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생선손질 7년, 그때 경험이 내 재산"

by이학선 기자
2012.05.05 10:10:51

(별난사람 별난직업)
모광석 이마트 이수점 고객서비스1팀장

[이데일리 이학선 기자] "일진은 아니었구요. 친구들이 말을 못걸긴 했죠."

모광석(40) 이마트(139480) 이수점 고객서비스1팀장은 학창시절 얘길 꺼내자 쑥스러운듯 웃었다. 둥그런 얼굴에 쌍꺼풀진 눈, 넉넉한 아랫배까지 겉보기엔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 동네 형의 모습이지만 그의 과거는 남들하고는 조금 달랐다.

그는 중학교 2학년때부터 4년간 사춘기의 대부분을 럭비에 쏟아부었다. 하루 4시간에서 8시간을 운동장에서 뒹굴었다. 같은 반 친구들은 그를 `건드려선 안되는 애`로 여겼다. 지금으로 치면 일진 비슷했다고 할까.

20여년이 지난 지금, 그의 몸무게는 72㎏에서 86㎏로 불었고 어느새 두 아이의 아빠가 됐다. 친구들과 말도 섞지 않던 10대의 모광석은 어느덧 회식자리의 사회를 맡고 다른 이의 말을 먼저 경청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모 팀장은 인천기계공고 3학년 때 선반 기술을 배운 뒤 인천 남동공단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럭비 실업팀에 들어가기도, 뒤늦게 공부에 뛰어들기도 어려워 남들이 하던 것을 따랐다고 한다. 그리고는 군입대, 제대 후 다시 공단 취업. 모 팀장 역시 공고를 졸업한 이들과 비슷한 궤적을 그리며 20대를 보냈다.

이마트에서 일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유통업으로 가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인생항로를 바꿔놓을지는 당시엔 몰랐다.

"처음엔 OO통상이라는 회사 소속이었습니다. 이마트에서 수산물을 판매하는 회사죠. 거기서 생선 손질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남들이 하길 꺼리던 일이 맡겨졌다. 모 팀장이 시작한 일은 전문용어로 소분(小分) 작업이다. 생선 내장을 제거하고 머리와 꼬리를 쳐낸 뒤 소비자들이 요리하기 좋은 크기로 생선을 자르는 일이다. 소분 작업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그 생선의 판매량과 선도가 좌우된다.

"생선 손질이 말처럼 쉽진 않습니다. 마트에 가면 하얀팩에 생선몸통이 가지런히 담겨있는 걸 보셨을 겁니다. 크기가 일정하죠? 소분이 잘된 생선은 표면에 상처도 없어요. 유통업계에서도 힘든 업무에 속하는데 7년 넘게 했습니다. 그덕에 지금은 생선 토막만 봐도 작업자의 솜씨를 가늠할 정도는 됐구요."





모 팀장이 유통업에 관심을 둔 계기는 아이러니하게 다단계 회사 덕분이었다고 한다. 제대 후 친구 소개로 한달간 숙식하며 교육을 받았는데 딴 건 몰라도 유통업의 전망이 밝다는 점 하나만은 머릿속에 남더란다.

"국내 A그룹 계열사라고 해서 갔죠. 실제론 그게 아니었지만….(웃음) 친구를 원망하냐구요? 아니요. 그 친구와 지금도 전화통화 정도는 합니다. 그 일 아니었으면 유통업에 발디딜 생각을 못했을 수 있잖아요."

웃으며 넘기는 그의 모습에 여유가 느껴졌다. 모 팀장은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이마트에 경력사원으로 정식 입사했다. 협력업체 직원이 정직원이 된 것이다. 그로부터 2년 후 이마트 수산 매니저로 승진했고 지난 2010년에는 부평점 신선팀장으로 발령났다. 지금은 이수점 매출의 70% 가량을 차지하는 가공·신선식품 부문을 책임지고 있다.

"지금은 그때의 경험이 큰 자산입니다. 말 한마디라도 주위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일종의 감성관리죠."

현재 모 팀장과 함께 일하고 있는 인력은 협력업체 직원을 포함해 총 60명 가량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이수점을 나설 때 그는 특별한 부탁을 했다. 럭비의 4대 정신을 기사에 꼭 써달라는 것이다.

"부평중학교에서 럭비부 생활을 할 때 코치선생님이 가르쳐준 4대 기본정신이 있습니다. 희생·인내·감투·협동인데요, 지금도 새기고 있죠. 남들이 하기 싫은 걸 내가 하고, 참고 한길을 가면 어느 순간 삶이 윤택해진다는 걸 후배들에게 꼭 얘기하고 싶습니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인생경로가 지금의 모 팀장을 있게 한 가장 큰 자산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