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숙의 민주주의'가 뜨는가

by장병호 기자
2018.05.23 05:04:00

시민의 이야기에 답이 있다
존 개스틸·피터 레빈 엮음│320쪽│시그니처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숙의 민주주의’란 단어가 자주 들려온다. ‘깊이 생각해 충분히 의논한다’는 뜻의 ‘숙의’란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정책을 결정하는 데 여러 사람의 의견을 폭넓게 듣고 논의를 거쳐 결론을 도출하는 민주주의 방식을 말한다. 작년 10월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건설 재개 여부를 공론화위원회에 참여한 시민투표로 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결과는 정부가 원한 방향과 달랐지만 과정만큼은 숙의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한국사회에서 숙의 민주주의가 정착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와 함께 탄생한 나라 미국은 어떨까. 미국에서도 숙의 민주주의는 사회 분위기와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을 받기도, 쇠퇴를 겪기도 했다. 한국과 다른 점이라면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1999년 필라델피아 시장 선거 당시 후보자와 유권자의 대화를 위해 산업계·시민단체·주민단체·언론사 등이 함께 마련한 ‘시민의 목소리’ 프로젝트가 좋은 예다. 1년 가까이 진행한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많은 시민은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했다. 선거투표율도 1991년, 1995년 선거 때보다 높은 44.5%를 기록했다. 당시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한 시민은 “처음으로 나에게도 정치적인 능력이 있다는 걸, 내가 진짜 시민이란 것을 느꼈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렇듯 숙의 민주주의는 사회 구성원의 의견을 보다 포괄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물론 한계도 존재한다. 많은 사람의 다양한 의견 속에서 하나의 합의점을 도출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모두의 의견을 듣기 위한 공론의 장을 만드는 것도 어렵다. 그럼에도 숙의 민주주의가 가진 긍정적인 의미는 포기할 수 없다. 민주주의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미국의 정치학 교수들이 숙의 민주주의에 대한 여러 사례를 책으로 엮은 이유다.

눈여겨볼 것은 미국에서도 숙의 민주주의가 쇠퇴했던 시기가 있다는 사실이다. 냉전체제가 지배했던 20세기 중반에는 사회 여건상 자유로운 토론이 불가능해 숙의 민주주의가 자리잡을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 지금 이 시점에 숙의 민주주의가 부상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사례 나열로 단조로운 감이 없지만 이젠 피할 수 없는 길이 된 숙의 민주주의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다면 참고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