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異야기]명품백 콧대 낮추고 홈쇼핑 외도.."완판 해냈죠"
by김미경 기자
2013.07.11 08:05:04
伊 '에트로' 수입하는 이충희 듀오 대표
홈쇼핑서 완판 신화..“명품 대중화 이끌다”
삼성맨 뿌리치고, 명품백 팔아 자산가 등극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지난 2006년 4월 한 홈쇼핑 채널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 연출됐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고가 수입명품 ‘에트로’ 가방이 홈쇼핑을 통해 전국구로 처음 방송을 탔다. 이는 글로벌 명품 브랜드가 국내 홈쇼핑에서 정식 판매된 첫 사례로 기록됐다.
이 같은 베팅은 적중했다. 첫 전파를 탄 이래 방송 때마다 ‘완판(완전판매)’ 행진을 이어갔다. 에트로 ‘1-729 보스턴백’은 홈쇼핑에서만 1만 개 넘게 팔려나갔다. ‘7초백(거리에서 7초마다 마주칠 정도로 많이 갖고 있는 가방이란 의미)’이란 별칭도 생겼다.
‘명품=홈쇼핑’의 어울리지 않을 법한 조합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장본인은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에트로를 수입·판매하고 있는 ‘듀오’의 이충희(58·사진) 사장이다. 1993년 고작 800만원의 자본금을 갖고 사업을 시작한 그는 20년여만에 듀오를 매출 1100억원대의 회사로 키워냈다. ‘업계 최초’ ‘완판 행진’ ‘신의 한 수’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 이충희 듀오 사장의 명함 뒷면을 보면 백운장학재단 이사장·백운갤러리 대표·로리앙 대표·ROTC 수석부회장이라는 4개 직함이 빼곡히 적혀 있다. 365일 하루 24시간도 빠듯해 보인다. 하지만 일주일에 1번 정도 기회만 되면 인사동을 찾는다는 이 사장은 “작가나 화랑주인들과 만나 그림 얘기를 나눈 지도 10년이 훌쩍 넘는다”며 “1960년대 서울 인사동 골동품 가게를 돌던 아버지의 취미가 어느새 내 이야기가 됐다”고 멋쩍어했다. [사진=한대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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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희 사장의 첫 직장은 삼성 계열의 호텔신라였다. 호텔신라에서 면세점 영업점장을 맡았던 그는 열심히 일했지만 뭔가 1% 부족함을 느껴왔다. 이 사장은 “관리 직책은 장사꾼 기질을 펼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며 “입사 12년 만에 호텔신라 생활을 접고 면세점 근무 시절 인연을 쌓은 해외명
| 백운갤러리 김미로 작가 작품에서 포즈를 취하는 이충희 대표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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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수입업체인 유로통상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명품 수입업에 눈을 뜬 이 사장은 1993년 본격적으로 창업에 나섰다. 당시 에트로가 한국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800만원을 들고 에트로의 일본총판기업 회장을 무작정 찾아갔다.
자본금 800만원은 총판 희망자들 중 가장 적은 금액이었지만 이 회사는 이 사장을 선택했다. 그는 “돌이켜 보면 일본총판 회장의 사업가적 본능을 자극한 것 같다”며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가장 절실해 보였고, 이 일에 목숨을 걸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 선정했다는 말을 건네들었다”고 회고했다.
창업초기 에트로의 매출은 아직 국내 명품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탓에 성장이 더뎠다. 그러다 1998년 IMF 외환위기를 맞았다. 상황은 녹록치 않았지만 꿋꿋이 버텼다. 창업초기부터 지금까지 지켜온 ‘비상 경영철칙’ 덕이 컸다는 게 이 사장의 생각이다.
그는 “당시 원·달러 환율이 뛰면서 중소 수입업체들이 줄도산했지만 듀오는 매출의 20~30%를 늘 비축해둬 외환위기 풍파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다”며 “또 파트너와의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는 철칙도 듀오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에서 회복되면서 듀오의 본격적인 성장도 시작됐다. 에트로 가죽 제품이 인기를 끌면서 매출이 급증했다. 듀오의 매출은 지난해 1100억원을 기록했다.
2000년대 초반 이 대표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에트로 브랜드를 아는 이들이 지방에는 전무하다는 것을.. 당시 서울에서 에트로 가방이나 지갑은 여성들이 갖고 싶어하는 아이템 중 하나였다.
인지도가 서울과 경기도 일부에 국한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 대표는 고심한 끝에 홈쇼핑 판매를 결심했다. 당시 임직원들은 홈쇼핑 진출을 필사적으로 말렸다. 명품 이미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하지만 그의 결심은 확고했다.
2006년 홈쇼핑에 첫 방송을 타면서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지역구에서 전국구가 된 것. 홈쇼핑 판매량은 점차 늘었고, 오히려 입소문을 타면서 백화점 매출은 10~20% 상승하는 효과를 봤다. 이 사장은 “이제 명품은 홈쇼핑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게 됐다”며 “초기 월 1회 방송에 불과했던 명품 방송이 이제 홈쇼핑의 효자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고 강조했다.
이 사장은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다. 지난 2010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비리가 불거지면서 성금이 줄자 복지시설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 선뜻 1억원을 내놨다.
그의 이 같은 행동이 눈에 띄는 것은 최근 외국 명품 업체들의 인색한 기부 행태와 비교되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 백운장학재단을 설립한 이후 지금까지 829여명의 학생과 교수들에게 약 16억원의 장학금과 연구비를 지원해오고 있다. 개인적으로 공동모금회, 고아원 등 불우이웃에 기부하는 것까지 합하면 기부금 총액은 40억원에 이른다.
문화·예술 후원 활동도 활발하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본사 5층을 갤러리로 꾸며 전시공간을 구하지 못하는 신진 미술가들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있
다. 이 사장은 “패션으로 번 돈 예술에 돌려주는 것 뿐”이라며 “나중에 돈 많이 벌면 하겠다고 미루지 말고 단돈 5000원이라도 지금 당장 기부를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재능기부도 하고 있다. 전국 각지에 있는 군 장병들을 위한 특강에 나서고 있는 것. 그는 “강사료가 적은 데다 오가는 데 시간이 너무 걸려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니 불러주면 시간을 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하반기께 에트로 남성 전용 단독매장을 오픈할 계획이다. 이미 2011년부터 양복과 구두, 피케셔츠 등 남성복 라인을 대거 들여와 왔다. 그는 “남성 명품시장이 무르익은 만큼 에트로 남성 제품 전용 판매공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해 준비 중”이라며 “질 대비 가격 경쟁력도 있어 기대해도 좋다”고 자신했다
=여덟 남매 중 여섯째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윤리교사였던 어버지 월급만으로 생활해야 했던 만큼 집안 형편은 그리 넉넉하지 못했다. 하지만 수집에 조예가 깊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미술에 눈을 떴다. 1960년대부터 아버지를 따라 골동품 가게를 드나들며 ‘흥정’의 기술을 배웠다. 장사꾼 기질이 타고난 이 사장은 12년간 삼성맨 경력을 뿌리치고 1993년 에트로 국내 총판을 따냈다. 작년엔 프랑스 화장품 ‘올랑’도 수입해 판매 중이다. 지난 2010년 청담동 본사엔 아버지의 호를 딴 백운갤러리를 열고, 신진 미술가들의 등용문을 제시해주고 있다.
[약력]▲1955년 서울 출생 ▲1973년 서울 휘문고 졸업 ▲1977년 경기대 관광경영학과 졸업 ▲1986년 경기대 관광경영학 대학원 졸업 ▲1979년 호텔신라 입사 ▲1991년 유로통상 입사 ▲1993년∼현재 듀오 대표 ▲2002년∼현재 백운장학재단 이사장 ▲2010년∼현재 백운갤러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