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 역설] 박상훈 “선거제도 부작용? 악용하는 정치권 탓”
by신민준 기자
2020.04.20 06:00:00
17일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인터뷰
"소선거구제, 원내 1당 아닌 제1야당에 유리"
"빠른 야당 성장에 정권 교체 10년 만에 가능"
"위성정당 매개로 소선거구제 단점 도드라져"
"정치권 각성없는 제도 변경, 정치 질 개선 어려워"
[이데일리 신민준 기자] “문제점이 발생할 때마다 제도를 바꾼다고 해서 과연 정치의 질이 개선될까요? 그렇다면 가장 이상적이라고 여기는 나라의 제도를 모방하면 되니 답은 간단합니다. 그러나 제도를 바꿔도 문제는 항상 발생하고 있죠. 이는 제도 때문이 아니라 제도를 악용한 정치권 때문입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는 지난 17일 이데일리와 전화인터뷰에서 선거제도의 부작용이 발생하는 이유를 제도의 본질적인 문제보다 이를 악용하는 정치권에서 찾았다. 이번 21대 총선에서는 △승자독식 구조 △지역갈등 구도 심화 △소수정당 진입 차단 등 소선거구제의 부작용을 보완하기 위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도를 사상 처음으로 도입했다.
하지만 여당이 180석(비례대표 포함)을 얻으면서 독식 구조가 돼 사실상 야당의 견제가 어려워졌다. 표도 동서로 양분되면서 지역갈등 구조도 더 심화됐다. 여당과 제1야당이 총 300석의 94%인 283석을 싹쓸이하면서 20대 총선보다 소수 정당도 줄었다.
그는 “많은 사람이 소선거구제가 원내 1당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제1야당에 가장 유리하다”며 “소선거구제의 가장 큰 특징은 정권 교체가 빠르다는 점이다. 원내 2당인 제1야당이 원내 3·4당 등 소수정당의 표를 이전받아서 제1야당이 독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도 1998년 소선거구제를 도입한 이후 야당이 빨리 성장해서 10년 만에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며 “선진국에서도 이런 사례는 없었다. 소선구제라는 제도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악용한 위성정당이 매개체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번 총선에서 압승한 민주당도 좋은 소리 듣지 못할 것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악용한 위성정당을 매개로 해 소선거구제의 부작용을 도드라지게 했기 때문”이라며 “순수 소선거구제였다면 이런 결과까지는 안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과 통합당이 위성정당으로 얻은 표는 각각 17석, 19석 총 36석으로 비례대표 전체 의석 47석의 76.6%를 차지한다.
박 대표는 근본적인 원인인 정치권이 각성해 바뀌지 않는 이상 제도 변경만으로 정치의 질이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 그는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면 정치권에서 이를 또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군소 정당이 난립해 정치 혼란과 더불어 정권 교체도 더딜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