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전쟁]밑빠진 독에 물붓는 저출산대책…해법은 '아빠육아'
by김기덕 기자
2015.12.07 07:00:00
1·2차 저출산·고령화대책 150조 예산에도 출산율 1.21명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율 5% 불과… 인사상 불이익 영향
"육아 가정에 가족수당·아빠 육아휴직 의무화 도입 필요”
[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3억 896만원. 우리나라에서 자녀 1명을 낳아 대학을 졸업시키는데 까지 드는 양육비다. 가계부채가 1300조원을 넘어서고 가구당 빚이 1억원에 육박하는 국내 현실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과거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 됐다.
1.21명. 우리나라 가임 여성 한 명당 평균 출생아수다. 600만명이 넘는 비정규직, 치솟는 집값, 현실과 동떨어진 정부의 일방통행식 육아지원 정책에 결혼을 늦추거나 아예 포기하는 ‘민혼·비혼자’가 크게 늘면서 15년째 초저출산국가에 머물고 있다.
5.1%. 올 상반기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비율이다. ‘일하는 아빠, 살림하는 엄마’라는 성역할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정부는 아빠 육아휴직 인센티브, 근로시간 단축제도 등을 잇따라 도입했다. 그러나 남자직원이 육아휴직을 냈다가는 직장 내에서 ‘미운 오리새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육아전쟁 중이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 저출산대책
통계청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내년 3704만명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2050년엔 2535만명으로 1000만명 이상 줄어든다. 오는 2017년부터는 전체 인구 중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점차 줄면서 노동력 부족 국가가 된다.
저출산이 노동력 부족 사회를 이끌었다. 지난 1960년 가임여성 1명당 평균 출생아수는 6명이나 됐지만 작년 출산율은 1.21명에 불과했다. 전 세계 190여개 국 중 도시국가인 홍콩(1.20명)과 마카오(1.19명)를 제외하고는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정부가 지난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2차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내 놓으며 10년간 150조원의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출산율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지난 10월 발표한 3차 저출산 대책 역시 현실과 동떨어진 ’수박 겉핥기식‘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육아 지원을 위해 출산의료비에 대한 본인부담률을 대폭 축소하고 아빠 육아 휴직 인센티브 기간 확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시 근속기간 인정 등의 다양한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저출산의 근본원인인 육아 문제 해결을 위한 해답은 아니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양미선 육아정책연구소 박사는 “근로시간 단축제도 외에도 유연근무제, 재택근무 등 다양한 육아지원 정책이 있지만 모두 의무사항이 아닌 권고 수준에 그쳐 우리나라 직장 문화에서는 쓰기 힘든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부부 10쌍 중 4쌍 맞벌이…육아지원은 취약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부부 열쌍 중 네 쌍은 맞벌이 가구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활발해지면서 맞벌이 가구 비중은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맞벌이 가구가 아이를 낳고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장 환경은 여전히 취약하다. 지난 8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남성 육아휴직자 비율’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비율은 5.1%에 불과하다.
정부는 남성 육아휴직 비율이 20%가 될 때까지 육아휴직 인센티브를 늘린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남성 육아휴직에 대한 직장내 부정적 인식과 인사상 불이익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정부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남성 육아휴직자는 “육아휴직을 다녀오니 인사고과 등급이 휴직 직전 일했던 것과 상관없이 중간 이하 등급이 나왔다. 심지어 직장 건강검진까지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회사 내에서 존재가치가 없어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
비정규직은 이마저도 수혜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서문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사는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비정규직의 경우 육아휴직에서 제외돼 있어 그나마 있던 혜택도 일부에게만 돌아가는 것이 현실”이라며 “새로운 육아지원 정책이 탄력을 받고 추진력을 얻으려면 기본 뼈대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8월 국내 전체 임금근로자(1931만명) 중 32%에 달하는 627만명이 비정규직이다.
◇‘아빠 육아휴직 강제해야’
선진국에서 저출산 해결을 위해 ‘모든 아이는 국가가 키운다’는 사회적 합의아래 임신, 출산, 육아비용 대부분을 국가 사회보장 제체 내에서 해결한다. 또 아빠 육아휴직을 의무화해 맞벌이가정에서 남여간 육아부담을 균등히 나누게 하는 제도가 일반화돼 있다.
프랑스에서는 2명 이상의 자녀를 둔 모든 가정에 소득과 상관없이 ‘가족수당’을 지급한다. 또한 직장을 다니던 부모가 육아를 위해 일을 그만두거나 노동시간이 감소할 경우 ‘직업 활동 선택보조금’을 준다.
이에 힘입어 지난 1990년만 해도 1.6명이던 프랑스 출산율은 최근 2명을 넘어섰다. 노르웨이의 경우 부모들이 육아휴가가 끝난 후에도 부모가 아이를 돌보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영아 양육을 위한 현금수당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서문희 박사는 “국가의 육아 지원방식은 현금수당, 육아휴직(시간), 보육서비스 세가지가 균형을 맞춰 톱니바퀴처럼 돌아가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보육서비스에만 올인을 해 자녀양육에 한계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육아휴직을 장려하고 보편화하기 위해서는 가정, 직장, 사회 전반적으로 육아문제에 대한 인식과 패러다임이 전환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첫걸음으로 국내도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국가와 같이 남성들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강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