 갑질에 서투를 것으로 여겨지는 후보 위주로 투표하는 것이 그런 때문이다. 원래 봉사직으로 출발한 지방의원 제도가 의정활동비는 물론 보좌진까지 거느리게 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빠듯한 지방 살림에도 호화판 의사당을 갖추지 않은 지역이 별로 없다.
지방자치 실시 이후 우리 풀뿌리 민주주의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무기력을 느끼게 되는 현실이라면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 이번에는 과연 달라질 것인지 기대해도 될 것인가.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