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봉착한 채무자에 새 출발 기회 줘야…사회적 비용도 줄여"

by한광범 기자
2021.08.25 06:45:00

안병욱 서울회생법원 수석부장판사 인터뷰
"대부분의 채무자는 ‘성실하지만 불운한’ 사람들"
"미국선 도산 제도 긍정적 효과 이미 결론"
"도산 제도가 도덕적 해이 유발? 잘못된 시각"

안병욱 서울회생법원 수석부장판사가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내 서울회생법원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감당할 수 없는 빚에 시달리는 분들에게 새 출발 기회를 주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오히려 더 낮출 수 있습니다.”

안병욱 서울회생법원 수석부장판사는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청사에서 진행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도산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이같이 강조했다.

우리나라 도산제도는 외환위기로 기업들의 줄도산이 이어지던 지난 1999년 3월 본격 도입됐다. 2000년대 초반 신용카드 대란 여파로 제정된 개인채무자회생법에 따라 대상은 개인으로까지 확대했다. 20년 넘게 도산 제도를 운용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의 부정적 시각은 여전하다.

‘제도를 악용해 남에게 빌린 돈을 갚지 않는다’는 일부의 비판이 대표적이다. 실제 현실에선 ‘채무자의 회생·파산 신청 막는 방법’ 등을 상담해 준다는 광고를 내건 변호사도 상당하다.

이 같은 비판에 안 수석부장은 ‘잘못된 시각’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법원 문을 두드리는 대부분의 채무자는 ‘성실하지만 불운한’ 분들이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개인이 더 이상 채무를 감당할 수 없는 경우”라며 “도산제도를 통해 그분들이 나락으로 빠지지 않도록 구제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더 도움된다.

이는 도산법 선진국인 미국에선 이미 결론이 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계에 이른 채무자가 도산 제도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채무를 모두 갚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채권자에게 손해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일부라도 공평하게 변제하기 위해선 도산 제도를 이용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안 수석부장은 제도를 악용하는 이른바 ‘악성 채무자’가 많을 것이란 일각의 지적에 대해선 “수많은 서류 제출과 까다로운 절차 등을 통해 도덕적 해이가 있는 경우는 걸러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도산 재판 과정에서 채권자들의 의견 청취 절차도 마련돼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채권자가 재산을 몰래 처분했다거나 숨겨놓은 재산이 있다는 등의 의견이 채권자 집회에서 나오면 이를 다시 한번 자세히 검토한다”고 설명했다.

안병욱 서울회생법원 수석부장판사가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내 서울회생법원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도산 제도에 대한 이 같은 부정적 시각은 한계에 다다른 채무자들의 법원행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안 수석부장은 “채무자 입장에선 일단 감당할 수 없는 빚을 털어 내야 재기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두려움을 갖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안 수석부장의 설명이다. 그는 “일부 기업의 경우 너무 늦게 회생 신청을 한다. 얼마 되지 않은 절차 비용을 납입하지 못해 신청이 기각되는 경우도 있다”며 “금융기관들도 도산제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안 수석부장은 파산자에 대한 과도한 자격 제한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관계없는 분야까지 과도하게 자격 제한을 하는 것은 전근대적 산물이다. 법원에서도 과거부터 수차례에 걸쳐 국회와 법무부 등에 법률 개정 필요성을 건의했다”며 “현재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산 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않은, 이른바 ‘파산자’에 대한 과도한 자격 제한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논란이 돼 왔다. 파산자는 법에 따라 공무원, 변호사를 비롯해 경비원, 보험설계사 등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