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논설 위원
2019.01.25 06:00:00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등의 혐의로 어제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됐다. 역대 사법부 수장 가운데 검찰에 피의자로 소환돼 사법처리된 초유의 사태라는 점에서 그 자신의 불명예이기도 하지만 사법부로서도 오욕의 획을 더한 셈이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심정도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이미 박근혜·이명박 등 전직 대통령 두 명이 재임 당시의 권력남용과 관련해 영어의 신세가 됐다 해도 대법원장의 경우는 상징적인 의미가 또 다르기 때문이다.
그에게 적용된 개별 범죄 사실은 40개가 넘지만 그중에서도 ‘재판 거래’에 관여했다는 부분이 가장 두드러진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민사소송과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지위확인소송 등의 진행과정에 직접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혐의도 받고 있다. 앞으로 공판과정에서 이들 혐의에 대한 유무죄 여부가 명확히 가려지기를 기대한다. 땅바닥에 떨어진 사법부의 명예를 되찾는 길이기도 하다.
걱정되는 것은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으로 그동안 논쟁을 초래했던 정치적 사건 판결들이 다시 당사자들의 극심한 반발에 부딪칠 것이라는 개연성이다.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에서 판결이 났던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의 내란음모사건을 비롯해 민주노총, 전교조 사건 관계자들이 재심청구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일부 좌파단체 회원들은 “사법부를 적폐 판사의 피로 물들이자”고까지 주장하는 상황이다. 오히려 새로운 분란의 도화선이 됨으로써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기까지 현 김명수 대법원장도 책임을 벗을 수는 없다. 법원 내부의 자체 조사 결과 블랙리스트나 재판거래 의혹에 있어 “어떠한 자료나 정황도 찾지 못했다”는 결론이 내려졌는데도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며 방향을 튼 것이 김 대법원장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사법농단 의혹은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김 대법원장 체제가 정치적 풍향계를 따라가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번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계기로 사법부가 그릇된 관행을 떨쳐내고 제 모습을 찾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