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면의 사람이야기]3대 개혁이 성공하려면
by송길호 기자
2023.01.05 06:15:00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성균관대 특임교수]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사를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와 미래세대의 운명이 달린 ‘3대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개혁에 대한 의지를 강력히 피력했다. 윤 대통령의 말마따나 ‘지금 추진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문제로 정부 각 기관의 가시적인 움직임도 이미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수정하지 않고 현재의 시스템을 그대로 두면 소수의 기득권은 안온한 환경에서 과실을 따먹겠지만 다음 세대는 그 돈을 대느라 허리가 휘어지다 못해 부러진다. 아마 그렇게 되면 세계 10대 경제대국 대한민국은 사라지고 양극화와 빈곤, 사회적 갈등이 충만한 그야말로 소위 ‘헬조선’만 남을 것이다.
이제라도 현 정부가 3대 개혁에 진심을 다해 진력하는 모습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어려운 길을 택한다는 점에서 옳은 길이기도 하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개혁에 드는 시간은 최대한 줄이면서 질은 높이는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시간을 끌수록 개혁의 성과는 떨어지고 저항과 국민의 피로감은 높아진다. 그렇다고 속도전만 강조하면 본질적 개혁은 하지 못한 채 변죽만 울리게 된다. 이 개혁의 성과가 가까운 미래에 평가되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는 질에 대한 평가도 반드시 뒤따를 것이다. 빠른 성과를 위해 졸속으로 개혁했다는 평을 듣지 않기 위해선 시작 단계에서 방향성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이제는 노동, 교육, 연금 각각의 분야별 방향성과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와야 한다.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말고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하나씩 결정을 지어가야 할 시간이다. 서두르되 원대한 목표와 단계별 세심함이 요체이다.
연금개혁의 경우 ‘많이 내고 적게 받는’ 쪽으로 바꾸면 재정 건전성도 좋아지고 지속가능성도 확보할 수 있어 좋다. 학계에선 현행 9%인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점진적으로 15%로 올리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고 혹자는 22%까지 올려야 한다고도 한다. 하지만 현재도 한 가구가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각종 세금과 연금 보험료는 평균 60만원에 육박한다. 최근 3년 새 21% 늘어난 수준이다. 이 사이 가계소득은 13.2% 증가했지만 물가상승분을 뺀다면 3.5% 증가한데 그친다. 그런데 가계의 조세 부담을 더 늘린다면 가처분 소득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고 그에 따른 저항이 거세져 개혁의 앞길이 순탄치 않게 될 것은 자명하다. 휴! 국민연금 15~22%, 건강보험료, 장기요양보험료, 고용보험료, 거기다 세금…. 인상만이 올바른 방향인지에 대한 깊은 천착이 필요한 이유다.
보험료율 인상은 최소한으로 하고 관련 이익 당사자들의 십시일반 기득권 양보도 병행돼야 한다. 기수급권자의 자발적, 추가적 감액, 자산별, 소득별 또는 연령별 적정 지급률 조정 등의 선순환 방안 도입이 적극적으로 검토돼야 한다. 이에 따른 명분과 다른 혜택이 고려된다면 수월한 사회적 합의도 가능하다. 보다 근본적으론 개인의 노후는 국민 각자가 준비하고 부족한 부분은 국가가 돕는다는 개념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국민 전체의 노후를 국가가 국민연금 만으로 책임진다는 개념은 출생율이 높고 고령화는 낮으며 경제는 지속적으로 고성장을 유지한다는 가정하에서나 가능한 비현실적인 개념이다.
노동개혁은 21세기형 AI, 스마트 환경에 적합한 전세계적 일자리 경쟁시대의 도래와 함께 글로벌 채용시장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미래형 노동기준이 절실하다. 주52시간제, 최저임금제를 부분적으로 손보는 수준을 개혁의 본질로 봐선 안 된다. 경제발전 초기에 채택된 노동법제의 대강을 완전히 새로 써야 한다. 미래 세대가 일할 노동시장 환경을 할아버지 세대의 노동법으로 규율하려 들면 일하는 사람과 고용하는 사람이 모두 힘들다. 노와 사, 노와 노 사이의 이중구조를 극복하고 글로벌 시장을 향해 완전히 개방된 노동환경을 구축할 수 있는 개혁방안이 제시돼야 한다. 공장형과 지식형을 아우르는 ‘하이브리드 노동법’으로의 전면적 개정이 바른길이다.
교육부문은 교육환경과 산업을 전반적으로 재조정 한다는 인식이 선행돼야 한다. 교육부가 대학별, 지자체별 교육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윤석열 정부의 교육개혁 방향성은 옳다. 대학교육 정상화를 위해 이제 교육부가 주는 보조금에 대한 각 학교의 의존성을 끊어내야 한다. 1년에 태어나는 신생아 수가 30만명 밑으로 떨어진 지금 남아도는 대학을 세금으로 유지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각 대학에 등록금 인상의 자유를 보장하고 학교별로 특화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 학생의 선택을 받은 학교는 명품대학으로 살아남고 그러지 못하는 학교는 자연스럽게 도태되도록 만드는 것이 교육개혁의 핵심이다. 출생자 격감 속에서 초중고의 존폐 또한 심각한 양상이다. 사회 진출 전 교육기관과 학제가 미래 사회에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 또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이다. 5세 입학, 6-3-3-4제, 사회 진출 연령의 재설정 또한 ‘인재 한국’을 위한 과제이다.
또한 교육감 직선제로 인해 각 지역별로 분절돼 있는 교육시스템이 야기하는 폐해를 시정하기 위해 교육감은 장관 임명제로 가는 것이 맞다. 이 작은 나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문제가 지역별로 갈기갈기 찢어져서야 되겠는가 하는 우려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었다. 학년당 2만명도 안되는 학생을 위해 17개의 분절된 교육행정이 필요한가? 교육 산업 종사자를 위해 구조조정 또한 선제해야 한다. 궁여지책의 대책으로 보이는 학급당 학생수를 얼마까지 줄이려 하나, 이로 인한 인당 비용 증가의 결과는 무엇일까도 생각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둘러싼 변화의 속도와 폭이 심상치 않다. 바꿔야 할 때 바꾸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과오를 범하게 된다. 세계사 속에서는 아무도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지금 연금, 노동, 교육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 아들, 딸들이 닥쳐오는 거대한 파고를 온몸으로 맞게 된다. 나와 우리, 그리고 모두를 위해 세대와 지역과 이념의 차이를 넘어 윤석열 정부 3대 개혁의 성공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