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異야기]"반복된 실패로 얻은 것은 사람..게임명가 지향"

by김혜미 기자
2017.09.05 04:25:35

장병규 블루홀 이사회 의장 인터뷰
"수차례 실패 속에서 남긴 것은 개발 장인·개발 리더십"
"창업시 감당할 수 있는 기준 정하면 안전기제로 작동"

[이데일리 김혜미 기자] 최근 ‘갓겜(god와 게임의 합성어)’ 칭호를 받는 게임이 있다. 바로 블루홀의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다. 배틀그라운드는 글로벌 게임 플랫폼 스팀(STEAM)의 인기순위 1위를 장기간 지키는 것은 물론 블리자드가 장악하고 있던 국내 PC방에서도 오버워치를 제치고 점유율 2위를 기록했다.

배틀그라운드의 성공 너머에는 장병규(44) 블루홀 의장이 있다. 장 의장은 지난 1997년 네오위즈를 공동 창업한 ‘벤처 창업 1세대’다. 2005년에는 인터넷 검색사이트 ‘첫눈’을, 2007년에는 블루홀을 설립했다. 블루홀은 PC온라인 게임 ‘테라’에 이어 ‘배틀그라운드’로 한국 게임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지난달 31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블루홀 회의실에서 만난 장 의장에게 먼저 축하인사를 건넸다. 근래 들어 새로 개발한 IP(지식재산권)로 성공한 사례가 워낙 없었고, 테라 이후 흥행작이 전무했기 때문에 축하인사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있었다. 장 의장은 “운이 좋았다”며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데일리 신태현 기자] 장병규 블루홀 의장이 31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블루홀 본사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블루홀의 강점은 실력있는 개발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장르를 직접 개발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개발사 가운데 하나로 블루홀을 꼽는다. 공공연히 인수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하는 경영자들도 적잖이 눈에 띈다.

장 의장은 블루홀이 실력있는 개발사가 된 것은 수 차례의 시행착오를 겪은 덕분이라고 말한다. 그는 프로젝트를 새로 시작할 때마다 실패를 염두에 두고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프로젝트가 실패했을 경우에는 ‘시작할 때 우리의 믿음은 무엇이었고, 그 믿음이 틀렸다면 어떤 점이 잘못됐는지’를 돌아보는 기회를 갖는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수많은 블루홀 프로젝트가 진행됐지만 2011년 테라 외에는 흥행작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블루홀은 경험있는 개발자를 남겼다.

장 의장은 게임 제작의 명가가 되기 위해 중요한 것은 경험있는 게임 개발자, 게임 명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개발 장인이나 개발 리더십을 키우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교육기관에서 배운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시행착오에서 배워야할 것들이 많다”며 “20대가 창업한 스타트업은 플랫폼이 바뀔 때 잠깐 성장할 수는 있지만 플랫폼 성숙기에는 어려워질 수 있다. 우리가 반복된 실패 속에서 제작 리더십을 남겼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패 여부와 관계없이 어쨌든 사람들은 남아서 또다시 도전해야 한다. 배틀그라운드를 진두지휘한 개발자 김창한 PD 역시 17년간 실패한 끝에 성공한 케이스”라고 덧붙였다.

전세계적으로 경제성장이 정체기에 접어들면서 강조되는 것이 바로 창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다. 하지만 이제 막 사회에 나오는 젊은이들이 창업에 도전하기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 장 의장에게 창업할 때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노하우가 있느냐고 물어봤다.



그는 개인마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있는 것 같다는 답을 내놨다. 앞으로 2년간은 도전하겠다든지, 어느 정도까지 자금을 투입하겠다든지 등을 정해두는 것이 사업을 할 때 자신을 지탱해줄 수 있는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데일리 신태현 기자] 장병규 블루홀 의장이 8월31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블루홀 본사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결정은 굉장히 미묘하게 이뤄진다. 장 의장은 “기준점을 정한다는 것은 그리 단순한 결정은 아니다. 여러가지 복잡한 환경이 존재한다”며 “사업을 시작한 뒤 환경이 변할 수도 있고 스스로와의 약속도 있고, 동업자들도 있기 때문에 처음 결정한 기준을 반드시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환경이 변할 때 사전 결심이 안전장치 중 하나로 동작하게 된다. 그러면 그대로 따르지 않더라도 극한의 사고가 나는 것은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감당할 수 있는 부채의 규모도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빚을 져야만 성공하는 사람이 존재하듯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빚을 져선 안된다라고 잘라 말하기보다는 사람마다 감당할 수 있는 빚의 규모가 다르다는 것이다.

다만 장 의장은 유달리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강한 한국 사회 시스템에 아쉬움을 표현했다. 실패자에 대한 사회적인 안전장치가 약하고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다보니 젊은이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최근 신입사원 면접을 해 보면 지원자들이 취직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강하게 갖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고 그는 털어놨다.

장 의장은 “요즘은 대기업에 다닌다해도 50대가 되면 곧 회사를 나갈 생각을 해야 한다”며 “스스로 몸값을 올리지 않으면 안되는 사회가 됐다. 대기업에 들어가고 안정지향적으로 살아봐야 사회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못한다. 결국 자신이 성장하려면 뭔가 도전하고 몰입해서 성장하는 경험을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문득 반복적으로 ‘창업’에 나서는 장 의장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장 의장은 “특별한 것은 전혀 없었다”는 답을 내놨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대구과학고등학교 2기 졸업생인데, 어떻게 보면 이제 막 생긴 고등학교를 부모님께서 추천하셨다는 점에서 벤처스럽기는 하다”며 “이후에 91학번으로 86년에 첫 신입생을 받은 한국과학기술대학(현재의 카이스트)에 입학한 것도 지금와서 보면 도전이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장 의장은 블루홀 의장 외에도 벤처캐피탈 ‘본엔젤스’의 대표 파트너라는 직함을 하나 더 갖고 있다. 본엔젤스가 지금까지 투자한 벤처는 100개 이상이며 가장 대표적인 성공사례는 ‘배달의 민족’을 서비스하는 우아한형제들이 있다.

그는 투자할 때 ‘업(業)’과 ‘그 업에 부합하는 팀인지’를 중요하게 본다. 특히 ‘업에 부합한다’는 표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람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A란 사업을 잘 아는 사람이 B라는 사업을 잘 안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장 의장은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했고, 왜 그 시기에 그런 일을 했고,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이 무엇을 배웠는지 등 과거를 유심히 본다. 그래야 기업의 속성과 사람이 맞는지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블루홀 매각과 상장에 대해 장 의장은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조지 루카스가 왜 루카스필름을 월트디즈니에 매각했는지 생각해본 적 있느냐”며 “루카스의 인생에서 상당히 많은 부분을 스타워즈가 차지하는데, 그가 원했던 것은 돈을 많이 벌기보다는 스타워즈의 영속성이었던 것 같다. 나 역시도 블루홀의 가치가 무엇인지, 그 가치가 지속 가능할 것인지를 늘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루홀의 배틀로얄 게임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 블루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