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소리]와이프와 물고기
by김영환 기자
2022.08.20 09:22:00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부인 김건희 여사를 ‘처’라고 칭하는 편이다. 굳이 중국 고서를 뒤져보자면 주나라 시절 만들어진 예법책 ‘주례’(周禮)에는 이를 규정한 대목이 나온다. 왕의 아내를 후(后), 제후의 아내를 부인(夫人), 대부의 아내를 유인(孺人), 선비의 아내를 부인(婦人), 서민의 아내를 처(妻)라 했다. 여기서 유래돼 지금 우리가 쓰는 부인이나 처는 모두 기실 남의 아내를 뜻하는 말이다. 결혼을 할 무렵, 준비할 것이 참 많았지만 반려자의 명칭을 정하는 것도 못지 않은 고민거리의 하나였다. 결혼은 1인칭과 2인칭으로 점철된 세계가 3인칭으로까지 확장되는 계기다. 제 3자에게 짝이 될 사람을 소개하는 표현이 필요했다. 고민의 이유는 이랬다. 아내, 처, 부인, 집사람, 마누라, 여편네…수많은 단어가 있었지만 저마다의 이유로 부적격 판단을 내렸다. 아내와 집사람은 ‘안’의 의미로 대상을 한정짓는 게 문제였다.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일갈에, 근거가 되고 싶지 않았다. 개중 후보군이었던 마누라, 여편네는 세월을 거치며 비하의 의미가 담겼다. 억울하지만 언중을 살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이를 극복하기 쉽지 않았다.
| 일본 드라마 ‘금붕어 아내’의 한 장면.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사진=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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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즈음 기혼자들이 자신의 여성 배우자를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유심히 지켜봤다. 대다수는 영어 ‘와이프’(Wife)를 썼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입장에서 대체가능한 표현이 수두룩한데 굳이 외국어를 빌리는 것은 자존심이 상했다. 와이프의 어원은 여성을 뜻하는 ‘Wif’에서 왔다. 독일어에서 여자란 뜻으로 쓰이는 ‘Weib’에도 흔적이 남았다. 세상에, 와이프의 의미가 그저 여성이라니 나는 이슬람의 군주, 하렘의 지배자가 아니었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사피어-워프 가설’을 끌어들이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천륜’인 부모로부터 독립한 개체로서, 수십 억 분의 1에 해당하는 한 여성을 스스로 ‘인륜’으로 고른 책임감은 필요했다. 한 개념을 지칭하는 말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의 문화적 다양성이 반영됐다는 의미다. 이누이트 족이 한낱 ‘눈’(雪)에 그렇게 많은 의미적 분절을 담아냈는데 함께 어쩌면 평생을 생활해야 할 배우자의 호칭을 고르는 것도 신중을 기하고 싶었다.
일본어는 물고기를 의미하는 ‘魚’를 두 가지 형태로 발음한다. 하나는 ‘우오’(うお)고 하나는 ‘사카나’(さかな)다. 둘의 차이는 간단하다. 생사로 의미가 갈린다. 전자가 살아있는 물고기를 뜻하고, 후자는 죽은 물고기를 지칭한다. 그래서 낚시라는 표현에 붙는 단어는 ‘우오’일 수밖에 없다. 살아있는 물고기를 낚아야 하니 ‘우오 츠리’인 것이다. ‘사카나 츠리’는 10년 전 예능 프로그램 ‘패밀리가 떴다’에서 김종국이 죽은 참돔을 잡았다는 의혹에서나 쓸 수 있는 말이었다. ‘말이었다’라고 표현한 데는, 근래 일본에서 ‘우오’가 지위를 잃고 ‘사카나’로 통칭되는 경향 때문이다. 한 가지 섬뜩한 것은 ‘사카나’에 ‘술안주’라는 뜻도 있다는 점이다. 섬나라답게 술안주로 생선요리를 많이 먹어서라는 해석이 뒤따른다. 문자로는 ‘魚’라고 쓰더라도 살아있는 것과 먹을 것을 구분해 부르던 현명함이 무뎌지고 있는 셈이다. 아쿠아리움의 물고기를 보고 ‘우오’라고 부르지 않고 ‘사카나’라고 부르는 순간, 그나마 ‘자유’만을 박탈당했던 물고기는 ‘생명’마저 빼앗겨 술안주로 전락하게 되고 만다.
한국어를 쓰는 독자라면 이 즈음까지 읽은 마당에 고민을 해야 한다. ‘물고기’는 왜 물‘고기’인가. 물 속에 사는 수중 동물의 총칭이 물고기라는 건, 한국어 화자들이 이들을 그저 식용의 대상으로만 보아왔다는 의미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고기를 ‘식용하는 온갖 동물의 살’로 정의한다. 인간이 동물의 범주를 벗어날 수 있어 사전은 ‘사람의 살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도 부연했다. 그 외 ‘어류의 척추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 추가되는데 한국어에서 물고기를 제외하고 고기가 ‘단백질을 취할 수 있는 영양원으로서의 다른 동물의 살’ 외의 형태로 쓰이는 경우는 없다. 지구를 구성하는 70%가 바다인 상황에서 그 곳에 거처하는 생명체를 모두 ‘고기’로 표현하는 건 한국어의 궁핍함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보부아르를 빌리자면 “물에서 태어났는데, 고기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난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살색’을 ‘살구색’으로 바꾸면서, ‘백인’과 특히 ‘흑인’을 담아내지 못했던 한국어의 외연을 넓힐 수 있었다. 한반도에 흑인의 존재가 처음 기록된 건 임진왜란이 마무리되던 1598년 무렵이다. 21세기 지구에서 한국의 반대편 유럽은 식용 동물의 도살 방법을 합법과 불법으로 나누면서 ‘동물권’을 지키고자 하는 시도마저 있다. 개고기를 먹으면서도 ‘견공’으로 일컫던 사유의 탄력성이 필요하다. 물고기에게 다른 이름을 찾아주려는 시도는, 21세기 세계 시민이 되고자 하는 한국어 화자들이 고민을 해봐야 할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