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표절파문①] '문학의 별' 나락으로 떨어지다

by김성곤 기자
2015.06.24 06:16:00

낮엔 여공 밤엔 문학소녀
22세 등단 후 탄탄대로
작품마다 베스트셀러
주요 문학상 휩쓸어
日 소설 표절에 뒤늦은 사과
'설마'한 독자도 등돌리게 해

2014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런던북페어’에 참석한 신경숙 작가가 ‘한국저자와의 대화’ 행사에 참석해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낭독하고 있다(사진=한국번역문학원).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지난 16일.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신경숙(52)에게는 ‘악몽의 날’이 되고 말았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응준(45) 작가가 한 인터넷매체에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 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이라는 장문의 글을 올리면서부터다. 그동안 암암리에 제기돼 왔던 신경숙의 표절의혹이 새로운 국면을 맞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문학세계는 이날을 기점으로 잔인하게 엇갈렸다.

그날 이전까지 신경숙은 한국문학의 ‘가장 빛나는 별’이었다. 1985년 등단한 이후 현대문학상, 만해문학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주요 문학상을 휩쓸며 명실공히 한국문학의 대표주자로 우뚝 섰다. 프랑스의 ‘리나페르쉬 상’(2009)과 ‘맨아시아 문학상’(2012)을 수상하며 해외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작가로서의 이력도 대중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중학교 졸업 이후 서울로 올라온 신경숙은 낮에는 구로공단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간학교를 다니며 문학소녀의 꿈을 키웠다. 습작시절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비롯해 국내 주요 작가들의 소설을 필사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였다. 22살이 되던 1985년 문예중앙에 소설 ‘겨울우화’가 당선된 이후로는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풍금이 있던 자리’ ‘깊은 슬픔’ ‘외딴방’ ‘오래전 집을 떠날 때’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등 쓰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평단의 주목과 열혈 독자들의 지지를 한몸에 받았다.



이후에도 유력 출판사의 러브콜이 끝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2008년 메가톤급 베스트셀러 ‘엄마를 부탁해’를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엄마를 부탁해’는 최단기간에 200만부 판매고를 올리며 한국문단의 신기록을 갈아치웠고 해외 36개국의 언어로 번역·출간되는 기염을 토했다. 그해 신경숙은 동인문학상 종신 심사위원으로 위촉되며 문단권력의 정점에 올랐다.

그렇게 보석처럼 빛나던 신경숙이 한순간에 몰락했다. 표절도 놀라운 일인데 ‘한글만 알면 누가 읽어봐도 표절’에 어처구니없는 해명과 변명을 내놔 설마했던 독자들까지 냉담히 돌아서게 했다. 온라인 공간에는 그녀를 향한 비난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네티즌은 신경숙의 작품을 전수조사해야 한다는 치욕스러운 주장은 물론 남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진우 명지대 교수가 과거 표절작가에 대한 저격수로 활약했던 사실도 들춰내며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23일 뒤늦은 사과 인터뷰가 나왔지만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신경숙은 이번 표절사태와 관련해 일각에서 요구하고 있는 절필요구를 거절했다. “나에게 문학은 목숨과 같은 것이어서 글쓰기를 그친다면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니다. 원고를 써서 항아리에 묻더라도 문학이란 땅에서 넘어졌으니까 그 땅을 짚고 일어나겠다”는 의지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대중의 손가락질에 만신창이가 된 그녀가 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방법은 하나다. ‘목숨과 같은’ 글쓰기를 통해 다시 독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 ‘신경숙’이라는 이름 석자가 다시 한 번 ‘믿고 읽는 보증수표’의 동음이의어가 될 수 있을지는 그녀가 하기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