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아는 만큼 보인다" 일갈했던 지성

by최은영 기자
2021.07.29 06:01:00

21세기 르네상스맨 'Bozart'님의 안식을 빕니다

[이데일리 최은영 산업에디터] 생자필멸(生者必滅).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뜻입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게 마련입니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습니다. 조금 일찍 하늘나라로 간다고 해서, 잠시 떨어져 있게 된다고 해서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는 소리겠지요. 떠나간 사람 보다 남겨진 사람을 보듬는 말로도 읽힙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향년 만 52세. 참으로 황망하게, 서둘러 갔습니다.

고인을 일컫는 호칭은 많습니다. 공학박사, 교수, 기업가, 엔지니어, 작가, 강사. 관심사도 어마어마했습니다. 역사, 경제, 정치, 사회, 문화를 아울러 폭넓게, 깊게 탐구했습니다.

서른이 되기 전에 박사학위를 취득해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15년간 교수로 재직했고 조지아공대 기업혁신센터 국제협력 수석고문과 국제 통신 표준화 의장을 지냈습니다. 다음 아고라에서 ‘Bozart’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던 스타 논객이기도 합니다.(추종자 모임까지 생겨난 걸 보면 꽤나 유명했던 모양입니다.)

최근 수년간의 삶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강연회와 집필활동, 연구를 이어갔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보는 시각을 일깨워 삶의 방향을 돌려놓는 것도 고인의 주된 일과 중 하나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3년 전 오피니언 담당 부장과 필자로 처음 만났습니다. 고인은 ‘역사덕후’입니다. 누가 공학도 아니랄까봐 역사를 종과 횡으로 쪼개고 나눠 재조립하는 게 그분의 취미이자 특기였습니다. 정치, 외교적인 측면에서 한국의 경제상황을 진단하고 해석해 방향성을 제시하는 일도 사명으로 여겼습니다. ‘인간’도 탐구영역의 한 줄기였습니다. 바흐와 모차르트를 합친 ‘Bozart’라는 필명처럼 PC 통신 시절부터 클래식 음악에 애호가 수준을 뛰어넘는 식견을 갖추는 등 예술 전반에 걸쳐서도 조예가 깊었습니다.

그는 우리 시대 보기 드문 ‘르네상스 맨’이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3만장에 달하는 친필 노트 ‘코덱스’에서 착안한 연재물 ‘임규태의 코덱스’(칼럼)와 이 세상 모든 산업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위대한 생각: 인더스토리’(TV 강연)는 지금까지 언급한 고인의 미친 탐구욕에 뿌리를 두고 탄생했습니다.

암투병 중 별세했다는 비보가 전해진 지난 26일, 고인이 생전 운영하던 페이스북 그룹 커뮤니티에는 그의 마지막 인사가 담긴 영상이 올라왔습니다. 그는 마치 소풍 나온 사람처럼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예정보다 빨리 가게 됐습니다. 저는 이 삶에 아쉬움이나 미련이 없습니다. 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즐거웠습니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그를 인생의 나침반처럼 믿고 따르던 이들은 ‘내 인생의 등불이 희미해진 너무나 큰 슬픔입니다’(김**), ‘세상을 보는 눈이 교수님을 만난 이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김**), ‘선생님께서는 제게 넓디넓은 바다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만약 다시 만날 날이 온다면 환하게 웃으며 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맹**)라며 애도했습니다.

그는 생전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더 넓은 세상과 만나기 위해 지식의 바다를 거침없이 누볐습니다. 고인이 세상을 떠나고 지인을 통해 전한 새로운 프로젝트의 이름은 ‘소멸의 탄생’입니다. 지금쯤 이 세상 반대편에서 새로운 세상을 탐구하고 계실까요.

고인은 그런 분입니다. 존경하는 임규태 박사님의 명복과 안식을 빕니다.

- Condolences to ‘Bozart’, a renaissance man of the 21st century.

[Eunyoung Choi, Industry Editor at Edaily] As the old saying goes, every living being must perish or come to an end. If there are hellos, then there’s bound to be goodbyes. Well, c‘est la vie. People may depart life on earth a little bit early, but we don’t have to mourn too much over a temporary farewell. After all, maybe these axioms are to assuage the grief of the ones that are left behind.

But he was in haste to have left us at 52.

The deceased wore many names. Doctor of engineering, professor, entrepreneur, engineer, writer, lecturer. His area of interest was borderless. He had a vast and deep understanding of history, economics, politics, social science, and culture.

His career began at Samsung Electronics as a researcher in semiconductors after getting a Ph. D before turning 30. He served as a professor in 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 for 15 years. Also, he was a senior advisor for International Initiatives and a chairman of the international standard on white space at the 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 He was also a renowned (based on the significant fan base drawn) writer under the pen name “Bozart” in Daum Agora.

It is rather difficult to summarize his last years. He gave lectures, wrote articles and conducted research, traveling back and forth between Korea and the US. Another routine of his was to meet people and change the course of their lives by broadening their horizon.

Personally, I first met Lim as his column manager three years ago. He was a history nerd. He was an engineer who really enjoyed and excelled at dissecting and reassembling the pieces of history. He saw it as his calling to diagnose and analyze Korea’s economic status from political and diplomatic perspectives and provide directional guidance. “Human studies” was also part of his focus of study. He was well-versed in arts, inferable from his pen name “Bozart”, which seems to be a combination of Bach and Mozart.

He was a Renaissance man, a rarity in our times. Both “Lim, Kyu Tae’s Codex,” a serial column based on Codex, a handwritten manuscript amounting to 30,000 pages by Leonardo da Vinci, one of the greatest minds in human history, and “Think Great: Industory,” a TV show that told us the history of all industries in the world, came into being based on Lim’s insane curiosity and desire to explore.

When the news was out that Lim has passed away during his fight against cancer, a farewell video was unloaded on Lim’s Facebook group. In a calm and composed manner, he spoke as if he were on a picnic. “I’m going earlier than expected. I leave no regrets thanks to all of you. It was a true pleasure knowing you all. I assure you that there is no need for grieving.”

The post was immediately filled with condolences from those that looked up to him as their guiding light. “My light just got dimmer. I am deeply sorry for the loss”(Kim, **), “My worldview was never the same since I met Lim”(Kim, **), “Lim was like a vast ocean to me. If we were to meet again someday, I would greet him with a big smile.”(Maeng, **).

Lim often said that “you can only see as much as you know”. He was boundless in his explorative journey to meet with a bigger world in the sea of knowledge. Shortly after his departure, his friends shared with me the name of Lim’s new project: The Birth of Extinction. Perhaps he has already embarked on a new journey in a different world.

And that’s what he was, a traveler. May he rest in 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