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회동에서 쌍용차 문제까지’ 文대통령의 절묘한 균형전략

by김성곤 기자
2018.07.16 06:00:00

인도 국빈방문서 친기업·친노동 이미지 균형전략 노출
이재용 부회장 면담서 “삼성 큰 역할해줘 고맙다” 격려
“노동계와의 약속 지킨다” 쌍용차 정리해고자 복직 언급

인도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9일 오후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노이다시 삼성전자 제2공장 준공식에 도착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행사장으로 입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13일 인도·싱가포르 국빈방문에서 30개에 이르는 공식 일정을 소화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이번 순방에서 가장 주목되는 일정 중 하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의 접견이었다. 또 인도순방 직전 양대노총 수장과의 비공개 회동에서 약속했던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의 복직문제를 마힌드라 회장과의 비공개 회동에서 언급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결론적으로 친기업과 친노동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전략을 취한 것이었다.

두 가지 일정 중 어느 하나만 제외됐더라도 친기업 또는 친노동 시비가 불거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더구나 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노동친화적인 대통령이다. 이른바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며 분수효과를 강조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는 대척점에 서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5월 1일 노동절 메시지에서 “노동은 숭고하다. 일하는 사람들에 의해 대한민국은 여기까지 왔다”며 “노동존중 사회를 위한 정부의 노력은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한 게 대표적이다.

문 대통령의 인도순방 최대 하이라이트는 9일 삼성전자의 노이다 신공장 준공식 방문이었다. 노이다 공장은 삼성전자가 6억5천만 달러를 투자해 만드는 인도 최대의 휴대전화 공장으로 13억 인구대국 인도와의 경제협력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도 함께 참석한 것도 이 때문이다. 더 주목할 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참석이었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이 언제 어떤 식으로 이재용 부회장과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가 최대 관심사였다. 더구나 문 대통령이 취임 이후 삼성그룹 관련 일정을 소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위험부담이 적지 않았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대통령이 국정농단에 연루 중인 대기업 총수를 만나는 게 다소 부적절하다는 여론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예정에 없이 이 부회장을 5분간 만나 “인도가 고속 경제성장을 계속하는데 삼성이 큰 역할을 해줘 고맙다”며 “한국에서도 더 많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심각해진 국내 고용상황을 감안해 투자확대와 고용창출을 주문한 것이다. 이 부회장은 이에 “멀리까지 찾아주셔서 여기 직원들에게 큰 힘이 됐다. 감사하고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이는 정치적 해석과 관계없이 일자리 창출을 위해재계와의 관계회복에 나서겠다는 전략적 행보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기업의 대규모 투자 없이는 이른바 일자리 대통령의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현식인식을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집권 2기 경제성과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면서 적폐청산과 경제민주화 과정에서 다소 불편해진 재계와의 협력관계 복원이라는 새로운 관계 설정에 나섰다는 관측이다.



문 대통령은 다음날인 10일 모디 총리와 한·인도 CEO 라운드테이블 행사에 참석했다. 최대 관심은 쌍용차 대주주인 마힌드라 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과의 비공개 회동이었다. 문 대통령은 “한국에 더 많이 투자하고 노사화합을 통해 성공하는 모델을 만들어 달라”며 “쌍용차 해고자 복직 문제, 그것이 노사 간 합의가 이뤄졌지만 여전히 남아있다”며 “관심을 가져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당부했다. 마힌드라 회장은 이에 “현장에 있는 경영진이 노사간 이 문제를 잘 풀어나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쌍용의 위기를 극복하고 지금까지 성장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쌍용자동차 노조의 지지가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라면서 “지금까지 쌍용에 1조4천억 원을 투자했는데, 앞으로 3~4년 내에 1조3000억 원 정도를 다시 또 투자하겠다”고 깜짝 선물을 안겼다.

해외순방에 나선 대통령이 개별기업의 노사문제를 언급하는 건 다소 이례적이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노동계의 요구사항에 약속을 지킨 것이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3일 문화역서울 284(옛 서울역사)에서 열린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출범식에 앞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공개로 만난 자리에서 쌍용차 해고자 복직 문제 건의에 “쌍용차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인도 방문이 예정돼 있는데 노력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의 이러한 행보는 노동계의 불만을 달래고 우군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특히 최저임금 문제를 놓고 사용자 측은 “너무 많다”, 노동자 측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반발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노동계마저 정권에 등을 돌릴 경우 향후 경제정책 운용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이와 관련, “서로 의견이 다른 점이 있어도 대화는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며 “정부의 노동존중 정책 방향에 흔들림이 없다는 것을 알아달라. 한국사회 전체를 봐주기를 바란다”고 노동계의 협조를 강조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