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방한] '친구같은 교황' 세계인 사로잡다
by김용운 기자
2014.08.12 07:03:00
- 바티칸 개혁가
아시아·아프리카 추기경으로
교황청 조직개편 자문단 꾸려
바티칸은행장·이사회 전원 교체
- 높은 분이 아닌 친구
유명인보다 소외된 이웃 사랑
취임 후 난민 섬·브라질 방문
SNS 팔로어 1400만명과 소통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제266대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출과정 자체가 기적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예기치 못했던 일종의 ‘사건’이었다. 지난해 3월 13일 로마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서 열린 콘클라베. 전 세계 115명의 추기경이 모여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자진 사임에 따른 후임 교황 투표를 진행했다. 몇 차례 부결 끝에 마침내 새로운 교황의 선출을 알리는 흰 연기가 베드로 성당 굴뚝에서 피어 올랐다. 당시 유력한 교황 후보는 이탈리아의 안젤로 스콜라나 추기경과 브라질 상파울루 대교구의 오질루 셰레르 추기경이었다. 그러나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수만명의 신자들이 들은 새 교황의 이름은 예상과 달랐다.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의 예수회 출신 추기경이었다.
△예수회·신대륙·프란치스코 ‘새로운 삼위일체’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이후 자신의 교황명을 중세 교회를 개혁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에서 따왔다. 타락해가던 중세 교회에 쇄신의 바람을 불어넣었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을 지표로 삼은 첫 교황이 탄생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탄생하자 이탈리아 주교회의 일간지 아비에니레는 “가톨릭교회의 개혁을 말해주는 사건”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500여일이 흐른 지금. 이탈리아 주교회의 예상대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의 ‘적폐’를 청산해 나가면서 가톨릭의 여러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동시에 가난한 이들의 성인이었던 프란치스코처럼 교황 또한 소외받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검소한 생활로 수도자의 청빈을 솔선수범하고 1400여만명에 이르는 트위터 팔로어에서 볼 수 있듯이 신자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기존의 교황 이미지와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었다. 미국의 시사주긴지 ‘타임’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됐을 당시 “신세계의 교황”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예견이 적중한 셈이다.
△착좌와 동시에 교황청 개혁 박차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과 동시에 바티칸의 누적된 문제들을 청산하기 위한 행보를 시작했다. 우선 취임 한 달 만에 아시아·아프리카 등 대륙별로 추기경을 뽑아 8명으로 구성된 자문단을 꾸렸다. 이들에게 시대의 변화에 맞게 교황청 조직을 재편하는 임무를 맡겼다. 올해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하롤린 추기경이 합류하면서 자문단에 무게가 더 실렸다.
역대 교황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던 바티칸은행 개혁에도 착수했다. 1942년 설립된 바티칸은행은 교황청의 재정을 담당하며 해외에 체류하는 종교기관이나 자선단체 등에 돈을 보내는 것을 주된 역할로 했다. 그러나 바티칸은행은 2차대전을 거치며 마피아와 결탁해 돈세탁과 횡령 등 각종 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외부기관인 회계법인 언스트앤영에 바티칸은행 감독 임무를 부여했다. 은행장뿐만 아니라 이사회 구성원 전원을 교체했다. 새로운 은행장에 자산운용사 인베스코 유럽본부를 이끈 프랑스 출신 금융인 장 바티스트 드 프랑쉬를 임명해 바티칸 내부의 이탈리아인 세력을 몰아냈다.
또 은행과 별개 조직으로 바티칸의 주식·부동산 등을 관리해온 사도좌재산관리처(APSA)에 대한 관리감독도 대폭 강화했다. SNS 등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과 변화에 대응하고자 바티칸의 미디어 업무를 관할할 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하고 홍콩의 마지막 총독이자 BBC 이사회 의장을 역임한 크리스토퍼 페튼 옥스퍼드대 총장을 미디어위원회 위원장으로 초빙했다. 여기에 약 400억원을 들여 주교관을 신축하려던 독일의 주교에게 정직처분을 내리는 등 고위 성직자들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 확실한 ‘경고’를 보냈다.
△“가난한 이들이 우선” 세계평화 위해 파격 행보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내부의 개혁에 매진하면서 더불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세계평화를 위한 적극적인 행보로 주목을 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착좌한 이후 로마 밖의 첫 방문지로 택한 곳은 북아프리카의 튀니지와 120㎞ 떨어진 이탈리아 최남단의 섬 람페두사였다. 람페두사 섬은 아프리카 난민들이 유럽으로 가기 위한 밀항지로 2012년 튀니지에서 밀항을 시도하던 배가 뒤집혀 80여명이 죽기도 했다. 교황은 지난해 7월 람페두사 섬을 방문해 불법이민자 수용소에서 미사를 집전하면서 ‘무관심의 세계화’를 비판했다.
같은 달 첫 해외 방문지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제6회 세계청년대회를 찾은 교황은 리우데자네이루의 최대 빈민가인 바르지냐를 찾아 미사를 집전했다. 교황은 바르지냐의 작은 성당에서 기도를 드린 뒤 “사람들을 환대하고 먹을 것을 나눌 때 우리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다”고 연대를 강조했다.
교황의 두 번째 해외 일정이었던 지난 5월 중동 방문에서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평화를 기원하는 파격적인 모습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팔레스타인의 영토인 요르단강 서안지구 베들레헴에서 미사장소로 이동하던 중 이스라엘과 서안지구를 구분하는 분리장벽 앞에서 예정에 없던 평화의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이를 두고 이스라엘의 인종차별 정책을 반대하는 교황의 의지가 담겨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또한 지난 6월 열린 교황청 평화기도회에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과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초대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분쟁의 종결을 염원하기도 했다. 이어 6월 하순에는 이탈리아 마피아의 한 분파인 은드란게타의 본거지인 칼라브리아에서 미사를 집전하면서 “마피아처럼 악의 길을 따르는 자들은 신과 교감하지 않는다”며 마피아 단원들을 파문시켜 바티칸과 마피아의 결탁 의혹을 끊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