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때보다 증시 친화적인, 하지만 불확실한[김학균의 투자레슨]
by최은영 기자
2024.10.17 05:00:00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미국의 통화정책이 유연해졌다. 논란이 많지만 그 방향은 명백히 자산시장 친화적이다. 일반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는 통화정책은 연속성을 가지곤 한다. 중앙은행의 금리 결정에 영향을 주는 인플레이션과 경기 사이클이 추세를 띠기 때문이다. 한두 번의 금리 조정이 경제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경기 둔화가 우려될 때는 연속적으로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경제활동 참여자들에게 전달돼야 통화정책이 의미있는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방준비제도(Fed, 이하 연준)는 0.50%p의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통상적인 금리 조정 폭인 0.25%p를 넘어서는 소위 빅컷이 단행됐다. 나름의 파격이었던 셈이다. 금리 인하 이후 두 가지 논점이 대두하고 있다. 연준이 파격을 선택할 만큼 ‘인플레이션 부담이 완화됐고,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현실적인가’라는 점이다. 먼저 인플레이션, 물가상승률이 경향적으로 둔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주 확인한 미국의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근원물가를 중심으로 여전히 불안 요인이 남아 있다. 미국 경기?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한 이후 2024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컨센서스는 2.5%에서 2.6%로, 2025년 컨센서스는 1.7%에서 1.8%로 상향 조정됐다. 민간소비는 애초부터 크게 흔들린 바가 없고 우려를 낳았던 고용지표 역시 개선되고 있다.
물론 인플레이션이든 경기이든 미래에 대한 전망은 늘 흐릿하고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연준도 때론 오판할 수 있다. 이상한 것은 빅컷을 단행한 이후 연준 관계자들이 보여주고 있는 태도다. 먼저 제롬 파월 의장. 파월 의장은 9월 FOMC 이후의 기자회견에서 시장이 추가적인 0.50%p의 금리 인하를 기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공을 들여 소통했다. 빅컷을 단행하고도 기대효과를 스스로 낮추는 행위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단발성의 금리 조정은 큰 효과가 없고 통화정책의 연속성에 대한 기대가 경제활동 참여자들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최근 존 윌리엄스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와 크리스토퍼 윌러 연준 이사 등의 발언도 파월 의장의 기자회견 내용과 비슷했다. 시장의 기대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왜 애초에 빅컷을 단행했을까.
‘예방적’ 동기 이외의 논거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연준의 이런 행동을 불러온 원인은 2008년 금융위기의 트라우마다. 연준의 긴축 정책은 매우 높은 확률로 심각한 경기침체와 금융위기를 불러오곤 했다. 미국의 모기지 시장 붕괴로 나타난 2008년 금융위기는 연준이 행한 2004~2006년 금리 인상으로부터 잉태했다. 당시 미국 경기의 후퇴 정도는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 이후 가장 컸다. 2019년에도 연준은 ‘보험용’이라는 이름을 붙인 금리 인하를 3회 단행한 바 있다. 요즘 연준의 스탠스도 2019년과 비슷하다고 봐야 할 듯하다.
필자는 9월 FOMC에서 0.50%p의 금리 인하가 단행된다면 주식시장에는 악재가 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빅컷’으로 표현되는 큰 폭의 금리 인하는 심각한 경기후퇴의 전조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전망은 틀렸다. 연준 스스로가 빅컷 단행 이후 시장 참여자들로 하여금 경기침체를 연상시키기 않기 위해 노력했고 무엇보다도 발표되는 경제지표들이 탄탄했기 때문이다.
내년 상반기까지 시장이 직면할 수 있는 잠재 리스크는 경기 둔화보다는 경직적인 인플레이션과 그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장기금리 상승일 것이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기준금리를 내린 9월 FOMC 이후 오히려 꽤 큰 폭으로 상승해 4%를 넘어서고 있다. 경기 둔화는 늘 예기치 않게 다가오곤 하지만 인플레이션과 장기금리 상승이 당면한 리스크가 아닐까 싶다.
자산시장은 다소의 풍선효과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돈을 찍어내는 제왕, 연준’이라는 이름으로 번역 출간된 ‘THE LORDS OF EASY MONEY’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연준에서 소수의견을 내면서 분투했던 캔자스시티 연은 총재 윌리엄 호니그에 대한 기록이다. 호니그는 2008년에 타올랐던 금융위기가 진정된 이후에도 지속한 연준의 양적완화가 실물경제를 호전시키는 효과는 매우 약했던 반면 자산시장에는 긍정적인 효과를 줬다고 인식했다. 메인스트리트와 월스트리트의 괴리는 결과적으로 불평등을 강화시킨다는 것이 호니그의 문제의식이었다. 9월 FOMC에서의 빅컷과 같은 예방적 조치도 결과적으로 자산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중앙은행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경제에 풀린 돈을 충분히 흡수하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완화로의 첫걸음을 내디뎠기 때문이다.
요즘 독일 증시가 보여주고 있는 강세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독일 GDP는 작년에 -0.3%의 역성장을 기록한 데 이어 독일 재무부가 지난 10월 초 제시한 올해 성장률 전망치도 -0.2%이다. 2년 연속 역성장은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독일 DAX 지수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경제와 주가의 괴리가 매우 크다. 돈의 힘이 아니고서는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022~2023년 양적긴축과 기준금리를 올리는 긴축정책을 쓰기는 했지만 여전히 풀린 돈은 많다.
중앙은행 대차대조표의 자산은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이 최초에 경제에 주입한 본원통화에 가까운 개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중앙은행이 풀어낸 본원통화 규모는 압도적으로 커졌다. 유로존 GDP 대비 ECB 자산 비율은 2024년 8월 말 현재 44.7%에 달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에 이 비율은 13.5%에 불과했다. 코로나 팬데믹 국면에서 풀린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2023년 3월부터 양적긴축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유로존 GDP 대비 ECB 자산 비율은 코로나 팬데믹 직전이었던 2020년 2월의 38.9%보다 높다. GDP로 대표되는 실물경제 대비 화폐영역에서 풀린 돈의 규모가 압도적으로 커졌다.
주가는 기업이 향후 창출할 현금흐름으로 표현될 수 있는 내재가치와 주식을 매수하고자는 하는 돈의 양으로 볼 수 있는 유동성의 함수이다. 중앙은행이 자산가격을 부양하고자 하는 적극적 의지가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자산시장 친화적인 결과로 귀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