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갈곳잃은 60대... 술이 노인에게 위험한 이유는?

by이순용 기자
2015.07.18 04:26:44

알코올성 정신장애 진료환자, 60대 남성 가장 많아

[이데일리 이순용 기자] 젊은 시절 음주가 잦았던 이모씨(68)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회식자리에 빠지지 않았다. 정년퇴직 후 예전과는 달리 아침에 눈을 뜨면 정작 할 일이 없어 아침, 점심, 저녁으로 술을 마시게 됐다. 점점 더 음주시간이 길어지고 음주량도 늘어남에 따라 가족들과 부딪히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가족들은 하루 종일 술 마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 끊임없이 잔소리와 비난을 하게 됐다.

아버지를 위한 여러 가지 논의 끝에 가족들은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봉사활동과 여가활동, 새로운 직업을 찾거나 시간 관리 등 삶의 활력소를 얻을 것을 권고해드렸으나 정작 자신은 문제가 없다고 말할 뿐이었다. 가족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고집이 세지고 감정기복이 심해져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없어졌다. 사소한 일에 화를 내고 분노감정을 조절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자신의 술 문제를 본인이 아닌 가족들의 탓으로 돌렸다. 결국 반복적인 악순환으로 치료가 필요한 상태까지 만성화되어 가족들이 알코올중독 전문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았다.

이모씨처럼 60대 남성 노년층의 알코올 중독 진료 건수가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14년 12월에 발표한 ‘알코올성 정신장애’로 인한 건강보험 지급자료를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인구 10만 명당 ‘알코올 정신장애’ 진료인원은 60대 남성 환자가 537명으로 가장 많았다. 젊은 층에 비해 노인층에서 알코올 질환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음을 보여준다.

60대 알코올 중독 남성 환자가 많은 이유는 젊었을 때부터 음주를 시작한 남성들이 오랜 기간 음주로 인해 심신의 피해가 진행되면서 60대에 이르러 질환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은퇴 이후 사회적 소속감이 서서히 줄어들고 여생을 함께 보낼 수 있는 배우자의 사망이나 결별을 겪게 된다. 이러한 상실의 과정을 겪으며 받게 되는 심리적 스트레스와 무료함을 해소하기 위해 음주와 폭음을 하는 양상을 보인다.

서울시 어르신 상담센터는 2013년 60세 이상 남녀 5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인의 음주 유형별 실태’ 연구결과에 따르면, 실제 노인 10명 중 4명은 정기적으로 술을 마시고, 10명 중 1명은 한번 마실 때 7잔 이상 마시는 고위험음주자로 나타났다. 잠재적 알코올 중독은 22%, 알코올 중독 노인도 5%로 추산됐다.

노인의 경우 신체기능의 저하와 정년퇴직 등으로 심리적, 정서적 외로움과 상실감이 높을수록 생활만족도가 낮아져 알코올 중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어르신들은 노화로 인해 알코올 분해 능력이 떨어져 알코올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인 알코올 중독 환자의 문제는 보통 수십 년 음주를 해왔지만 정작 자신이 중독에 빠졌다고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 알코올로 인한 노인 건강문제

노인 알코올 중독 환자가 많아진다는 사실은 심각한 우리나라 노인들의 건강문제이다. 노인의 경우, 신체 기능이 저하돼 있어 알코올의 대사도 젊을 때보다 떨어져 알코올성 질환은 더욱 위험하다.



▲알코올성 치매 = 평소 술을 많이 마시게 되면 대뇌에 이상이 생겨 평상시에도 기억력이나 판단력이 떨어진다. 초기에는 건망증이 생기지만 심해지면 방금 자신이 한 말도 기억하지 못하는 치매 현상이 일어난다.

이와 같은 현상은 장기적으로 술을 많이 마신 노년층에서 주로 발생한다. 이는 뇌신경 억제제인 알코올을 지속적으로 과다 섭취할 경우, 뇌의 기억 전반을 담당하는 해마가 손상을 입으면서 발생한다. 뇌세포가 손상되면서 뇌 위축을 가져와 뇌가 쪼그라들 듯 작아지며 뇌 중앙에 위치한 뇌실이 넓어지면서 전반적인 뇌의 기능이 저하되어 알코올성 치매로 발전한다.

이럴 경우 장기기억은 살아있는 반면 단기기억은 상대적으로 많이 손상을 입는다. 언어장애나 기억력 감퇴로부터 시작되는 노인성 치매와는 달리 알코올성 치매는 뇌에서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기관인 전두엽이 가장 먼저 손상이 되기 때문에 충동조절 장애 및 폭력적 성향을 보인다.

▲노인음주가 신체에 미치는 영향 = 나이가 들수록 신체기능이 떨어져 질병이 생기는데 알코올은 이를 더 악화시킨다. 노년기에는 노화로 인해 체내 수분이 감소해 알코올 분해 능력이 떨어져 간에 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어르신들은 젊은 사람들에 비해 알코올 분해 능력이 감소되어 젊은 사람과 동일한 양의 음주를 했을 경우 더 빨리 술에 취하고 더 늦게 술이 해독된다.

또한 지속적으로 음주를 하면 뇌세포, 간 기능 손상이 증가하고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알코올중독이 만성화 단계에 이르게 되면 거의 매일 취해 사는 식의 생활을 하게 된다. 술만 마시면서 일생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알코올 섭취로 인한 열량만으로 힘을 내는 것이다. 즉 알코올 흡수는 영양학적으로 신체적 영양불균형을 나타내고 기력도 쇠약해져 몸도 마른체형으로 바뀌게 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습관적인 음주가 만성으로 진행되면서 뇌에서 통제가 어려운 중독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노년기 삶의 질 저하 = 술로 인한 인격변화는 가족들과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부부사이에도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균열을 만든다. 음주를 지속할수록 올바른 판단과 행동에 영향을 주어 의처증으로 인한 집착은 배우자에게 심한 고통을 주게 된다. 술 문제로 받은 상처와 실망은 신뢰를 떨어뜨리고 가족들은 그동안의 누적된 분노에 정신적으로 소진되어버린다.

때문에 회복의 희망을 잃게 되고 결국 가족의 지지나 뒷받침을 얻기 힘들다. 이처럼 노년기의 음주가 이미 습관화 되어 알코올 섭취가 지속되는 의존상태에서는 가족이 설득하고 때로는 단주 약속을 받는다 해도 변화가 없이 가족의 고통만 더 심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다사랑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석산 원장은 “알코올중독 치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의지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닌 뇌 기능 중 조절능력의 상실로 전문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임을 환자와 가족이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환자를 위해서, 가족들을 위해서 하루라도 빨리 술 없는 안전한 치료환경으로 들어와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가족들이 노인음주를 보다 냉정하게 대처하지 않는다면 이는 노인 알코올 중독을 키울 뿐이다. 결국 돌아갈 곳은 가정이기 때문에 치료진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가족 전체의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을 찾는 가장 중요한 시작”이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