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대란]②아파트는 '절레절레'…"갑질당하는 게 일상"
by공지유 기자
2021.04.20 06:30:00
택배·기사 진입 금지하는 아파트 ''갑질''에 고충 토로
"시간이 돈인데…''엘레베이터 왜 오래 쓰냐''고 항의도"
"저상탑차 교체 요구 ''갑질''…기사들 건강 위협"
[이데일리 공지유 조민정 기자] 서울 강동구 고덕동 A아파트 발 ‘택배대란’ 관련 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택배·배달기사들은 몇몇 주민들의 이기심으로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며 주민 안전과 기사들의 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호소했다.
| 4월 14일 오후 서울 강동구 한 아파트 앞에 택배 물량 800여개가 적재돼 있다. 전국택배노조는 해당 아파트의 지상도로 출입제한 조치에 따라 이날 각 세대로의 개별배송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사진=공지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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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4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 아파트단지 경비원 최모(69)씨가 폭행 혐의로 입건됐다. 최씨는 오토바이 배달기사의 단지 진입을 막았고 배달원이 무시하자 화가 나 옷에 달린 모자를 잡아당겨 넘어뜨렸다. 지난해 7월 이 아파트 동대표회의에서는 주민안전을 이유로 오토바이의 단지 출입을 금지했다. 주민의 요구를 이행해야 하는 경비원과 배달시간이 돈과 직결되는 배달원과의 갈등은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이번에 문제가 된 A아파트에서도 앞서 경비원과 배달기사 간 송사가 있었다. 작년 8월 경비원이 “오토바이는 지하로 진입하라”며 몸으로 진입을 막아서다 이륜차 앞바퀴에 발을 밟힌 것. 기사는 특수상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지난 13일 법원은 고의성이 없다고 보고 무죄 판결을 내렸다.
최근 주민 안전을 이유로 단지 진입과 지상 통행을 금지하는 아파트가 늘어나자 택배·배달기사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른다. A아파트 입구에 쌓였던 800여개 박스의 ‘택배탑’은 자신들의 불만을 상징한다고 본다.
택배기사들은 우선 차량진입 금지로 업무량이 폭증했다고 토로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 브랜드 아파트에서 만난 김모(23)씨는 “여기는 택배차량을 단지 안으로 못 들어오게 해서 대로변에 차량을 세워두고 ‘끌차’로 옮겨야 한다”며 “단지가 작아도 물량이 많아서 끌차로 배달하면 30~40분 정도가 더 소요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아파트에서 만난 오토바이 기사 B씨도 “보통 배달시간이 다 정해져 있는데 도보로 이동하는 시간은 포함이 안 돼 있다”며 “엘리베이터가 한 대밖에 없는 경우에는 이동하는 데만 10~20분 가량을 쓴다”고 말했다. 그는 “이 주변은 대부분 오토바이 진입을 금지해서 도보로 이동해야 한다”며 “따로 오토바이 주차장을 마련해둔 곳도 있는데 여기는 없어서 매우 불편하다”고 덧붙였다.
택배·배달기사들은 입주민 ‘갑질’에 몸살을 앓고 있다고 호소한다. 김씨는 “엘리베이터가 하나뿐이라 기사들이 한 번 사용하면 5~10분 정도 쓸 수밖에 없는데 관련해서 입주민 불만이 많다”며 “가끔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면 ‘왜 이렇게 오래 쓰냐’며 혼잣말을 크게 하는 주민들도 있다”고 털어놨다.
강동구에서 택배일을 하는 40대 손모씨는 “요즘 사람들이 갑질을 대놓고 하지는 않지만 엘리베이터 문제는 항상 있다”며 “엘리베이터를 오래 쓴다고 뭐라고 하는 아파트가 많다”고 했다.
| 14일 오후 서울 강동구 A아파트 앞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 관계자, 롯데택배ㆍ우체국택배 택배기사들이 택배 물품을 단지 앞에 내려놓고 있다. 앞서 A아파트는 이달 1일부터 택배차량의 단지 내 지상도로 이용을 막고 손수레로 각 세대까지 배송하거나 제한 높이 2.3m인 지하주차장에 출입할 수 있는 저상차량을 이용하도록 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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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들의 가장 큰 불만은 일을 하다가 건강을 잃을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택배차량의 지상진입을 금지하는 곳들이 늘어나며 높이가 낮은 저상 택배차량(탑차)으로 차량을 개조·교체하는 방안이 제시됐지만, 기사들은 저상탑차 이용 방안은 현장을 전혀 모르고 나온 발상이라고 반발한다.
강민욱 전국택배노조 교육선전국장은 “고탑 택배차량은 화물실 높이가 180cm인데 저상탑차는 120~130cm로, 성인 남녀 기준으로 생각해도 들어가서 일하기 힘든 높이”라며 “무거운 물건을 들 때는 허리를 펴는 게 중요한데 못 펴니까 허리, 목, 어깨가 다 나가고 말 그대로 골병이 든다”고 강조했다.
김인봉 노조 사무처장은 “차량 안쪽 깊숙이 들어가 작업하고 적재하는 등 반복 업무가 많은데 저상탑차로 바꾸면 노동강도가 2~3배 가량 높아지는 것”이라며 “기사들의 허리부터 무릎까지 다 나간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처장은 “아파트 쪽에서 요구하니 어쩔 수 없이 저상탑차로 바꾼 기사들도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 택배사가 책임져야 한다”며 “주민들의 안전에 대한 방법을 강구하고 택배사, 아파트, 노조가 서로 논의한 뒤 협의점과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A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 관계자는 “사안의 원만한 해결을 위한 노력을 계속 진행 중이었으나 요청한 적도 없는 손수레 배송 등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며 입주민들을 ‘갑질’ 프레임으로 매도했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이 관계자는 “왜 우리 아파트에만 이의를 제기하고 협상을 요구하는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며 “노조의 일방적 매도 행위에 대한 해명이 선행돼야만 협상 요청에 대해 공식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한편 최시영 아주대 공학대학원 물류SCM학과 겸임교수는 “택배노조와 입주자 대표회의가 계속 얘기해 봤자 이미 감정이 상할 대로 상했고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이 문제의 중요 주체인 택배사들이 지금 뒤로 물러서 있는데 한국통합물류협회 택배분과위원회 등을 통해 삼자 간 대책을 논의하는 게 우선”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