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정치인]나경원 "北과 5·24조치 뛰어넘는 전면적인 경제 협력해야"

by장영은 기자
2015.11.02 06:01:12

나경원 외통위원장 "5·24조치 해제보다 그 이상의 교류 협력 조치가 효과적"
''접근을 통한 변화'' 이끌어내야…전면적인 경제협력 강조
시장 개방 통한 국내 기업 경쟁력 증대 꾀해야

나경원 외교통일위원장은 최근 여의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실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북한과의 전면적 경제교류 확대를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김정욱기자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5·24 조치를 해제하지 않고도 우리가 또 다른 조치를 통해 (북한에) 충분히 많이 해줄 수 있다. 정부 차원에서 새로운 조치를 통해 남북 교류를 풀 수 있을 것이다”

헌정사상 첫 여성 외교통일위원장. 최근 국회 외통위원장실에서 만난 나경원 외통위원장은 남북 관계의 민감한 현안인 5·24조치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자신만의 해법을 내놨다.

위원장이라는 직책을 맡은 탓에 회의실이나 국정감사장에서는 말하기 보다 듣는 편이지만, 민감한 이슈나 현안에 대해서도 소신을 밝히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나 위원장은 “5·24 조치 해제에 대해서는 우리 안에서도 명분의 문제 때문에 남남(南南)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며 “실질적으로 천안함 폭침사건이라는 큰 명분이 있기 때문에 이를 해제하는 것 보단 다른 조치를 실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5·24 조치는 2010년 이명박정부 시절부터 이어진 대북제재다.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한 북측의 사과 없이는 해제할 수 없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고, 국민의 여론도 이와 대동소이하다.

나 위원장은 “북한의 핵경제 병진 노선에 동조해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북한의) 변화에 방점이 있는 것”이라며 “나는 서독의 ‘접근을 통한 변화’의 신봉자”라고 말했다.

접근을 통한 변화는 빌리 브란트 총리의 최측근으로 독일 통일의 주춧돌이 된 ‘동방정책’의 설계자 에곤 바르가 주장한 통일 정책의 기조다. 동서독 간의 서로 다른 체제를 인정하면서 양측 주민들간의 화해와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했다.

무리해서 5·24조치 해제 여부를 논하기보다는 이전 정부에서부터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경제 교류를 활성화 시켜서 남북간 통합은 물론 북한의 경제발전을 유도하자는 제안이다.

그는 ”현 정부에서 이야기하는 인도적 지원, 민생 교류를 뛰어넘는 전면적인 경제 교류 확대가 필요하다”며 “경제 분야에서의 교류, 협력은 남북간 긴밀도와 상호 의존도를 높여 통합의 기초를 만드는데 중요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미 나 위원장은 국제기구 등을 통해 북한의 경제 발전을 지원하도록 외교적인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그는 “지난 7월 라가르드 IMF총재와 만난 자리에서는 북한 인프라 구축을 위한 국제기구의 관심과 노력을 부탁했다”며 “지난 9월 외통위 미주반 국정감사 중에는 북한의 정상국가화를 앞당길 수 있도록 세계은행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여러가지 창의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해 줄 것을 김용 세계은행 총재에게 요청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전혀 다른 이야기 같지만 이산가족 문제도 결국 접근을 통한 변화의 관점에서 보면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나 위원장의 생각이다.



나 위원장은 “이산가족 문제 해결은 결국 원하면 아무때나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것 아니겠느냐”며 “서독도 이산가족 문제를 확 풀면서 교류가 확대됐다. 어떠한 단위로 어떠한 영역에서든 남북이 자꾸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 위원장은 북핵 비핵화에 대해서도 점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쪽이다. 무조건 핵을 포기하라든지, 비핵화를 위한 협상을 하자고 하면 북한이 나설 리가 만무하다는 이야기다.

그는 “결국 북한이 그동안 6자회담 테이블에 앉지 않겠다고 한 건 비핵화를 전제로 해서 6자회담을 하자고 해서다. 6자 회담의 시작은 북한을 협상의 테이블로 앉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나 위원장은 “비핵화라는 큰 목표를 그대로 두되 비핵화를 이루기 위해서 6자회담을 하자 이렇게 할 것이 아니라, 중간 목표를 설정하고, 북한의 핵 능력의 확장을 억제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한 가지 방법”이라며 “협상의 테이블에 앉는데 있어 전제조건을 너무 엄격하게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워싱턴 정가를 중심으로 6자 회담의 유효성에 대한 회의론도 요즘에는 많이 나오고 있다”면서도 “유용성, 무용성을 떠나 북핵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유효한 틀인 이상 우리가 그 틀을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 위원장은 하반기 들어 한층 더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는 외교 일정과 관련, 현안에 대한 선제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두달새 한·중, 한·미 정상회담을 가졌고, 연이어 한·중·일, 한·일 정상회담도 열리는 중이다.

특히 최근 ‘무대응·무전략’이라고 비판을 받았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국회 비준을 기다리고 있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는 시장 개방을 통한 경쟁력 강화에 방점을 둔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나 위원장은 한중 FTA와 관련 “FTA는 발효되는 순간 한번 관세가 내려가고 회계연도가 바뀔 때 또 관세가 내려가기 때문에 올해 안에 처리해야 관세 인하 효과를 더 많이 볼 수 있다”며 “시간을 오래 끈다고 해서 심도 있는 논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회의를 하고 밀도 있게 검토를 하느냐가 중요하다”며 조속한 처리 방침을 밝혔다.

다만, 무역이득공유제 도입 여부, 불법조업, 환경, 식품안전 등 논란이 되는 쟁점에 대해서는 국회와 관련 부처가 협업해 보완대책 마련에 힘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TPP 참여에 대해서도 “장기적으로는 보면 역시 경쟁체제에서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증대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언제까지 닫고서 우리 기업을 보호한다고 해서 우리 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나. 우리 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으려면 시장을 개방하는 건 기본 원칙”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나 위원장은 “체계적이고 면밀한 계획 아래 외교적 역량을 극대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 마음과 거리 있는 외교는 절대 성공한 외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국익을 최우선으로, 국민 마음에 닿을 수 있는 외교정책이 펼쳐질 수 있도록 외통위원장으로서 또 국회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겠다”고 역설했다.

외통위원장을 맡은 지 8개월, 첫 국감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그동안 공무로 다닌 출장 거리만도 13만km다.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온 나 위원장에게서는 지친 기색이나 여유보다는 여전히 출발선에 선 자의 패기와 열정이 엿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