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하얀 천 덮인 시신만 ‘1100구’…“기절이 다반사였다”
by이로원 기자
2024.06.24 06:18:44
사우디 메카 성지순례 폭염 참사
“의료 지원 등 부족” 순례객 증언 쏟아져
[이데일리 이로원 기자] 기록적 폭염으로 올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성지순례(하지) 기간 1000명이 넘는 순례객들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폭염 속 인파가 몰릴 것에 대한 준비가 미흡했다는 순례객들의 증언이 나왔다.
| 하지 순례 기간 동안 사우디아라비아에 방문한 무슬림 순례자들의 모습. 사진=로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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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현지시각) 미국 CNN방송은 성지순례를 다녀온 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현지에서 순례객을 보호할 의료진과 기본 시설, 물 등이 충분히 제공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사우디는 지난 17일 메카 대사원 마스지드 알하람의 기온이 섭씨 51.8도를 기록할 정도로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21일 사우디에서 런던으로 돌아온 지라르 알리(40) 씨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사람이 너무 많고 의료진이 부족했다”며 “그들은 최악 중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렸고, 그래야만 조치를 할 것 같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기절하는 일이 다반사였다”며 “이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니 하지에 집중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출신의 아흐마드(44) 씨도 “길에서 의료진과 구급차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지역 주민이나 단체에서 물을 배급할 때마다 순례자가 즉시 몰렸다. 거의 수백 미터마다 하얀 천에 덮인 시신이 누워 있었다”고 증언했다.
매체는 하지 기간 부모를 잃은 미국인의 사연도 전했다. 사이디 우리 씨의 부모는 여행사 패키지 상품으로 평생 꿈이었던 성지순례를 떠났지만, 메카의 아라파트 산에서 실종됐다.
우리 씨는 “여행사가 성지순례에 필요한 적절한 교통수단이나 증명서를 제공하지 않았으며, 여행 중 필요한 식량과 물품도 부족했다”고 분노했다.
하지는 무슬림이 반드시 행해야 할 5대 의무 중 하나다. 매년 이슬람력 12월 7~12일에 치러진다. 무슬림은 일생에 반드시 한 번은 메카와 메디나를 찾아 성지순례를 해야 한다. 사우디 당국은 국가별 할당제를 통해 인원을 제한하고 있다. 이에 관광비자 등을 통해 사우디에 입국한 후 허가받지 않은 상태에서 성지순례를 시도하는 인원도 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하지 기간이 여름과 겹치면서 폭염으로 심혈관 질환, 열사병 등으로 숨진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올해 집계된 공식 사망자 수는 약 500명이지만 외신들은 실제 사망자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AFP 통신은 온열질환 등으로 인한 사망자가 1126명에 이른다고 전했으며,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사망자를 1170명 이상으로 추정했다.
사망자가 급증하자 이집트 정부는 성지순례 여행사에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다. 모스타파 마드불리 이집트 총리는 하지 여행을 주선한 여행사 16곳의 면허를 박탈하고, 메카 여행 불법 알선 혐의로 여행사 관리자들을 검찰에 조사하라고 명령했다. 올해 사망자 중 절반 이상이 이집트인으로 확인되었다.
성지순례를 위한 준비와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각국 정부와 관련 당국의 철저한 대비와 관리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