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훈 형사법학회장 "K-팝·드라마처럼 K-법 수출하려면…"
by성주원 기자
2024.03.06 05:50:00
■이슈포커스-70년 낡은 형법 정비하자
''형법 전면개정 추진'' 한상훈 형사법학회장
"일본풍 법체계 부끄러운 일…한국화 필요"
형사특별법 통합, IT·AI 등 기술발전 대응 등
"법제도, 슬로우 팔로워 수준…선제대응해야"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2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노래, 드라마, 영화, 음식 등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되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현재의 우리 법제도, 법이론은 선진국에서 수입한 것이지만 앞으로 20년 뒤에는 수출하는 위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률인프라인 형법 전면개정이 필수적이다.”
지난 1월부터 한국형사법학회장에 취임한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5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형법 전면개정과 관련해 법조계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보수적 문화를 경계해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한 학회장은 “우리나라가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를 성공적으로 이뤄내 7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위상을 갖게 된 만큼 법체계의 한국화, 선진화에 관심을 둬야 할 때가 됐다”며 “K-팝, K-드라마 등 우리 문화가 동남아를 넘어 유럽과 북미에서도 많은 호응을 얻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과거 일본영향이 강하게 남아있는 형법을 완전히 혁신해 세계 속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한국형사법학회장인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방인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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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을 한 도시의 건축에 비유하자면, 현재 우리 형법에는 일본풍의 건물들이 즐비하고, 건물의 간판도 일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화와 국제화, 그리고 한국문화의 우수성이 세계에 전파되는 시점에 이러한 일본풍의 법체계를 갖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1953년 형법 제정시에는 하루 빨리 일본법에서 독립해 우리 법을 가져야 한다는 일념으로 서둘렀기에 한계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당시의 표현을 빌리자면 “완전무결한 우리 형법전의 완성은 금후의 과제로 남겨 두고 우선 이 초안으로써 면갈지용(免渴之用)에 공하기로 했다.” 즉, 법제정의 목마름을 잠시 면하는 정도로 사용한 것이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은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를 성공적으로 이뤄내 7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위상을 갖게 됐다. 그렇다면 법체계의 한국화, 선진화에도 관심을 둬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법률은 한 나라의 법문화, 법이론의 기초적 인프라다. 국격과 문화, 자부심의 문제다. 바로 지금이 법적 인프라를 재구축할 적기인 것이다.
△지난 1992년과 2007년 법무부에서 제시한 형법개정의 기본방향은 ①기본권 보장에 관한 헌법정신의 구현 ②형법 이론 발전에 따른 범죄론 재정비 ③사회 변화로 인한 범죄화 및 비범죄화 현상 반영 ④형사정책적 고려에 의한 형벌제도 및 법정형 조정 ⑤각종 형사특별법의 형법으로 흡수·통합 ⑥평이한 법률용어로 개선 등이었다. 이러한 방향성은 현재에도 타당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번 전면개정에서는 ①국내외 형법이론 및 국제규범의 발전을 반영하고, 형법전의 체계를 재정비해 한국 형법학의 국제경쟁력및 대외영향력을 강화함 ②형사특별법 등을 최대한 통합해 국민이 형법의 해석 및 적용을 알기 쉽도록 체계, 조문을 재편하고, 형법의 용어, 표현을 표준어에 가깝게 정비함 ③70여년간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에 따른 사회변화를 반영하고, IT·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의 발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함 등에 좀더 역점을 두려고 한다. 이러한 전면개정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대한민국의 법률문화를 고양하고, 국민의 안전과 행복에 기여할 것이다.
△과거 1990년대와 2000년대에도 정부와 학계의 형법 전면개정의 시도가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당시 실패 원인은 두 가지다. 첫째는 전면개정의 의미가 단순히 실용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우리나라의 법체계, 법이론을 세계적 수준으로 고양하는 것임을 충분히 공유하지 못했다. 둘째는 이러한 형법 전면개정의 의미를 국민과 소통하고 설득하는 데에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우리 문화의 우수성에 대한 자긍심이 고취돼 있고, 단순히 선진국의 법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앞서서 개척해야 한다는 진취적 정신이 사회에 널리 퍼져있다. K-팝, K-드라마, 우리 음식문화 등에서 우리 문화가 동남아를 넘어 유럽과 북미에서도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법문화도 같은 맥락에서 과거 일본영향이 강하게 남아있는 형법을 21세기에 맞게 완전히 혁신해 세계 속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형법전면개정은 법률의 개정을 필요로 하므로, 당연히 국회가 나서서 심의하고 법률안을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지난해 12월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예방해 형법 전면개정의 필요성을 설명드렸고, 형법개정 학술대회에는 법무부 담당과장 등이 참석해 의견을 개진했다.
이미 두 차례 형법전면개정안을 법무부에서도 준비한 적이 있는 만큼 정부의 의지도 있다고 생각된다. 국회에서도 올해 4월 총선 이후에 22대 국회가 구성되면, 국민의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형법의 개정에 관심을 기울여주기를 요청한다.
한국형사법학회도 형법개정안의 성안과정에서 법무부와 국회의 의견을 청취하고, 또 법안이 완성된 이후에는 정부와 국회를 직접 찾아 국회의원들께 법개정의 필요성을 상세히 설명할 예정이다.
△형법의 전면개정은 이념이나 정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 행복에 관한 것이고, 대한민국의 국격과 문화, 자부심에 관련된 것이다. 초당파적으로 형법개정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아울러 법조계를 포함한 사회의 보수적 문화도 경계해야 한다. 아직도 우리는 선도적으로 앞장서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다른 나라들이 다 한 다음에야 마지못해 따라가려는 태도가 있다. 법제도와 관련해서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는 고사하고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도 아니고 슬로우 팔로워(slow follower)의 수준이다. 물론 그것이 안전할지는 모르지만, 카피캣이라는 오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제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서 갖는 위상을 생각한다면, 약간의 모험을 감수하고라도 닥친 법적 문제에 대하여 선도적, 선제적으로 대응해나가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노래, 드라마, 영화, 음식 등이 아시아를 넘어서 전세계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되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현재 우리의 법제도, 법이론이 당장은 선진국의 것들을 수입했지만, 앞으로 20년 뒤에는 수출하는 위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법률인프라인 형법전의 전면개정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서울대 법학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박사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원 △한국경찰법학회장 △한국형사정책학회 상임이사 △(현)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현)제39대 한국형사법학회장