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앞은 안 되고 왕릉 옆은 된다?”… 태릉CC 개발 역풍
by박지애 기자
2026.02.01 09:49:08
태릉CC, 종묘와 달리 세계유산 영향평가 의무인인데다
저밀도, 지하철 선개발 등 주민 요구에 사업지연 암초
2020년 8.4 대책에서도 결국 주민반발로 중단
“문화재 훼손 적고 주민 동의하는 사업지 개발 힘써야”
[이데일리 박지애 기자] 정부가 1·29 도심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통해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CC) 부지에 68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시작부터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특히 국토교통부가 주택 공급을 위해 밀어붙이는 태릉CC 개발이 국가유산청이 종묘 보호를 이유로 반대하는 종묘 인근 세운지구 개발보다 문화재 훼손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부 정책의 이중잣대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서울시와 노원구 그리고 노원구 주민들은 물론,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세운지구 주민들의 반발까지 더해지며 사업은 사실상 ‘사면초가’에 빠진 형국이다.
1일 서울시 및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시가 태릉CC 사업대상지와 조선왕릉(태릉·강릉)의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을 대조 분석한 결과, 사업지의 약 13%가 보존지역과 중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율과 무관하게 세계유산지구에 일부라도 포함되거나 접하는 개발사업은 세계유산영향평가(HIA) 의무 대상이다.
최진석 서울시 주택실장은 “태릉CC는 세계문화유산과 직접 접해 있어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며 “환경영향평가보다 훨씬 까다롭고 통과 여부도 불확실한 이 절차에만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종묘 재개발과의 형평성 문제도 강하게 제기되는 분위기다. 현재 정부(국가유산청)는 서울시가 추진 중인 세운4구역 등 세운지구 재개발에 대해 ‘종묘 경관 저해’를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문제는 태릉CC와 달리 세운4구역 재개발 구역은 종묘 세계유산지구 밖에 위치해 세계유산 특별법상 HIA 의무 대상도 아닌 상황이다.
최 실장은 “세운4구역은 종묘 세계유산지구에서 태릉CC 개발구역 보다 멀리 있어 HIA 의무 대상도 아닌데 정부가 막고 있고, 반대로 태릉은 유산 구역에 일부 포함돼 HIA가 필수인데도 정부가 개발을 강행하려 하는건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라면서 “지난 2020년 8.4 대책 당시에도 관련해 주민들의 반발이 있었는데 이 상황에서 관계부처나 지역주민들과 충분한 논의 없이 국토부가 독자적으로 발표한 것은 무리수”라고 비판했다.
관할 지자체인 노원구의 반발은 현실적인 ‘암초’다. 노원구는 정부 발표 직후 입장문을 통해 ‘정부의 공급 의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사실상 수용 불가능한 조건을 내걸었다. 노원구가 정부에 제시한 요구안은 △고밀도가 아닌 저밀도 개발 △임대주택 비율 최소화(35%) 및 구민 우선 배정 △지하철 6호선 연장 등 획기적 교통대책 선행 등이다.
노원구 측은 “정부의 주택 공급 확대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태릉CC는 세계유산과 직접 접한 부지로 문화재 보호와 교통 대책이 전제되지 않은 개발은 수용하기 어렵다”며 “교통, 임대비율, 공원비율 등 지역 여건을 반영한 공급 방식이 함께 논의되지 않는다면 행정 절차에 협조하기는 쉽지 않다”고 전했다.
문제는 노원구의 요구대로 저밀도로 짓고 공원과 문화시설을 확충하면 국토부가 목표한 6800가구 공급은 불가능해진다는 점이다. 여기에 지하철 연장 등 광역교통대책을 먼저 수립하려면 예비타당성 조사 등으로 착공은 하세월로 미뤄질 수밖에 없다. 이는 2020년 문재인 정부 당시 ‘8.4 대책’이 주민 반발과 지자체 이견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갔던 상황의 ‘데자뷔’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태릉 개발이 속도와 명분을 모두 잃은 정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태릉CC는 상징성은 높으나 실질적으로는 정부가 ‘가용 부지를 총동원하고 있다’는 심리적 안정을 주기 위한 숫자 채우기용 카드에 가깝다”며 “노원구의 요구사항(저밀도)과 정부의 목표(물량 확보)는 물리적으로 양립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주민이 동의하고 문화재 훼손이 덜하면서 속도를 그나마 낼 수 있는 사업지 개발에 집중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조언했다 .
익명을 요구한 국내 유명 부동산 전문가는 “다급함에 현실성이 없는 걸 알면서도 수치만 늘리고자 이미 실패한 정책을 포장지만 바꿔 다시 내놓은 꼴”이라며 “문화재 보호에 대해서도 엇박자가 나고 있고 국토부가 억지를 부리고 있어 좌초될 수밖에 없는 사업”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