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안 잡혀, 내 꿈은 토사장” 간 큰 10대 도박 총책[단독인터뷰]
by김형환 기자
2024.10.11 05:20:00
■교실에 퍼진 毒 ‘도박’
총책된 고교생 "내 꿈은 해외서 도박 사이트 운영"
사이트 운영자들 "대학에 군대까지 고객층 확보"
도박 빠져 자퇴, 정신질환 입원하는 학생들
일 최대 10% 사채까지…무너지는 교실
[이데일리 김형환 황병서 박동현 정윤지 기자] “정말 공부만 하는 친구가 아니라면 다들 한 번쯤은 (불법 도박을) 해 봤을 걸요.”
경기 지역에서 불법 도박 사이트 총책으로 활동하는 이모(가명·18) 군은 이데일리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중독 수준까지 가는 친구도 있지만 대형 스포츠 행사가 있으면 친구끼리 돈 모아 불법 스포츠 토토를 하는 건 예삿일이라는 것이다. 이 군은 이들에게 불법 도박 사이트를 홍보하고 수수료를 받아 챙긴다. 이렇게 벌어가는 돈이 하루 300만원에 달한다. 이 군은 취재진에게 “난 절대 잡히지 않을 것”이라며 수사기관을 비웃기도 했다.
이 군과 같은 통로를 통해 교실로 스며든 불법 도박이 소위 ‘노는 친구’들 뿐만 아니라 평범한 학생들에게까지 마수를 뻗치고 있다. 불법 행위라는 인식이 희미해지면서 도박 행위가 만연해지고 도박에 빠진 학생들은 도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 최대 10%에 달하는 불법 사채를 빌리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는 등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이버 공간에서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는 범죄의 특성상 이를 잡아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 본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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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이데일리의 취재를 종합하면 ‘총책’으로 불리는 이 군은 고1 때부터 불법 도박 사이트 회원을 모으는 방식으로 범죄에 가담했다. 학교 친구들에게 무료 포인트를 지급한다며 불법 도박 참여를 유혹하고 추천인에 본인의 아이디를 입력하라고 하는 일종의 유인책이었다.
주변 지인에게 홍보하던 그는 이제 주변 친구에게 ‘홍보 알바’를 시키는 이른바 ‘대형 총책’이 됐다. 벌어들이는 금액은 하루 최대 300만원, 이 수익은 추천인으로 들어온 친구의 사용금액에 대한 수수료(1.2%)와 추천인의 잃은 금액의 30%로 구성된다. 이를 따져보면 이 군에게서 시작된 도박의 규모만 수 천만원 이상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다. 여기에 같은 역할을 맡은 학생이 여럿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매일 수 억원 이상의 도박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실제 지난 4월 5000억원 규모의 청소년 도박사이트가 적발되기도 했다.
특히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은 청소년층을 ‘중요한 고객’으로 여기고 있다. 각종 범죄에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베트남에서 사이트를 운영하는 50대 김모 씨는 “청소년들이 워낙 빠르게 도박에 빠져들고 쓰는 돈도 성인 못지않아 중요한 고객층”이라며 “총책으로 활동하는 친구들의 경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밝다 보니 홍보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여기에 도박에 빠진 청소년들이 대학에 가고 입대를 하면서 확장되는 인간관계 때문에 회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 있다는 기대도 하고 있었다.
이처럼 도박이 교실에 스며들면서 파탄에 이르는 학생들도 부지기수다. 도박에 빠져 학교에 나가지 않고 자퇴하거나 심지어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경남 김해에 거주하는 최모(14) 군은 늦둥이로 태어나 공부도 잘해 집안의 희망으로 불렸다. 하지만 최 군은 친구의 권유로 불법도박에 빠지게 됐고 결국 자퇴하고 정신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불법도박을 접한 지 불과 3개월 만이었다.
도박 범죄에 연루된 청소년은 폭증세다. 용혜인 의원실이 경찰청을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9년 도박 범죄 소년 검거 인원은 72명이었지만 2020년 91명, 2023년 169명, 2024년 8월 기준 328명으로 급증했다. 도박에 빠진 청소년들은 도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리 입금’이라고 불리는 불법 사채를 접하기도 한다. 대리 입금은 총책들이 10만원 정도의 소액을 빌려주는 것을 일컫는데 하루 이자가 10%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불법 사채인 셈이다. 만약 돈을 빌려간 학생이 돈을 갚지 못한다면 총책들은 이들을 폭행하기도 했다. 총책 이 군은 “돈을 안 갚으면 이들을 시켜 학생들을 모집해 오라고 하고 모집된 인원만큼 이자를 감면해주기도 한다”며 “최대 2000만원까지 빌려 간 아이도 있어 부모에게 받아내기도 했다”고 했다.
심지어 도박 자금 마련을 위해 절도를 하거나 중고 사기를 치는 경우도 있었다. 박종재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상담사는 “중고 사기를 치거나 도박 자금을 모으는 행위를 자주 보는 사례”라며 “최근에도 고3 학생이 도박 자금을 위해 절도를 했다가 결국 학교를 그만두는 일을 상담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법 도박 사이트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도박 사이트가 해외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신고해 폐쇄한다 해도 똑같은 사이트가 다시 문을 열기 때문에 뿌리 뽑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불법 도박 수사를 경험했던 한 간부급 경찰은 “사이트 자체를 폐쇄해도 도메인을 바꿔 계속 생기니 근절이 어렵고 해외에 소재를 둔 사이트 측에서 여러 가지 기법으로 범죄 수익을 숨기다 보니 검거가 어렵다”며 “게다가 총판이나 광고쟁이 등이 서로를 모르는 점조직으로 운영돼 관련 용의자를 잡아 역추적해도 중간에 끊기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총책 이 군은 그간 2차례 경찰 출석 통보를 받았지만 출석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사건이 자연스럽게 종결됐다. ‘발신제한 번호’로 통화를 한 그는 “절대 (수사기관에) 잡히지 않을 것이란 자신이 있다”며 “꿈은 돈을 차곡차곡 모아 해외에 불법 도박 사이트를 열어 운영하는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