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해룡 기자
2005.08.18 12:20:20
[이데일리 이해룡 칼럼니스트] “요즘 들어 팔다리가 저릿저릿한 증상이 자주 나타나요. 혹시 중풍전조증이 아닌가요. 친정 아버지가 중풍으로 10년 넘게 고생하다가 돌아가셔서 나도 중풍 걸릴까봐 노심초사하고 있어요.”
직장 다니는 딸을 대신해서 외손자를 봐주고 있는 김모씨(67세, 여)는 최근 팔에 마비감과 함께 두통이 심하고 가끔 말도 어눌하게 나오는 경우가 있다면서 이러다가 중풍으로 쓰러지는 것이 아니냐며 태산같이 걱정을 했다.
한적한 말년을 보내는 노인들의 가장 큰 근심은 중풍인 것 같다. 중풍으로 거동을 하지 못할 경우 자식들의 짐이 되는 것이 죽기보다 싫다는 것이 노인들의 한결같은 고민이다. 김씨는 친정 어머니가 아버지의 병수발을 도맡아 하느라 말년 고생이 심했던 기억이 있어서 중풍이라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김씨는 더욱이 남편마저 일찍 세상을 떠나 병이 들면 자식들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처지라서 걱정이 많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데 매일매일 대소변 뒤치다꺼리를 자식들에게 맡겨야 하는 중풍은 생각하는 것조차 두렵다는 것이다.
중풍이야말로 노년층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차라리 암에 걸리면 빨리 세상을 뜰 수 있어서 자식들의 짐이 되지 않아서 좋다 라고 까지 하는 분이 있을 정도다.
우리 사회가 대가족제도였을 때는 설사 노인이 중풍에 걸려 수족을 꼼작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가족이라는 테두리 내에서 오랫동안 극진하게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지만 요즘같은 핵가족사회에서는 과거와 같은 가족의 보호를 기대하기 힘들다.
이러다 보니 조그마한 증상도 중풍과 연관시켜 겁을 집어먹는 노인들이 많다. 할머니나 할아버지 중에서는 손가락에 마비감이 있으면 곧 중풍이 오는 것이 아니냐며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동의보감은 둘째와 셋째 손가락의 감각이 둔하고 쓸 수 없거나 손발에 힘이 없고 근육이 약간씩 당기는 증상이 나타나면 3 년 내에 중풍이 올 징조라고 적고 있다.
중풍의 원인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스트레스가 바로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
오지(五志, 5가지 감정 ; 기쁨 노함 걱정 슬픔 공포)가 지나쳐서 감정조절을 하지 못하게 되면 스트레스로 인해 심화가 들끓어 오르게 되는데 이것을 억누르지 못하면 열기가 머리위로 치솟는다. 이렇게 되면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근육과 뼈를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할 뿐 아니라 심하면 인사불성이 되어 아무 것도 모르게 된다는 것이 동의보감의 설명이다.
체형으로는 살집이 두둑한 사람이 불리하다. 즉 마른 사람보다는 살찐 사람이 풍에 걸리게 될 확률이 높다는 것. 이유인즉 살찐 사람은 피부 아래에 기와 혈이 몰려 뭉치는 바람에 기혈흐름이 막히게 되고 이 때문에 갑자기 중풍이 생기게 된다.
동의보감은 원래 중풍은 젊었을 때 보다는 기운이 달리기 시작하는 50대가 넘어야 발병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살이 찐 경우에는 몸집은 좋은데 비해 기운이 달려서 중풍이 생긴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가 아는 중풍의 주된 증상은 ▲갑자기 넘어지는 것 ▲갑자기 벙어리가 되는 것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입과 눈이 비뚤어지는 것 ▲손발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것 ▲인사불성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가래가 끓는 것 등이다.
동의보감은 중풍은 좋아졌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재발하는데 다시 병이 도지면 증상이 악화되므로 평소 생활습관을 잘 들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과식이나 성생활을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적고 있다.
중풍에는 뽕나무가지가 좋다. 잎이 나기 전의 뽕나무가지를 썰어서 볶은 뒤 물에 달여서 수시로 차처럼 마시면 기혈소통을 원활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중풍예방도 중요하지만 지금처럼 나홀로 가족이 늘어나는 추세에서는 가족들에게 중풍환자를 맡기기보다는 국가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노년의 삶의 질이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한다. (예지당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