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노동의 '공허' 치유한 건 육체노동 '땀내'

by장병호 기자
2017.09.06 05:04:30

손으로, 생각하기
매튜 B 크로포드|288쪽|사이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최근 가수 UV(유세윤·뮤지)가 김조한과 함께 발표한 노래 ‘조한이형’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형이 진짜 이 말만 하고 갈게/ 기술 같은 거 배워/ 중국어라도 배워.” 1990년대 폭주족에게 조언하는 형식을 취한 코믹한 노래다. 먹고 살기 위해서 ‘기술’이라도 배워야 한다는 일침이 웃음을 자아낸다.

그런데 언제부터 우리는 기술을 먹고살기 위해 배워야 하는 마지막 수단처럼 여기게 된 걸까. 기술 ‘같은 것’이라도 배우라는 가사에는 육체노동을 지식노동보다 하찮게 보는 현대사회의 시선이 담겨 있다. 저자의 질문도 이와 비슷하다. 왜 세상은 지식노동을 육체노동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저자가 이런 문제제기를 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던 중 철학에 매료된 저자는 시카고대 대학원으로 진학, 정치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워싱턴에서 싱크탱크 책임자로 일했다. 그러나 지식노동에서 느낀 것은 공허함뿐이었다. 그래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버지니아주 소도시 리치먼드에 모터사이클 정비소를 열었다. 직접 손을 쓰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이전 컴퓨터 앞에서는 못 느끼던 일의 즐거움이 솟아났다.



저자는 육체노동에서 느끼는 지적 흥미가 지식노동보다 더 크다고 말한다. 모터바이크의 낡은 모터를 수리하기 위해 복잡한 기계를 일일이 뜯어내 고장의 원인을 찾고 해결해가는 과정이 지적인 흥미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육체노동에도 철학적인 고민이 있다고 주장한다. 손을 쓰는 일을 통해 인간의 존재방식,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고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육체노동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려는 책의 접근은 시종일관 흥미롭다. 다만 저자의 이색 경력과 쉬운 제목 때문에 부담없이 읽힐 에세이를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오히려 책은 육체노동의 가치를 심층적으로 살피는 철학서에 가깝다. 저자는 “지식노동으로 인정받는 직업과 비교해 육체노동을 할 때 더 크게 느낄 수 있는 ‘행위주체성’과 ‘능력에 대한 감각’을 이해하려는 시도”로 책을 썼다고 말한다. 책 곳곳에는 이처럼 어려운 문장이 수시로 등장한다. 독자 입장에선 육체노동의 의미를 담은 책을 읽기 위해 지적인 노력을 쏟아야 한다는 점이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