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민의 사과나무]국가는 뭘 하나요?

by정태선 기자
2016.06.12 09:30:00

[조승민 글로벌입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 개인이나 집단 각각의 합리적 선택이 반드시 사회 전체적으로도 합리적인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국가의 역할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구의역 열아홉살 청년의 죽음은 이런 관점에서도 우리에게 과제를 남겨주었다.

조승민 객원 칼럼니스트.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정치학 박사. 글로벌입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현),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객원교수, 국민대 정치대학원 겸임교수 역임.
서울시는 메트로의 구조조정을 감행했다.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나름대로는 공기업의 효율화를 위한 선택을 한 것이다. 노조는 그 과정에서 조합원들의 희생을 막으려 했을 것이다. 당연한 대응이다. 퇴사 이후에 살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동시장구조는 시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에게 매우 폐쇄적이다. 사회안전망은 지극히 허술하다. 사회적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눈도 차갑다. 한 번 밀려나면 소외와 궁핍, 사회적 차별과 천시를 감내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죽은 김군이 속해 있던 용역업체는 이 같은 구조조정 과정의 산물이다. 물론 메트로 노사의 합의도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갑과 을의 먹이사슬,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과도한 차별이 구조화되었다. 이는 메트로와 용역업체 간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용역업체 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같은 사고가 3번이나 반복되었다. 처음에는 개인의 과실로 치부하며 덮고 넘어갔던 사고 이면의 구조적 문제점이 결국 표면화되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같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서울시 산하 공기업만의 문제인 것은 더 더욱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 구조화되고 일반화된 현상이다. 이 구조는 기업과 노동자, 그리고 노동자들 간 세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기업은 국제경쟁력 확보를 내세우며 원가절감과 구조조정을 끊임없이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강력한 노동자 집단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보상을 한다. 대신, 이에 필요한 비용은 세력이 약한 노동자들을 통제해서 취득하는 구조가 고착되어 왔다.

이 같은 구조는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차별과 그들의 고통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이 구조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갉아먹는 구조이다. 이런 공동체가 오래 갈 리 만무하다. 갈등의 심화와 폭발은 필연적이다. 이 문제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해결하기 어렵다. 구조적이고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혹 담합이나 심지어 추악한 부패구조가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다. 장단기적인 대책을 마련, 시행해야 한다.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은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일이다. 요즘 조선업계의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스웨덴의 말뫼 사례가 회자된다. 하지만 이 사례는 우리의 경우와 다를 수 있다. 스웨덴은 사회안전망이 잘 갖추어진 나라다. 따라서 스웨덴의 구조조정은 저항이 적다. 실제로, 잘 갖추어진 사회안전망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이 사례는 말해주고 있다. 반면,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우리의 경우, 저항은 강력하기 마련이고 각자도생의 길을 찾게 된다. 그 결과가 오늘 우리가 당혹해하고 분노하는 현실이다. 따라서 사회안전망의 강화와 확립이 시급한 과제이며 이는 국가의 몫이다.

또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와 정책을 마련, 시행해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완화를 위한 대책 등이 그것이다. 앞으로 필연적으로 이루어질 구조조정 과정에서라도 이 같은 이중구조가 더 심화되지 않도록 다양한 대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메트로의 경우와 같이 또 다른 구조적 모순을 만들고, 이를 묵인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시급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가령,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것이다. 이를 위한 법안들이 19대 국회에도 제출되었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20대 국회에서라도 조속히 진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번에 드러난 ‘메피아’, 그리고 메피아보다 더하다는 ‘철피아’를 없애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중앙정부 차원의 ‘관피아’, ‘법피아’, ‘군피아’로는 부족해서 지방정부와 그 공기업 차원까지 이 같은 구조가 확대 재생산되는 현상은 심히 우려되는 일이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해야 할 공직자들이 이 같은 구조의 일원이 되는 상황에서는, 모순이 해결되기는커녕 심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제의 해결은 서울시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가령, 메피아나 철피아를 없애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공직자윤리법’의 강화가 필요하다. 따라서 국회의 입법 노력과 중앙정부 차원의 실행의지가 중요하다. 사고 현장에 나타나서 의례적인 요식행위를 한다고 해서 공감할 사람은 없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진정성 있는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