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ecake]신용카드 소득공제 논란의 맹점

by이진우 기자
2011.02.13 09:14:34

[이데일리 이진우 기자] 세금의 본질을 설명하는 우스개 중에 이런 게 있다. "세금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들은 두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남자, 또 다른 한쪽은 여자다."
 
세금 내는 게 즐거운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조세정책과 관련한 이슈는 더 신중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자칫하면 포퓰리즘으로 흐르기 십상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불거진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둘러싼 논쟁은 대단히 아쉽다. `월급쟁이가 봉이냐`는 레토릭에 여론은 불같이 타올랐고, 이게 과연 서민을 위한 제도가 맞는 건지, 언제까지 이 제도를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은 시작해보지도 못했다.

세금 내는 게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누군가는 내야 하는 게 세금이다. `나 먹고 살기 팍팍하니 나한테 세금 더 내라는 말은 꺼내지도 말라`는 우격다짐식 논리는 속은 시원할 지 모르지만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그렇게 다들 세금을 내기 싫어하니 부가가치세 같은 간접세의 비중이 계속 증가한다.

부가가치세를 그래서 `자와 난한 사람이 같이() 내는 금`이라고 비꼬지 않던가. 500원짜리 콜라 한 병에 붙은 부가세는 그 콜라를 재벌 회장이 사먹든 거지가 사먹든 똑같이 부과된다. 간접세가 늘어날 수록 가난한 서민들의 납세 부담이 커진다. 이런 역진세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간접세보다 직접세 비중을 늘려야 하는데 대표적인 직접세가 바로 월급에서 떼는 소득세다.

우리나라에는 연봉 1억원이 넘는 급여소득자들이 20만명 가까이 되는데, 이들은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로 매년 최대 115만5000원의 세금을 절약하고 있다.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를 폐지해서 이 절세혜택을 없애면 서울시가 초등학생 무상급식에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2000억원이 이 억대연봉자들이 더 내는 세금만으로 해결된다.

`월급쟁이는 유리지갑`이라는 게 모든 월급쟁이는 징세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논리로 확대되는 것도 문제다.

우리나라는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급여소득자가 이런 저런 공제로 근로소득세를 한푼도 내지 않는다. 근로소득세를 1원이라도 내고 있다면 그나마 상대적으로 먹고 살만한 월급쟁이라는 뜻이다.

돈 있는 사람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논리는 재벌 회장이나 고소득 자영업자에게도 적용되어야 하지만 그 `상대적으로 먹고 살만한 월급쟁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게 옳지 않을까.



납세자연맹에 따르면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가 폐지될 경우 근로자들이 1조1818억원의 세금을 더 내야 한다. 그러나 이 돈은 모든 근로소득자가 부담하는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더 부유한 근로소득자들이, 부유하면 부유할수록 더 많이 부담하게 될 세금이다. 그리고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상대적으로 가난한 근로자들은 세금을 지금보다 한 푼도 더 부담하지 않는다.

내 세금 부담이 좀 더 늘어나더라도 나보다 부유한 소득자의 부담은 그보다 더 늘어나고 나보다 어려운 근로자의 부담은 그보다 덜 늘어나거나 늘어나지 않는다면 비교적 합리적인 변화가 아닌가.

게다가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는 자체적으로 많은 모순을 안고 있다. 월급쟁이들을 위한 제도라고 포장이 되어 있지만 뜯어보면 부유층을 이롭게 하고 서민층을 더 어렵게 하는 역진적인 제도다.

부자가 쓴 100만원의 신용카드와 서민이 쓴 100만원의 신용카드는 자영업자의 세원 포착에 똑같이 기여하지만 절세효과는 부유층에서 더 크다. 어차피 소득세를 내지 않는 절반 가까운 근로소득자들에게는 `그림의 떡` 같은 제도다. 이런 제도를 없애자는 게 왜 반서민적인가.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는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탈루를 막기 위해 도입됐지만 그 바람에 어려운 서민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제도이기도 하다.

이유는 이렇다. 소득공제 제도로 너도 나도 신용카드를 쓰게 되면서 요즘은 거의 모든 가게들이 매출의 2~3%를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명목으로 카드사에 낸다. 작년 한해동안 전국의 신용카드 가맹점이 낸 수수료 총액은 7조4000억원에 이른다. 그 비용은 당연히 상품 가격에 반영되는데 그렇게 비싸진 가격표는 부자와 서민을 가리지 않고 일률적으로 적용된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급여생활자들은 그렇게 비싸진 가격을 신용카드를 사용하면서 받는 각종 절세혜택이나 할인혜택으로 보상받을 수 있지만 서민들은 그럴 방법이 없다. 신용카드를 많이 쓰지도 않을 뿐더러 이들은 소득이 적어 어차피 소득세를 내지 않던 터라 절세효과도 없다. 
 
신용카드가 확산되면서 정부는 세금을 더 걷으니 좋고 부유한 근로자는 세금을 깎아주면서 각종 할인혜택까지 받아 좋고 신용카드 회사는 이익이 늘어나니 좋다. 반면 자영업자들은 세금과 수수료를 더 내게 되고 그 부담을 가격에 전가하게 되는데 그 가격 상승의 피해는 그 과정에서 아무 혜택을 받지 못한 서민들이 가장 크게 입는다는 얘기다.
 
결국 고소득 자영업자들한테서 세금을 더 걷기 위한 사회적 비용을 소득이 면세점(免稅點)이하인 서민들에게 집중적으로 부과하는 불합리한 제도가 바로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다.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유지하자는 주장은 정부가 부유한 계층으로부터 세금을 제대로 걷지 않아 내가 상대적으로 피해를 입는 것 같으니, 나도 세금을 덜 내서 나보다 더 어려운 서민들에게 계속 피해를 입히겠다는 주장과 같다.
 
부유층들이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불공정한 징세 구조가 먼저 개선될 필요도 있고, 그에 대한 보상의 차원에서 신용카드 소득공제가 유지되어야 할 필요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 제도가 계속 유지되면서 부유층들보다는 오히려 서민층들이 보이지 않는 비용을 지출하게 된다는 점은 생각해 볼 문제다.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탈세를 막는 목적이라면 현금영수증을 활성화하는 게 낫다.

월급쟁이들의 삶은 늘 팍팍하기 마련이고 그래서 스스로를 서민이라고 분류하기 쉽지만, 상당수의 샐러리맨들은 우리 사회에서 수입이 비교적 상위층에 속하는 부류다. 억울하겠지만 그게 현실이다.
 
세금이 엉뚱한 곳에 쓰이는 문제나 더 소득이 많은 계층에 제대로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긴 한데, 그렇더라도 그게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유지해야 할 이유는 아니다.
 
억울하긴 하지만, 왜 나한테 세금을 더 내라고 하느냐고 화를 낼 게 아니라 부유층에게 집중되는 신용카드 절세혜택을 보다 줄일 필요는 없는지로 토론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부자에게 세금 더 걷고 난 뒤에 이야기하자고 할 게 아니라 언제까지 이 제도를 유지해야 할 지, 신용카드로 인해 생긴 사회적인 효익을 서민층에게 더 돌릴 방법은 없는 지를 더 고민해야 한다. 화가 나는 건 사실이지만 여기는 너희 나라가 아니라 그래도 우리 나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