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울고 누구는 웃는' 금리의 경제학

by김정남 기자
2016.02.07 08:00:00

저금리 시대, 월급쟁이 자산 불릴 방법 많지 않아
자영업자 등 대출 많은 이는 저금리 훨씬 더 유리
금리 변화 효과, 각 경제주체에 다 다르게 파급돼

최근 5년간 기준금리 추이. 출처=한국은행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경기도 성남에 사는 직장인 A씨는 최근 한 시중은행을 찾았다가 짐짓 놀랐다. 월 100만원씩 부은 적금의 만기가 가까워지면서 새 상품을 알아보려던 차였는데, 적금 이자율이 1% 중반대에 불과했던 것이다.

A씨는 1년 전 2.3%짜리 적금에 들었고, 오는 3월 1212만원가량 찾는다. 월 100만원에 1만원꼴로 더 손에 쥐는 것이다. 김씨가 실망하던 찰나에 은행 상담원은 추후 적금 환경은 더 안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1% 중반대 적금에서 15.4% 세금(이자소득세)을 떼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A씨가 그러면서 추천 받은 게 비과세 연금저축과 주식형펀드다. 그는 “주거비 문제도 있어서 10년 단위로 장기적인 투자를 하기 쉽지 않다”면서 “몇 년 전만 해도 적금 이자율이 4%는 됐던 것 같은데, 이제는 자산을 불릴 방법이 별로 없다”고 했다.

기자가 지난 5일 찾은 서울 중구 소재 또다른 시중은행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 은행 상담원은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여서 은행에 수수료를 내고 돈을 맡긴다고 하지 않느냐”며 고위험 상품군을 권했다.

금리, 즉 돈의 값이 변하면 누구는 울고 또 누구는 웃는다.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초저금리 시대(기준금리 1.5%) 들어 더욱 그렇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오는 16일 기준금리 결정이 주목받는 이유다.

그렇다면 금리 변화는 각 경제주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A씨처럼 보통 한푼 두푼 저축하는 직장인은 금리가 떨어지는 게 반갑지 않다. 안전하게 돈을 굴릴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저금리 때는 결국 위험을 더 감수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집 장만, 자녀 교육과 결혼에 더해 노후까지 준비하는 건 저금리 시대에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금리가 하락할수록 전세가도 오른다. 집 주인이 억 단위의 거액을 맡겨도 이자는 얼마 되지 않는 까닭이다. 서울 아파트 임대시장에 지난달 월세 비중이 38.2%로 1년 전(27.8%)보다 10%포인트 이상 급증(서울부동산정보광장)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월급쟁이에게 매달 월세는 부담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금리 인하론이 비등한 건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빚 부담’ 때문이다. 대출 받아 집을 장만한 이들의 이자 부담이 첫 손에 꼽힌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이후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은 매달 5조원 이상씩 순증하고 있다. 금리를 올리면 주로 중산층 이상인 이들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대출이 불가피한 자영업자 혹은 임대업자 역시 금리가 떨어지는 게 이익이다. “전국 골목길 갯수 만큼 치킨집이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고 하니, 이들이 길거리에 나앉으면 우리 경제도 위기를 맞는다는 논리도 일리가 있다. 네이버와 다음의 지도에서 ‘치킨’을 검색하면 나오는 가게만 무려 7만개에 가깝다. ‘족발’을 검색해도 2만개 안팎이다.

따지고 보면 저금리 시대 때는 빚을 얼마 안 지고 저축하는 ‘순진한’ 직장인의 소득이 과감하게 대출을 받고 ‘일을 벌리는’ 이에게 이전된다는 해석도 가능한 셈이다.

이뿐만 아니다. 금리가 떨어지면 외국인 투자자금이 우리나라를 빠져나갈 유인은 더 커진다. 돈의 값에 차이가 작다면, 안전한 선진국이 더 매력적인 건 상식이다. 그만큼 원·달러 환율은 더 올라갈(원화 약세 달러화 강세) 가능성이 높다.

환율이 올라가면 수출기업은 반긴다. 해외 경쟁업체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생겨서다. 주요 경제단체 한 관계자는 “환율 변동이 급격하긴 하지만 그래도 환율이 올라가면 기업에는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고 했다. 서민들이 수출기업들을 먹여살린다는 얘기도 마냥 농담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금리정책은 고도의 전문성과 중립성을 요한다. 금리 변화에 각 경제주체간 희비(喜悲)가 엇갈리는 와중에 현재 경제상황에 맞는 적정 금리 수준을 찾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돈의 값을 정하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좋은 소리’를 못 듣는 건 숙명과도 같다.

한은의 고민은 최근 들어 더 크다. 금리 인하를 좋아할 만한 이들이 연일 한은은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매파(경기안정을 위한 금리인상 선호)적 기질을 타고난 ‘한은맨’들이 이를 달가워하지 않는 기류도 역력하다.

한은 한 고위관계자는 “일본 등 주요국이 과감하게 (금리 인하 등) 부양책을 쓰고 시장도 비슷한 목소리를 내는 것에 영향을 분명히 받고 있다”면서도 “금리 인하의 부작용도 있다고 판단하고 있어 고민이 상당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